汽水魚
이사와 전학을 오가며 전국팔도를 떠돌아다녔던 탓에 나의 유년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처음 고향땅을 떠나던 날 형, 가지마 형, 하며 엉엉 울던 옆집 동생을 빼고는, 지금도 그 시절 스쳤던 얼굴들의 이름을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여하간 그렇게 다난했던 초등생 시절을 끝내며 막 중학생이 될 무렵, 처음으로 ‘나’라는 의식이 갓난아기처럼 세상에 나타났다.
나는 누구인가, 저들은 누구인가.
거칠고 원초적인, 그 무렵에 썩 어울리지 않는 의문과 함께 거대한 강줄기에 뒤섞여 사는 물고기 때의 이미지가 한동안 계속됐다. 어쩔 수 없는 삶의 흐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한계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산끝자락 담수의 차가움. 그저 그것들과, 그들과 함께 흘러야만 함을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렇게 주변인들 속에 숨어들었다. 무리 짓고 사는 법을 미처 배우지 못했기에, 최소한 그들과 비슷하게 보이길 원했다.
다행히도 내겐 기수어汽水魚의 적응력이 있었다. 각기 다른 곳에 사는 무리들 틈에 섞여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팔방에서 유영하는 물고기들 한마리 한마리씩을, 그들의 헤엄치는 방식과 표정, 들썩거리는 아가미를 면밀히 들여다보곤 했다. 그런 습관이 고질적인 짝사랑의 단초가 되리라 미리 알 수는 없었을까.
분명 다른 이들과 비슷한 생김새, 비슷한 표정, 비슷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다른 곳에 사는 종種처럼 보였다. 딱히 더 우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되려 평범함과 수수함에 가까운 그녀가 궁금했다. 똑바로 쳐다볼 수 없게 만드는 그녀의 눈일까, 촉감이 느껴지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나오는 입일까, 가슴팍 아래 숨겨진 심장일까. 내 마음을 펄떡거리게 하는 그 마력魔力이 도대체 그녀의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갸우뚱거리며 그렇게 첫 짝사랑을 어렴풋 맞이했다.
같은 반이었던 우리는 교실을 가로지르는 모서리 양끝에 앉아 이따금씩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렇다기 보단, 총명하기까지 했던 그녀는 일방적인 관찰자의 호심好心을 곧잘 의식했을 터였다. 그러나 단순한 호기심好奇心이나 얄팍한 호감好感으로 비치지 않길 바랬다. 그것은 동경과 연모에 가까웠고, 두근거림이었고, 숨이 조여 오는 현기증이었고,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는, 이끌리고 있지만 절대 이끌리지 말자는 모순이었다. 그런 상태를 딱 들어맞게 표현하는 하나의 단어를 나는 아직도 모른다. 등교하는 물고기 때의 뒷모습이 넘실거리는 거리에서, 방과 후 적막에 잠긴 교정의 수면 아래에서, 낮아지는 강가의 노을 밑에서, 어느 밤 가물하게 떠오르고 저무는 꿈 속에서. 그 어디서든 그녀의 꼬리와 지느러미로 얄랑거리는 물결이 거친 물살이 되어 내게 닿고 있었다.
기수어의 사춘기, 길었던 한 번의 짝사랑 여정은 서로 다른 강줄기의 분기점에서 흩어지며 끝이 났다.
*
이십대 초년에 이르러서야 첫사랑-첫 연애-를 마주했다. 어느 날 전화를 걸어온 그녀는, 꾀나 오랫동안 뜸을 들이곤 말했다. 그녀가 뜸을 들이는 사이, 나는 당시 학과대표였기에 얼마간 있을 축제와 관련된 이야기거나, 가까운 지인에 관한 고민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화 너머로 들려온 말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 너 좋아하는 것 같아.
당황스러운 고백이었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내가 먼저 오래도록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을, ‘좋은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구분 짓기를 좋아했다. 대부분 명확히 구분 지어지곤 했다.
