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에 새겨진 딸의 흔적
밤낮이 뒤바뀐 나라가 하나 있다.
내가 막 잠자리에 들 무렵, 그곳은 분주한 아침을 연다. 내가 흐릿한 새벽 공기 속에서 눈을 뜰 때,
그곳은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는 저녁을 맞는다.
지구 반대편, 14시간의 시차가 가로놓인 땅,
미국 미네소타. 지도 위에서나 스치던 그 낯선 이름의 도시에 내 딸이 살고 있다.
사위가 미네소타에 있는 주립대학으로 박사과정을
편입하게 되면서,
함께 태평양을 건넜다.
처음엔 공부가 끝나면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두 사람 다 영주권을 받았고,
이제 딸은 그곳의 초등학교 선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제2의 삶을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다 큰 성인이 제 몫의 세계를 구축하고,
낯선 땅에서 제 전문성을 발휘하며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축복할 일이다.
머리로는 그것을 십분 이해하고 응원한다.
하지만 뼛속까지 스며든 '엄마'라는 관성은,
그 당연한 사실 앞에서 때때로 왜? 그 멀리에?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가 있다.
곁에서 함께 지지고 볶으며 늙어갈 줄 알았다.
적어도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있을 줄 알았다.
일상의 분주함 속에 겹겹이 쌓여 잠자고 있던
기억들이 예고 없이 생목처럼 올라온다
목구멍에 단단하고 이물스러운 것이 걸린 듯, 울컥하고 선명한 무언가가 가슴 밑바닥을 치고 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딸아이의 고등학교 교문 앞을 서성거리던 내가 있다.
자율학습이 끝날 무렵. 1분이 10분처럼 더디게 흐르던 그 밤공기를 떠올린다
저만치에서 친구와 재잘거리며 걸어 나오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던, 피로와 안도가 뒤섞인 그 순간.
차에 타자마자 "엄마, 배고파!" 하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늦은 밤, 딸을 태우고 집으로 향하던 그 길은
하루 중 가장 고단하면서도 가장 충만한 시간이었다.
컴컴한 새벽의 주방이 있다.
재수를 결심한 딸을 위해 새벽 도시락을 싸던 때다. 밥솥에서 피어오르는 김의 따스함, 조심조심 반찬을 담던 손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짊어지고 이른 새벽 전철역까지 아이를 데려다주던 그 길.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승강장에서 노량진행 전철을 기다리던 딸의 뒷모습. 그 작은 어깨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다.
그것은 단순한 배웅이 아니었다. 아이의 힘겨운 싸움에 내가 함께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표였고, 말없이 건네는 응원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나의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과제다, 모임이다, 늦어지는 날들이 많았다.
행여 막차라도 놓칠세라, 전철역 개찰구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시간표를 확인하던 밤들. '도착'이라는 글자가 전광판에 뜨고,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의 그 아슬아슬한 긴장감. "왜 이렇게 늦었어!" 타박 섞인 목소리에는, 걱정과 안도가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의 하루는 딸을 기다리고, 맞이하고, 배웅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었고, 나의 세계 그 자체였다.
그렇게 나의 시간과 맞물려 돌아가던 딸의 세계가, 결혼과 함께 한 번 확장되더니, 사위의 유학길에 동행하며 훌쩍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섰다.
'잠시'일 거라 생각했던 미국 생활은 '정착'이 되었다.
나는 이제 딸을 기다리지 않는다.
내 손으로 새벽 도시락을 싸거나, 늦은 밤 귀갓길을 마중할 일도 영영 사라졌다.
물리적인 '기다림'의 의식이 사라진 자리에,
막연하고 거대한 빈자리가 들어섰다.
14시간의 시차는, 내가 깨어있는 동안 딸은 잠들어 있고, 내가 가장 애틋한 순간 딸은 가장 바쁘게 움직인다.
우리의 시간은 잔인할 정도로 엇갈린다.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밤늦도록 딸을 기다리며 느꼈던 그 조바심,
새벽 도시락을 싸며 담았던 정성,
그 모든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사랑의 총량은 지금도 내 안에 그대로 남아,
갈 곳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ㅡ딸과 함께ㅡ
미네소타는 지금 아침일 것이다.
딸은 커피 한 잔으로 잠을 깨우고, 낯선 피부색의 아이들에게 셈과 글을 가르치러 교실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같은 달을 보지만, 다른 시간을 산다.
이 선명한 감정은, 그러나, 아픔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딸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에 대한 증거이며,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농밀하게 엮여 있었는지에 대한 훈장이다.
딸은 그곳에서, 그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기다림'과 '맞이함'에 이미 익숙해진 삶을 살고 있다.
비록 내 손은 닿지 않지만, 내가 딸을 기다리던 그 마음이, 새벽 도시락의 온기가, 시차의 저편을 넘어 딸의 오늘을 따뜻하게 지켜주리라.
오늘 밤에도 나는 14시간 저편의 아침을 상상하며,
이 묵직한 마음을 가만히 안고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