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愛과 증오憎惡와 악의惡意
미워하는 마음이야 차고 넘친다.
늘 사랑과 함께 하기 때문에.
악의에 관하여서는 쉽게 말해선 안 된다.
너무도 쉽게 쓰여지기 때문에.
*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랑의 종착지를 미리 정해놓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결국, 사랑 그 자체와 증오에 관하여 서로 번갈아 가며 적어내는 이야기임을 아는 것이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혹은 열린 결말을 두고 어떻게 결말지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임을.
사랑은 미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증오憎惡와 떼어놓을 수 없다. 상처를 받을 때면 우리는 주저 없이 증오를 꺼내 들어 저울의 반대편에 올려 둔다. 사랑으로 기울면 애써 위로하고, 칼날 같은 눈금이 증오를 향해 곤두박질 치면 끝내 사랑조차 내려둔다. 분홍빛 펜을 들고 서로 번갈아 기록해 온 이야기를, 검정보다 못한 투명함으로 먼저 마침표를 찍어내는 것이다. 사랑은 이렇게 미워하는 마음과 함께 있다.
한편, 스스로를 증오하는 마음과 누군가의 깊은 흠모가 함께하는 사랑도 있다더라. 어찌 됐든 사랑이란 것은 증오와 함께 저울 위에 매달아 지는 형편인 셈이다.
맹목적인 믿음과 고결한 마음이 사랑의 알파요, 오메가일 리 없다. 저울을 달지 않는 사랑은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에겐 허무맹랑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엇된 꿈이더라도 아름다움을 좇지 않으랴.
그러나 악의惡意는 다르다. 사랑에 있어 악의란 이런 것이다.
*
며칠새 희게 돋아난 손톱을 보다가 어쩔 줄 몰라 이불보만 토닥거렸던 밤이 무심결 스쳐갔다. 어차피 읽히지도 않을 책 한 권을 펴두고, 밤새 물수건을 만지작거리며 네 머리맡을 지켰던 그날밤이.
그날 나는 널 많이도 미워했다. 더 힘들어했어야지, 더 미안해했어야지, 하며 어린애 잠투정하듯 차라리 따지고 봤더라면, 그랬다면 너는 어미라도 된 듯 내게도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음을 눈치챘었을까.
너는 너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찬란했던 너의 청춘을 그늘로 내모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기어코 술 취한 골목을 서성이기로 했던 그날도 너는 온갖 악의로 첨벙거리는 술잔을 실컷 들이켰겠지. 낯선 시선과 음흉한 수작들을 몸소 체험했겠지. 네가 원했던 것들은 그런 것들이었고 그 대가로 열병을 앓게 된 거겠지. 그런 곳으로 널 보내며 여전히 의심스럽기만 한 밤길의 낯선 선의善意를 다시 한번 믿어보기로 한 내가 병신이었지.
홀로 보내는 밤조차 아까워 널 떠올리기로 밤새워 펜을 들었던 나는 없었다. 한때 내 심장보다 너의 비단결 같은 머리칼을 더 사랑했던 나는, 어느새 네 모든 걸 사랑할 수 없어 나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차라리 세상 어딘가 생사조차 모르는 어느 무명無名의 이름을 마음에 품는 것이 나았다. 네 안위를 걱정하느라 잠을 설칠 숱한 밤들이 아까워지기 전에 널 보내야 했다.
한편으론 이해했다. 너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네 마음을 오롯이 버텨내는 일 보다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밤거리에 안락을 느꼈을 테다. 네게 그런 시간이 허락되어야만 한다면, 그런 너조차 온전히 품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자 했기에 그런 너를 어른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간의 악의는 꼬리뼈쯤에 달라붙어 점차 선명하게 늘어지고 있었고, 그걸 본 나는 너를 놓아주기로 했다. 어른스럽게.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을 빌렸다. 그렇게 네게 고마웠다, 미안하다, 잘 지내라 말했던 그날, 내 발치를 보며 그야말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던 모습은 왜 또 그리도 아름다웠는지. 그런 널 보며 억지눈물로 반쯤 우는 시늉을 했던 건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날 네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도 나를 위한 일이었다. 어른스럽게, 나의 악의를 숨기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야만 널 만난 일년 하고도 육개월이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널 떠올리며 써 내려갔던 기록들이 의미를 가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네 발치에 닿는 어느 곳이든, 그곳에서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흠뻑 취하길 바랬다. 그렇게, 견딜 수 없는 숙취처럼 간밤의 기억이 몇 번이나 고통스럽다 보면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너만의 안정을 찾아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길 바란다. 악의를 가지는 일은 결국 가슴속 어딘가 가시를 품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가끔 그때가 떠오를 때, 어딘가 쿡 쑤시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아직 나이에 걸맞는 어른이 되지 못했나 싶다. 너는 지금쯤 네 나이에 맞는 적당한 어른이 되어 있길 바란다.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어느 길가에서 날 마주친다면, 다신 네 청춘을 넘보지 말라는 충고어린 눈빛으로 날 흘겨보길 바란다. 아직도 그날로부터 늘어진 악의를 잘라내지 못했느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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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런 것이다.
