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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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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품종에 대한 환상

실제 제분공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옛날 근무하던 회사에서 밀가루공장에 있던 사무실을 썼던 관계로..

제분에는 어느정도 지식이 있다.


작년에 가루미를 롤밀, 기류식, 핀밀 등으로 분쇄하여 품질비교한적이 있는데..

제일 흥미로운 것은 롤밀 제분이었다.

유명 대기업 밀제분공장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으례 밀제분방식으로 만들었겟거니.. 생각했겟지만..

난 밀제분 방식까지는 아니고 그냥 으깨서 만들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다. 


사실 가루미로 밀가루같은 롤밀제분이 된다면 대박이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기대가 많았으나.

딱히.. 방앗간에서 제분한 거랑 큰 차이는 없더라.

발표하시는 분도 갸우뚱할 정도로 기대이하..

밀가루 제분하는 롤밀제분의 기술은 롤밀로 제분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뒤에 이어지는 분급, 분리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니 기대했던 환상적 품질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

그럼 왜 분급, 분리를 안했냐고? 그건 밀가루에 최적화된 공정조건이다. 쌀가루로 최적화하려면 별도의 실험, 테스트를 거쳐 매뉴얼을 신규 설정해야한다.


작년 돌아갔던 상황을 보니.. 

정부에서 가루쌀 롤밀제분을 1차로 해보라하니 대충 롤밀로만 제분해줬는데..

반응이 이상하니 2차로 약간 밀제분 시늉을 하긴 한 것 같다.

아직까지 나도 가루쌀 롤밀 제분은 한적이 없어서. 어떤 차이가 날 지 모르겠지만.. 진짜 밀가루대체한 쌀빵만들려면 반드시 제분후 분급분류 공정을 넣어서 만들어야한다.


문제는 그걸 할 수 있는 원천기술은 한국에는 없고..(있나?)

미국, 유럽, 또는 일본 밀가루 회사들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그냥.. 그런 회사들에 다니다가 은퇴한 기술자로부터 기술한토막 배워오던가.. 제분설비업체가 제공해주는 응용기술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농산물가공관련, 특히 쌀이나 콩, 밀 등에 대해 가공품품질을 얘기할때면 으례 나오는 말이 "품종" 얘기다.

국산 콩에서 단백질을 만들겠다고 하니..

단백질에 최적화된 콩을 새로 육종해서 만들겠다고 한다.

난 굳이 그럴 필요없이. 그냥 싸고 생산량 많고 재배가 쉬운 걸로 하시죠. 라고 항상 말한다.

근데 신품종 만든다고 해야 연구비가 나온다는데...

그래서.."그럼 신품종 육성하시라."라고 얘기할 수 밖엔 없었다.


농업쪽으로 좀더 디렉팅된 분들. 즉 후방산업?이라고 하나?

암튼 농산물 생산쪽에 더 가깝게 일하신분들은..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를 철저히 믿는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실제 가공식품에 쓰이는 1차가공소재는.. 품종을 굳이 가리지 않도록 제조된다.

1차소재가공할때 품종의존도는 최대한 배제되어야 한다.

동시에 소재의 품질 균일성은 최대로 유지되어야한다.

쌀가루를 제분할때 왜 최대한 곱게, 입자가 작게 가공하느냐하면..

보통들.. 그래야 빵, 국수가 잘되니까 라고 생각하시는데.


쌀전분은 단단해서 입자크기가 크게 되면 그 균일성이 좀 낮은 편이다. 한마디로 큰거 작은거 한데 섞여있다.

그러면 이걸 가지고 빵을 만들면, 잘랐을때 기공이 불균일하게 불규칙하게 분포하게 되는데..

이걸 소비자가 먹게 되면 부드럽게 씹히는게 아닌 콰지직.. 하고 불규칙하게 씹히는 느낌이 나서 별로 좋은 식감을 못느낀다.

쌀가루 입자를 최대한 작게하면, 큰 것들이 감소해서 작아지므로 씹을때 식감이 비교적 균일하고 곱게 나게 된다.

그래서 쌀가루의 입자크기는 밀가루보다 작은 것이다.


만약 쌀가루든 밀가루든 가루의 품질이 품종에 의지한다면..

제분회사는 해당품종을 별도로 구분관리해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원료수급이 불안해질 수 밖에 없으며, 만약 해당 품종의 공급이 쇼트라도 나는 날에는 제품을 생산할 수 없으니 큰 손실이 난다.

대규모로 공급하는 회사는 그런 일이 발생하면 절대 안되므로..

여러군데에서 여러품종의 밀을 가져와서..

1등급 중력분, 강력분, 박력분으로 제분한다.


중력분은 금강밀을 쓰고, 강력분은 조경밀을 쓰는... 제품별로 단일품종을 쓰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금강밀이든 조경밀이든 그 품질을 분석하여 목표로 하는 밀가루의 재료가 되는 것이지 단일품종 그대로 제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는 같은 밀에서도 중력과 강력, 박력이 동시에 생산될 수 있다. 입도차와 밀도차에 의해 밀가루와 글루텐을 분리하고 이걸 나중에 재조합하여 만들면 되는 것이다.

현대의 제분기술은 옛날의 제분기술과는 다르며, 철저히 설비의존적이며, 그런 밀가루 생산장비는 스위스 뷸러사가 꽉잡고 있다.

한 배치의 밀가루에서 강력, 중력, 박력을 생산하는 기술을 제공해주는 것...


이러한 기술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게 당연한게 그건 생산업체의 영업비밀인데.. 가르쳐주겠나.

그리고, 외부기관에서 연구에 필요하다고 가르쳐달라해도...

기초 지식이 아직 부족해 가르쳐줄 엄두가 안나니. 못가르쳐준다.


쌀도.. 한때는 혼합미를 주로 먹다가.

최근에는 단일품종 쌀을 많이 먹는다.

그래서 취향별로 이것저것 골라 먹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근데, 난 품종별 재배관리만 잘 된다면..

혼합미로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혼합미가 좋은 쌀과 나쁜쌀을 섞어서 소비자들 뒤통수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서로다른 특성을 가진 쌀끼리 서로 보완해주는 혼합미는 오히려 식미를 증가시켜 주는 특징을 가진 좋은 쌀이다.


아직까지는 단일품종이 선호되긴 한다.

그러나, 볶음밥등 HMR용도로 쓰이는 가공용쌀은 단일한 품질특성 보다는 사시사철 균일한 균일성이 더 요구되는 특성이므로...

블렌딩을 통해 적당한 혼합미를 만든다면.. 가격과 맛품질을 잘 잡을 수 있어 좋은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가공식품에 성공적으로 쓰이는 품질좋은 좋은 품종.

이건 허상에 가깝다.

오히려 가공식품에 쓰이는 건 최상급이 아니라 2등급, 3등급의 것들이 더 많이 사용된다.

객관적 품질은 떨어질지 몰라도 품질관리, 균일도만큼은 최상으로 가져가야한다. 싼 가격은 기본.

농산물 생산하는 거랑, 1차가공소재를 생산하는 목표는 완전 다르다. 그걸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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