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메가박스

영화 보러 가는 날

by 안명심


메가박스



빛이 꺼지는 순간 세상은 잠시 숨을 멈춘다.

검은 상자는 우주처럼 조용하고 깊다

희미한 불빛 아래,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스크린은 이미 창이 아닌 문 이.

빛이 꺼지는 순간 세상은 잠시 숨을 멈춘다.

허구의 세계로 들어서는 입구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공기 속에 퍼지는 팝콘의 향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깨우고

탄산수의 거품은 기대를 톡톡 두드린다

손에 쥔 구겨진 티켓은

오늘의 여권처럼 손바닥을 적신다

현실은 안드로메다 너머로 밀려나고

눈과 귀는 환상에 매혹된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공명

순간

세상은 잠시

평화로 물들었다






▪️詩作 노트▪️

불이 꺼지면 의자 등받이의 차가움이 등에 붙는다 화면이 켜지는 순간 공기 중 먼지가 또렷이 보이고,
서라운드 소리가 뒤에서 앞으로 밀려와
가슴이 진동한다. 캐러멜 팝콘과 콜라 냄새가 섞여
코에 남고, 빗소리와 발자국, 경적이 실제 거리처럼 입체적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달리면 내 발목도 긴장해 발끝에 힘이 들어가고. 웃음 장면에는 옆자리까지 흔들리고 조용한 장면에는 객석의 숨소리가 고르게 맞춰진다. 자막이 오르면 손이 자동으로 가방과 티켓을 확인한다. 불이 켜졌을 때 눈앞엔 하얀 잔상이 잠깐 남고, 문을 나서면 휴대폰 진동이 돌아온 현실을 알린다, 발걸음은 평소보다 한 템포 느려지고
같은 길도 조금은 넓어져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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