당신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다행입니다. 세상과 세월의 무자비함이 당신을 늙어빠진 고목처럼 비쩍 마르게 했구나 생각했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새삼 놀랍습니다. 그간 당신이 뿌려 놓은 씨앗은 증오와 악의를 양분으로 자랐습니다. 자라고 보니, 더 이상 당신을 표현하는 몇몇 단어들에 치를 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리라 생각지 못해 또 새삼 놀랍습니다.
살아오며 많은 이름들이 새겨졌지만, 한 번도 용서하리라 마음먹어본 적 없는 몇 없는 이름들 사이에 당신이 있습니다. 용서는 스스로를 위해 한다 했던가요. 썩 마음에 드는 구언이지만, 나는 나를 위해 당신을 용서하지 않기로 했고, 그런 작은 나의 일부를 두 팔 벌려 용서했습니다.
일말의 바람이 있다면, 한 번쯤 깊은 사랑을 받아보시길. 받은 만큼 돌려주는 행복이 있음을 깨닫게 되시길. 그래서 미처 다하지 못했던 사랑에 후회하시길. 어떻게든 그렇게 오래오래 사시길. 늙어가며, 회한 속에 파묻히며, 바짝 말라가며, 그렇게 누구도 찾지 않는 고목이 되어 모래 속에 잊혀지시길. 행간의 공백조차 아까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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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이런 것이다.
제 젊음이 혈육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착취당했던 것이 두어달 사이의 일이었던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당신께서 내 명치에 주먹을 툭툭 가져다 대며 욕을 퍼부으셨을 때, 그간 당신을 향해 품었던 경멸심이 폭발하지 않았던 것이야말로 조금은 한탄스럽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저는 웃으며 살고 있고, 다시는 당신을 볼 일이 없기에. 그 사이, 어른된 당신은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혈육들과 얼굴을 마주하거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벌건 수치심이 차올라 얼굴까지 뜨거워지겠지요. 우스꽝스러울 모습에 실소失笑가 새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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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악의에 관한 글은 너무도 쉽게 쓰여지기에, 그것을 품는 일만큼은 쉽게 다짐해선 안 된다.
악의에 관해서 만큼은 어떻게 이렇게도 쉽게 쓰여지는 걸까요. 마음 깊은 곳 낮게 깔린 뭍을 조금만 퍼내어도, 생각의 끌銶에 새카만 검댕이 여실히 묻어납니다.
악의에 찬-때때로 나를 포함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방을 위한 티끌만 한 연민이나 동정심 따윈 흔적조차 엿볼 수 없습니다. 한편, 불만 섞인 투로 미움의 말을 쏟아내는 사람을 보면,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믿게 됩니다.
고백하건대 오늘의 나도 그렇습니다.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고자, 당신의 일부를 미워하고 미워합니다.
하지만 안심하시길, 기어코 당신을 담아낸 마음 그 어디에도, 악의가 비집고 피어날 틈이 없으니.
L 작가님께.
「악의에 관하여」의 초고草稿는 오래전부터 하루 한두번씩 떠오르며 마음을 괴롭히던 글이었습니다. 당신이 보기에도 앙심과도 같은 글감이 아닌지요. 글을 핑계로 악의를 드러내는 일이 과연 온당한가, 하는 내 수치심은 오늘 새벽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여전했습니다.
설마 당신이 용기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더라도 절대로 모를 겁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영감을 준다면 출판여부와 상관 없이 작품이고, 작가라 할 수 있다 했던가요. 작가님의 메세지가 발행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을 하다, 나의 수치심도 발행하지 않을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게 용기와 영감을 준 짧은 글귀가 또다시 누군가의 영감이 되리라 확신하며 작가님의 메세지를 이곳에도 남깁니다.
여러분. 사랑하면서 사세요!
미워하지 말고, 그럴 바엔 사랑하세요!
인정하기 싫어도 결국 인생은 사랑으로 살아가.
2025. 8. 29
A로부터
ps. 허락을 구하지 않았음에 미안합니다.
추천하신 곡에는 감동했습니다.
한동안 반복재생일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