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식품을 만드는 기술
식품의 물성 조절은 오랫동안 연구를 했더라도 전체를 파악하기가 힘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분자요리가 소개되면서 물성도 분자단위로 쪼개 어느 정도 예측과 분석이 가능해 이를 새로운 형태의 요리를 창조하는데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식품 물성은 수분과 탄수화물 ․ 단백질․ 지방 등 3대 영양소, 열 ․ pH ․ 이온농도 등 3가지 기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식품 물성에서 수분은 가장 중요한 요소
식품 내에서 수분 함량은 물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음료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형식품의 수분 함량은 보통 50~80% 정도이며, 수분이 많으면 부드럽고, 적어질수록 딱딱해진다. 이중 수분 함량 60%를 넘는 식품은 대체로 부드러운 식감을 가지고 있지만, 미생물 오염에 취약해 냉동 또는 냉장 유통된다. 당이나 소금함량이 높은 식품은 삼투압 때문에 미생물이 살 수 없기 때문에 상온 유통이 가능하다. 수분함량이 20~60% 식품은 자유수 함량과 염농도에 따라 유통조건이 결정되며, 수분함량 20% 이하인 식품은 상온유통이 가능하다.
수분은 식품의 물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수분이 부족할 경우 전분은 쉽게 노화되고, 단백질은 쉽게 변성된다. 반대로 수분이 많을 경우 전분의 노화와 단백질 변성은 상대적으로 덜 일어나지만, 공기와 접촉된 부분은 지방의 산패가 촉진된다. 예를 들어 갓 튀긴 크로켓은 초기엔 바삭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 수분이 외피로 전이되면서 겉면은 눅눅해지고, 공기와 접촉하는 면은 산패하게 된다. 백설기를 갓 쪄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쌀전분이 호화된 채로 동결되기 때문에 데웠을 때 처음과 같은 조직의 백설기를 먹을 수 있으나, 보관기간이 오래되면 얼었던 전분 중 수분이 승화하여 데워도 떡이 딱딱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수분의 이동을 막아줌으로써 품질을 유지하거나 개선한 사례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햄버거 패티나 떡갈비 같은 냉동식품에 수분 보유력이 높은 식이섬유를 넣으면 식이섬유가 수분의 이탈을 막아 오래 보관했을 때에도 원래의 부드러운 식품을 맛볼 수가 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에 의해 식품 물성이 정해진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3대 영양소는 물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이들의 조합에 따라 물성이 달라진다. 이들 영양소의 분자는 수분, 열, pH, 염 농도에 따라 변형되므로 분자 입체구조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물성을 구현할 수 있다. 이들 영양소들은 수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식품 고유의 물성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탄수화물 중 전분은 열과 수분을 동시에 가하게 되면 호화되어 분자가 팽창해 식감이 부드러워지고, 점도가 증가하게 되며, 식이섬유는 구성 당류와 물분자간 결합으로 수분을 잡아두게 됨에 따라 점도를 나타내어 식품의 물성을 구현하게 된다. 단백질은 아미노산 사슬의 연결에 의해 생성된 폴리펩타이드가 서로 결합하여 만들어지는데, 단백질 내 폴리펩타이드는 열 또는 pH, 염농도 등에 따라 상호 결합이 풀어지게 되며, 이로 인한 수분접촉면의 증가는 수분결합력과 점도와 유화력, 결착력이 높아지면서 식품의 물성에 변화를 주게 된다.
지방은 수분보다는 열에 의해 액체 또는 고체가 되어 부드러움이나 크림물성 등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수분과 치환되어 전분 또는 식이섬유, 단백질 등과 결합하여 구조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두부제조과정 중 물성변화를 보면, 열과 수분, 외부의 물리적임 힘에 의해 콩 조직에서 단백질을 분리해내고, 간수를 가하면 단백질이 펩타이드로 풀어지게 되면서 실 모양으로 변형된 후, 펩타이드 사슬간 상호작용을 통해 펩타이드끼리의 그물상 결합을 유도, 응집시켜 단단한 조직으로 굳어 두부가 된다.
버터는 우유에서 유지방을 분리해 굳힌 것인데, 버터 제조시 우유단백질과 결합된 유지방을 열 또는 물리적인 힘을 가해 분리해 내야만 버터를 만들 수 있다. 치즈는 우유단백질을 응고시켜 만드는데, 이때 산을 가하거나 발효를 하거나 키모신(chymosin)과 같은 펩타이드 절단효소를 처리하면 단백질이 변성 응고되어 치즈가 형성된다. 치즈제조방법에 따라 단백질 응고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물성을 나타내게 된다. 대표적으로 끓인 우유에 레몬즙과 식초를 넣어 만드는 리코타치즈는 카제인을 겔화시켜 만드는 일반 치즈와는 달리 순두부와 비슷한 물성을 보인다.
열, pH, 이온농도 조절로 식품 물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
열과 pH, 이온은 식품 물성이 변화할 때 작용해 수분과 3대 영양소에 영향을 주어 물성변화를 일으킨다. 적절한 물성 변화를 유도해내고 싶다면 재료를 적절히 준비한 후에 열, pH, 이온 농도를 변화시켜 물성을 조절한다. 압력과 시간도 물성 변화 요인이 될 수 있고, 실제 이들을 효과적으로 조절하여 신제품을 개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존보다 더 걸쭉하고 진한 사골국물을 만들고 싶다면 더 오래 끓이거나, 온도를 더 올리며 되며, 압력솥에 넣고 가열해 압력을 올리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이들 방법 외에도 pH를 조정하거나 소금을 가하는 방법으로도 사골국물의 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반대로 맑은 국물을 내고 싶다면 앞서 적용한 방법과 반대로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압력과 시간은 열 ․ pH․ 이온농도로 충분히 치환할 수 있는 개념이다.
기본 3요소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식품 물성 생성 가능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분자요리를 보면 새로운 물성과 식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꼭 새로운 원료를 필요로 하기보다는 기존 원료와 기술의 재구성해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악보 및 악기 각각의 특성을 숙지하고 전체 하모니를 생각하며 어떻게 지휘하느냐에 따라 색다른 교향곡이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