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 정책에 대한 단상
얼마 전 유통비용 이야기를 하다가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는 농산물 가격이 내려가길 바라지만, 생산자는 가격이 올라가길 원한다는 단순하지만 명확한 진실 말이다.
대표적인 예가 쌀값 논쟁이다. 소비자들은 지금 쌀값이 폭등 중이라며 걱정하지만, 쌀 생산자들은 원래 쌀값이 지금 수준이었고 그동안 폭락했던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상 답은 명확하다. 생산자가 소비자를 따라가야 한다. 소비자가 비싸다고 생각하면 가격은 내려가는 게 맞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농민들이 농산물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현실에는 일리가 있다. 가까이서 보면 안타깝고, 농업에 많은 정성을 쏟는 만큼 더 잘되고 더 잘 벌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장 논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한국 농업계 일부, 특히 정부는 이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정부 개입을 너무 당연시하는 것이 한국 농업 모순을 심화시키는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채택했다. 따라서 정부 개입은 필요할 때 최소한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계속 명분을 만들어 개입하려 들고, 각종 단체들도 정부에 나서라고 압박한다.
문제는 정부 개입이 시장가격을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원래 더 낮게 형성되어야 할 쌀값을 정부가 사들여 높게 지지한다. 이는 생산자를 위한 일방적 정책이다. 소비자를 위한 고려는 없다. 소비자도 국민 아닌가?
2024년 말 정부가 쌀을 대량 매입해 2025년 유통물량이 줄면서 쌀값이 폭등했다. 사들인 것을 다시 풀면 되지 않느냐고? 정부는 버티다가 여름에 문제가 심각해지자 '대여'라는 방식으로 쌀을 풀어 농민들의 비난을 피하려 했다.
당시 나는 경고했다. 풀 거면 대량으로 정식으로 확 풀어야지 이런 꼼수를 쓰다가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정부와 전문가들은 수확기가 되면 쌀값이 떨어질 거라 장담했지만,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시장경제 원리를 따르지 않는 정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정부가 꼼수를 쓰면 그보다 더한 꼼수를 쓰는 민간업자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장을 한 번 왜곡시키면 그 후폭풍은 계속된다. 지금의 쌀값 불안은 2019년 문재인 정부가 쌀값 지지를 위해 시장격리를 대량으로 했던 데서 출발한다. 그 전까지는 비축과 가격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태였다.
정부는 농민, 농민단체, 농촌지역 국회의원들의 말을 듣고 자꾸 농산물 시장에 개입하려 든다. 우리나라 농업교육이 농민들에게 동정심과 애착을 심어주는 면이 있어, 그렇게 교육받은 공무원들이 농민들에게 유리하도록 정책을 집행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정부가 농민들에게 유리하게 시장에 개입하면 문제가 해소되기는커녕 더 이상해진다. 결국 정부 개입 여부에 따라 시장가격이 출렁거리는, 완전히 정부 의존적인 시장이 되어버린다.
솔직히 심하게 말하면, 이런 정책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하는 정책이다. 축구경기에서 심판이 약팀이 지는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강팀에 휘슬을 더 많이 분다면, 그 경기가 제대로 진행될까?
약팀이 매번 져서 리그 흥행이 안 된다면, 샐러리캡 같은 제도를 도입해 강팀이 슈퍼강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시장에 직접 개입할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제대로 된 접근은 유통시장에서 발생하는 일을 민간 영역에서 질서 있게 돌아가도록 법과 제도, 정책 지원을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책 지원을 하라고 했더니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일만 하니, 당연히 정부 의도대로 돌아갈 리 없고 시장도 교란되어 수급 불안과 가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같은 정부 개입은 구소련의 집단농장 시스템을 연상시킬 수준의 사회주의식 정책이다. 구소련이 망한 것도 잘못된 농업 제도와 시스템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 한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산 측면만을 고려한 일방적 정책 수립과 집행. 농림축산식품부라는 이름이 농민들만 보라는 게 아니다. 농업이 앞에 있지만 뒤에는 식품이 붙어 있다.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 주기를 다 돌봐야 하는데, 소비자를 위한 정책은 쥐똥만큼, 그것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 것들만 있다.
반면 생산자들을 위해서는 수취가격도 올려주고, 소득이 모자라면 직접 돈을 풀어 지원도 해준다. 너무 일방적이지 않은가?
이 모순 때문에 농식품부는 양쪽에서 늘 욕을 먹고 있다. 직접 시장에 개입하니까 안 들어먹어도 될 욕을 그렇게 먹는 것이다. 국회나 대통령이 시키니 어쩔 수 없이 들어줘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자발적으로 욕먹을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들은 싸고 좋은 농산물을 사고 싶을 때 사는 것을 바란다. 생산자들은 그 생각에 최대한 맞춰줘야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구매가 지속될 테니까. 소비자 생각에 맞춰 노력하는 생산자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소상공인 식당 주인들도 아무리 아니꼬와도 소비자에게 맞춰 주려 노력한다. 그런데 왜 농업 분야만 '우리도 받을 돈 받아야겠다'며 버티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는가?
한국의 소비자단체도 개혁이 필요하다. 농업 분야는 좀 이상하다. 생산자를 생각하는 '착한' 소비자단체가 유독 많은 것 같다. 어용이라 해도 될 수준이다.
소비자단체라면 값싸고 품질 좋은 국산 농산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생산자를 생각해서 '가격이 적당히 비싸도 괜찮다', '그래야 품질이 좋다'는 식으로 그들만의 논리로 움직이는 듯하다.
특히 대자본으로 움직이는 수입 농산물 때문에 국산 농산물이 어렵다고 떠든다. 하지만 해외에서 농업하는 농부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이다. 솔직히 농사 열심히 짓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못 봤다. 그건 한국이나 외국이나 똑같다. 직접 보지 않았다고 외국 농부들을 악마처럼 여기는 건 편견이다.
외국을 보면 싸고 좋은 농산물이 마트에 널려 있다. 부럽지 않은가? 그런 것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외국에선 GMO도 막 쓰고 농약도 막 치니까 품질이 나쁘다'며 남 탓만 하면 발전이 없다.
시장경제 원리를 존중하고, 정부는 최소한의 개입만 하며,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펴야 한다. 그것이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길이다. 언제까지 초가집에 아궁이 불 때는 수준의 농촌을 고집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