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과 인성 사이, 아리야 타라
아침 기사 제목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한순간에 딸에서 뭐가 달라졌다는 거지?
쿠마리? 두 살 여덟 달 된 아리야 타라 샤카?
‘살아 있는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아이의 아버지 아난타 샤카는 기자들 앞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딸이었는데 오늘은 여신이 됐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은 기쁨과 두려움, 자랑과 무거움이 뒤섞인 고백 같았다.
32개월 된 새 쿠마리, 아라야 타라.
사람들이 꽃과 돈을 바치며 여신에게 절을 올렸다.
그 장면은 신비로우면서도 동시에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아이의 표정 속에서 신의 기운보다 두려움이 먼저 읽혔기 때문이다.
네팔에서 쿠마리 제도는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이다.
어린 소녀가 신의 자리에 앉는 순간, 그녀는 이미 아이가 아니다. 신의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몸은 여전히 연약한 아이의 것이기에, 그 간극이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쿠마리’라는 단어는 처녀를 뜻한다.
그러나 단순히 나이 어린 소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여신의 현현으로 숭배되는 존재를 의미한다. 카트만두 계곡의 네와르 공동체에서 선발되는 쿠마리는 보통 세 살 전후의 아이들 중에서 뽑힌다. 후보로 오르기 위해서는 신체적 흠결이 없어야 하고, 어둠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때로는 무서운 짐승의 사체가 놓인 방에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시험도 있다. 눈물 한 방울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험이다. 그렇게 뽑힌 아이는
‘살아 있는 여신’이 된다.
여신으로 선발된 순간부터 쿠마리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녀는 쿠마리 거르라는 특별한 건물에 머물며, 일상적인 놀이와 자유가 제한된다.
스스로 땅을 걸을 수조차 없다는 규율도 있다.
언제나 누군가의 품에 안겨 이동해야 하고, 일반적인 아이처럼 뛰어놀 수가 없다.
대신 축제와 의식의 순간, 가마에 실려 거리에 나서면 사람들은 합장하며 예를 올린다. 그녀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 모든 움직임이 신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 신성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쿠마리가 몸에서 피를 흘리는 순간, 그 신성은 사라진다고 믿는다.
초경이 시작되면 즉시 여신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다시 한 명의 평범한 소녀로 돌아가게 된다.
불과 몇 해의 짧은 기간 동안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하다가, 사회로 복귀한다는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어린 시절을 고립된 공간에서 보낸 탓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테고. 또래와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경험은 오히려 짐이 된다.
일부 쿠마리는 결혼과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쿠마리 제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네팔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 온 신성한 제도' 라 한다.
하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분명히 있다.
어린아이가 감정과 자유를 억압당한 채 신격화되고, 이후 사회로 복귀했을 때 겪는 상처와 고립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피를 부정하는’
관념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연결된다.
최근에는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
쿠마리에게 교육 기회를 보장하고, 은퇴한 쿠마리에게 연금을 지급하며 사회 복귀를 돕는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인 셈이다.
전통 존중의 가치와 인권 존중의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이기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아리야 타라의 눈동자를 떠올려본다.
꽃비 속에서 사람들의 경배를 받던 그 시선은,
과연 신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한 아이가 세상의 무게를 견디던 떨림이었을까. 찬란한 순간은 바람처럼 스쳐가고,
남은 것은 기억 속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고대의 전설이 오늘날의 인권감수성과 만날 때
우리는 무엇을 기리며 무엇을 바꿔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