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자백에 앞서...

by 앤드류

잊을 수 없다는 말은 특별한 기억을 특징하는 말이겠죠. 으레 그런 표현들이 있지 않던가요. 잊을 수 없는 추억. 잊을 수 없는 사람. 잊을 수 없는 사랑.


특별하다면 특별했던 제 삶엔 온갖 기억들이 이리저리 들러붙어 있습니다. 잊고 싶은 기억들과, 사라져선 안된다 강변하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어떤 기억들은 왜 이리도 자주 떠오르는 걸까요. 다시는 원상태로 펼쳐낼 수 없는 구겨져버린 은박지처럼, 접고 구겨, 마침내 잊을 수 있을 만큼 작게 만들 순 없는 걸까요.


때로 상상하고 바래 봅니다. 언젠가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되도록 제가 한살이라도 어릴 때에, 원하는 기억만 콕 집어서 지워버릴 수 있는 때가 오길. 그렇게 되면 제 육골은 반쯤은 투명한 가스구름이 되겠지요. 발목 쯤에나마 좋았던 기억들이 찰박거리게 될까요. 먹물에서 먹을 걷어내듯, 이미 폭발해 버린 엔트로피를 역행하듯. 잊고 싶은 기억을 빗질할 수 있다면 성분을 알 수 없는 가스로라도 제 육신 어딘가를 채우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나의 심장 한켠 2.3 세제곱센티미터. 늑골과 허파의 좁은 틈 사이사이를.


왜 고통스런 기억은 더 강하게 남는 걸까요. 당신은 말합니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진화심리학적으로 당연한 결과라고. 하지만 당신 또한 밤마다 의문할 테죠. 우리는 정말 생존만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밤은 매일 잦아내리고, 잊을 수 없다 불리우던 것들에 깔려 항복하듯 드러눕습니다. 깊은숨을 내쉬며 단념해보기도 합니다. 잊을 수 있다 불리우는 것들은, 기억한 적도 없는 것들에나 붙이는 말인 듯합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고, 보여줄 수 없는 기억들이 이 기록들 어디에나 그런 부끄러운 마음으로 묻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이 작은 글 꾸러미를 드리는 일은, 당신의 이름에게 제 삶의 한켠을 내어 드리겠다는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이 꾸러미로 말미암아 제 삶에 당신의 존재가 가능한 한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추억. 잊을 수 없는 사람. 잊을 수 없는 사랑이 되길 소망합니다.



2024. 12

감사의 마음을 담아

Andrew








프로필, 작가소개, 발행, 정기연재. 브런치스토리를 열어보면서 새삼 낯설고 어색한 단어들이 눈에 띕니다. 처음으로 나만의 글을 쓰고 읽기를 시작했던 어느날이 벌써 십수년이 지났지만, 그간 누구에게도 읽혀진 적이 없습니다. 나름대로 뿌듯하게 마침표를 찍었던 글들도 지금 페이지를 넘겨보면 습작 수준의 단편소설 몇 편과 수십 편의 낯부끄런 시들 뿐입니다. 누구에게도 보여준 일이 없어 다행입니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이 낯선 공간을 펼쳐 두고 인사의 글을 쓴다는 일은 마치 억지로 페이지를 채워야 하는 반성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소년에 불과했던 제게도 어느덧 세월이나 시절이란 단어가 덜 어색해진 요즘입니다. 겨울태생이자 변두리의 작은 마을 출신으로서, 추위와 홀로 된 시간이 충분히 익숙해진 듯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쓰는 이 원고가 입을 냉해冷害도 그리 두렵지 않아 진 듯합니다.


조만간 불혹不惑을 맞이하게 될 나이.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을 때라는 그 속뜻이 등떠밀듯 용기를 준 것 같기도 합니다. 하물며, 지금 쯤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나'의 의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가 왔는지도 모릅니다. 그 숱한 의식을 곱게 다듬어 낸 글조각들이 타인에게 발견됨을 허용하리라 결심했습니다. 막상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하더군요. 달필과 달변이 우스운 재간둥이들이 세상엔 너무나도 많기에, 그리고 이 광활한 우주의 한 톨 먼지에 지나지 않은 내가, 내가 끄적인 낱말과 문장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크게 상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동안은 그동안 써왔던 습작들을 다듬는 데에 시간을 보낼 듯합니다. 브런치를 열기 전에 이미 십수 번 밤을 새워 왔지만, 역시 조금이라도 더 자연스러운 그럴듯함을 뽐내고 싶은 욕심이 여전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