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

마음이 머무는 곳

by 앤드류

마음이 머물고 있는 곳을 '심포心包'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것보다야 내 마음이, 내 몸속 어딘가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안심이었다.



예고 없이 글감이 떠오르면, 허둥지둥 노트와 펜을 찾아 가방을 뒤적거리곤 했다. 어두운 길가에 있을 때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제일 가까운 가로등을 찾았다. 노트에 휘갈긴 글은 처음 떠올렸던 몇 줄기 문장들의 조합에서 기어코 몇몇 단어를 탈락할 때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표현을 찾기란 영 까다롭다.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다시 가방을 고쳐 매고 최대한 가까운 가로등 동선을 따라 걸었다. 누가 보면 고뇌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그런 걸 원했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 멀찍이 지켜보고 있기를. 특히 한밤중일수록, 어둠 속에 숨겨져 있을수록 누군가 발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촛불처럼 일렁거리지 않았던가.

그건 시절 속 상처를 보듬으며 지내왔기 때문이었을 테다. 녹록지 않았던 환경과 현실과 관계들을 두고 어쩔 줄 몰라했다. 타고난 천성과 '재능 없는 재능'은 또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혔던가. 그런 것들이 모두 한두번을 넘어, 서너번을 넘어, 예닐곱은 더 넘어 좌절감을 안겨줬을 것이다.


어떤 이름들은 어떤 사건들과 함께 종일 머리맡 근처를 빙빙 돌며 떠나지 않았다. 술에 취한 듯 기분 좋은 현기증이 느껴질 때면 가만히 그것들을 따라 비틀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터져오르는 엔트로피처럼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시원하게 무어라 정의를 내려주길, 판결을 기다릴 원고를 법정에 초대했다. 관찰자였던 나는 피고가 되었다. 곧이어 판사, 변호사, 검사가 되기를 반복했다. 반의 반쯤 미친놈처럼. 하지만 그 모든 이들은 나였기에, 훌륭한 판사도, 노련한 변호사도, 정의로운 검사도 없었다. 멀뚱히 선 원고는 강변하지 않았고 사건의 중심이었던 피고, ‘나’는 오늘도 내려질 무기한 집행유예 선고를 기다렸다.

뭔가 다른 주제가 불쑥 끼어들어 망상으로 엮인 타래를 낚아채기까지는 그렇게 일인극 아닌 일인극에 빠져들었다. 여하간 이런 망상적 습관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최대한 사람들을 찾아다녔던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타고난 술꾼으로 생각했다. 소주를 두세 병쯤 기울여도 술기운보다 구역질이 더 빨리 찾았다. 취기보다 독한 망상에 절어 지낸 탓이었을 테다.

함께 술을 어울려준 이들은 이상하게도 열에 아홉 동생들이었다. 태어난 생년월일로는 두어 달 차이도 안 나는 한 살부터, 열 살 차이까지. 첫 시작은 직장 동료들로부터였다. 한두 사람의 지인들, 그 지인의 지인들, 그리고 또 다른 지인들이 모여 어느새 스물에 가까운 모임이 되어 있었다. 퇴근을 일찍 마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보드게임이나 실내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별 관심이 없던 나는 뒤풀이 술자리에나 참석하곤 했다.

누군가를 흑심을 가지고 대했던 적은 없었다. 취기가 올라 음흉한 시선으로 누군가의 가슴팍이나 허리춤 아래로 다리선을 흘겨보기도 했지만, 대체로 남녀노소의 구분 없이 그들을 똑같이 대하고 싶었다.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막히는 타이밍을 퍽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내심 나를 독특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태도는 일종의(확실한) 도피이기도 했다. 나를 현실세계로 낚아채주는 그들의 웃음을 위해서였으니까.


연애를 아주 안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연애가 망상의 도피처가 되어 주진 않았다. 물론, 홀로 망상에 허우적거리던 밤시간보다는,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 훨씬 행복했다. 그녀와 나란히 몸을 뉘이거나, 꼭 끌어안거나, 살결과 향기, 그런 육감을 느낄 때면 어떤 초현실적인 도피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운명이 정해준 짝사랑꾼이었고, 결국 차고 넘치게 쏟아부은 감정들에 외사랑이 되어버리면, 또 다른 짝사랑을 찾아야 하기도 했다.




글을 쓰는 일만큼 축축하고 무거워지는 일은 제겐 흔치 않았습니다. 마음을 들여다 보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마음을, 언젠가의 나였던 나의 마음을,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나의 마음을.

쉴 새 없이 빠져들어, 가장 깊고 어두운 곳으로 무겁게 가라앉아야만 했습니다. 요령 좋은 재주꾼이 아니었기에, 그래야만 글이 써졌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언젠가의 누군가였던 당신의 마음을, 어쩌면 영영 다가오지 않을 당신의 마음을.

글을 쓰는 일만큼 축축하고 무거워지는 일은, 제겐 사랑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줄곧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온 마음이 흠뻑 젖어 무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욕심껏 짝사랑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야만 짝사랑이 달콤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