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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혐오와 헌신

by 빛광



루프와 성장, 그리고 이세계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부문에서 흔하게 인기 있는 장르 중 하나가 바로 '루프(Loop)물'이다.


루프물은 고리(Loop) 안에 갇힌 것처럼 반복되는 같은 시간대나 사건 속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르를 흔히 칭하는 용어다. 주인공 혼자서만 시간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 루프를 탈출하기 위해 행동이나 조건을 바꿔가며 경험과 통찰을 쌓고 재차 도전(やり直야리나오스, 다시 하다)하는 것이 루프물의 기본 플롯이다.


몇 년 전 인기 있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도 비슷하다. 진도준은 딱 한번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시간대를 여러 번 반복하지 않기 때문에 서브컬처 관점으로는 세부 장르인 '회귀물'로 분류된다. 현재는 회귀물이 루프물아래 파생장르로 구별되지만, 개별 작품으로는 오히려 회귀물이 먼저 인기를 끌었기에 시간 순으로 보면 오히려 회귀물이 루프물의 아버지라고 볼 수 있다.


루프를 통해 경험과 통찰을 쌓는 것, 그것이 뜻하는 것은 곧 성장이다. '성장'이라는 키워드는 90~00년대 일본 만화 시장을 주름잡았던 일명 '원나블'을 비롯한 소년만화의 주요 주제다. 인기 있는 소년만화는 대부분 주인공이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보면 된다. 아기자기(?)하던 주인공이 점점 성장해 나가며(레벨 업) 강한 적을 무찌르고, 그 과정에서 또 성장해 더 강한 적을 상대하는 식이다.


반면 2020년대 이후로 서브컬처 계에서 흐름을 잡고 있는 장르라 하면 '이세계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주인공이 다른 판타지, 혹은 중세와 같은 콘텐츠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세계로 불시착해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장르인데, 특이하게 이세계물에서는 주인공이 능력적으로 어느 정도 완성 되어있는 이른바 '먼치킨'인 경우가 많다. 가뜩이나 이세계로 끌려간 주인공이 내세울 능력 하나 없는 깡통이라면, 이를 바탕으로 흥미 있는 이야기를 끌어나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밥 먹고 게임만 하던 게임폐인 남매가 게임의 승패로 모든 것이 결정지는 이세계로 전이된다던지, 주인공을 이세계로 끌고 간 어떤 시스템에 의해 특수한 능력을 부여받는다던지 하는 식으로 능력자로서 이세계에서 서사를 쌓아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이하 리제로)』의 주인공 나츠키 스바루 또한 평범한 17세 남학생이 이세계에 전이되고 '사망회귀'라는 루프를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는다. 주인공은 그 능력을 본인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헌신', 즉 도움을 주기 위해 사용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본인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 특출 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넘치는 자신감으로 골목대장을 맡으며 주변 친구들을 이끌고 다녔던 그는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러 나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그렇게 특출 나지 않다는 현실을 깨닫고 우울감에 은둔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갑자기 이끌려온 이세계에서 그는 본인이 가진 능력을 남을 돕는 데 사용했다. 그 시작은 에밀리아에게 도움을 주고 예쁜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목적성이 다분한 도움이었지만 그럴지라도 남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면 보람과 만족, 의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이세계에서 겨우 사지 멀쩡한 평범한 남고생이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이란 결국 그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작품 설정 상 스바루가 루프 하려면 일단 본인이 사망해야 하기 때문에, 에밀리아를 돕기 위한 스바루의 계속된 루프는 그를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렇게 힘들게 루프를 통해서 준 도움은 '루프를 통한 도움이기 때문에' 본인이 받은 도움이 스바루가 죽음을 몇 번 거치고 나서야 얻은 결과라는 것을 모를 수밖에 없고,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렵다.


결국 피폐해진 스바루는 에밀리아에게 실수를 하고, 관계가 크게 틀어지게 된다. "내가 널 도우려고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누가 도와달라고 했어?"와 같이 실제 현실에서 연인끼리 싸우게 되면 흔하게 하게 되는 말을 하면서.


스바루는 현실 세계에서 히키코모리이고, 이끌려온 이세계에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특별한 능력(설정 상 발설하지 못하게 돼 있다)을 빼면 아무것도 없는 스스로에게 자기혐오에 빠졌고, 회귀를 여러 번 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자 애먼 에밀리아에게 화를 낸 것일 뿐이다. 냉철하게 바라보자면.. 그렇다.




자기혐오와 헌신은 대척점이다


나츠키 스바루는 이세계로 전이된 후 반복되는 죽음과 고통 속에서 지독한 자기혐오와 마주한다.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비난하며 무가치한 존재라고 여기지만, 루프라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반복적인 실패와 작은 성공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게 된다.『리제로』의 초반부는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며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세계와 특수능력, 검과 마법 등으로 점철돼 있지만 그것들을 쏙 빼고 건조하게 다시 바라보면 스바루의 고충이 현실의 우리들이 평소에 마주치게 되는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혐오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부족함과 결함만을 주목하지만, 헌신은 그 너머의 무언가에 시선을 둘 수 있게 한다. "나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부족해"는 화살표가 밖에서 나를 향하지만, "내가 이걸 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될 수 있어"는 반대로 방향이 나에게서 밖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헌신을 하기 위해선 스스로에게 과제를 던지고, 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배우고 변화해야 한다. 다른 사람, 목표, 가치에 대한 헌신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에 대한 강박적 비판에서 벗어나 더 큰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결국, 헌신은 단순히 누군가를 도와주는 행위가 아닌 그 대상으로 하여금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정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일 때,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 사람에게 헌신해야지"가 아니라 "그 사람 옆에 있는 내가 스스로 보기에 더 나은 사람이 돼야겠다"가 궁극적인 헌신인 것이다.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스바루도 자세히 보면 꽤 능력자다. 정치적인 처세술이 훌륭하고 때와 장소, 대상에 따라 적절하게 활용하는 언변술도 뛰어난.. 그냥 머리가 좋다. 필요하면 괴물 퇴치 원정대의 선봉에 설 정도로 용기도 있으며, 무엇보다 쾌활하고 긍정적이다. 그래서 잘 보면 그의 사망회귀 능력은 대부분 앞서 말한 그의 기본적인 능력치와 함께 시너지효과를 낸다.


우리네들 또한 그렇다. 비교하면 단점 투성이지만, 스스로를 잘 보면 장점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장점이 굳이 엄청나게 빼어날 필요는 없다. 자기혐오만 하지 않는다면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니까.


그리고 나 또한 그랬다. 그걸 오랜 기간 잊고 살았다. 인터넷 SNS로 뒤범벅이 된 현대 사회에서 비교는 오히려 안 하기가 힘든 것이라 합리화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 기간 자기혐오에 빠져 살았고 지금도 아니냐 하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다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머리카락 한올만큼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매일매일 의미를 만들어간다. 안되면? やり直す, 다시 하면 된다.


그게 나를 위한 헌신, 언젠가 내가 사랑하게 될 당신을 위한 헌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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