저 사람은 그래서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딱히 좋아할 만한 구석은 없지.
저 사람은 이래서 나쁜 사람이야.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이지.
하지만 그녀는 모두가 인정하는 진정 좋은 사람이자, 모두가 좋아할 만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단정할 수 없었다. 다만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어 온 짝사랑의 자리에 오래도록 그녀를 앉혀 두고 있었다.
밥, 먹을까?
어디어디에서 언제 몇 시쯤에 보자는 말로 전화를 끊고 현기증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 출처도 알 수 없었던 환희와 위안, 그런 온갖 격정이 한 번에 휘몰아쳤다. 온몸에 힘이 빠져버려 일찍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오래전 보았던 강줄기가 펼쳐져 그 안에 빠져들었다.
가만히 떠서 주변을 살피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그를 지켜보던 또 다른 기수어 한 마리가 있었다.
강렬한 물줄기를 일으키는 그 지느러미와 꼬리가 있었다.
생기 넘치는 그 눈동자가 있었다.
이마의 열기가 순식간에 열병처럼 피어올랐다.
당장 내일이면 지난했던 짝사랑들의 마침표를 찍을 것이었다. 수없이 찍어 두었던 물음표들에 하나하나 답을 줄 것이었다. 그렇게 애송이 첫사랑을 맞이했다.
*
3년 6개월.
서로 얼굴만 알았던 우리는 12월 밤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쳤지. 웃어 보이며 인사하는 너와 마주쳤던 그 순간부터 이듬해 5월까지, 그때 들었던 오래된 노래들이 기억을 스쳐가면 아직도 그때 그 길의 냄새가 난다. 그날의 네 고백이 없었더라면, 나는 얼마나 더 오랫동안 애송이에 그쳤을까.
제대를 코앞으로 둘 때까지,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날아온 네 손편지들은 셀 수 없이 많은 날 내게 행복을 주었다. 그리고 네가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수화기 너머로 이별을 전했던 너의 마지막 고백은 우리의 마지막 데이트를 허락했지. 10월. 아직 낮밤에 적응하던 탓에 가벼운 감기를 앓았던 너를 만났던 그날 저녁. 재회의 반가움으로 널 끌어안았지. 하지만 마지막임을 우리는 알고 있었어. 그날 봤던 영화 제목이, 그날 걸었던 거리가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평소 너만 좋아했기에 함께 가본 적 없던 어느 밀크티 카페로 들어갔던 것만큼은 생생해. 영업시간이 끝나가는 어색한 침묵 속, 조금은 덜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널 바라봤지. 늘 바래다주던 그 역 앞까지 걸음이 최대한으로 느렸는데, 너는 그런 나를 다 알고 있다는 듯 성큼 앞장서서 걸었지. 한걸음이 두걸음이 되고 어느새 발치에서 멀어진 네 뒷모습을 보며 애가 탔지. 걸음을 나란히 포개어 걷는 걸 나는 무척이나 신경 썼으니까. 겨우 널 따라잡았을 땐 결국 그곳에 도착해버리고 말았지.
늘 헤어지기 싫어 한두시간은 더 꼭 붙어있던, 막차가 들어올 때가 돼서야 그래, 잠시만 떨어지자 마음먹었던 그곳. 그곳에서만큼은 헤어지지 말았어야 했어. 그곳이 우리의 마지막 포옹의 장소는 아니었어야 했어. 들어오는 상행선을 놓치지 않는 척 먼저 널 보내고 그곳에 앉아 한참을 펑펑 울었다. 한두달만 더 일찍 입대했더라면, 적어도 그날만큼은 막차를 타지 않아도 됐을 텐데. 전철에 타고 현관문 앞에 서기까지 돌아가는 내내 울어서 눈가가 퉁퉁 불었다. 그렇게 애송이 살갗을 한 꺼풀 벗겨내 준 너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한껏 적어내곤 결국 전송하지 않았다. 그날의 마음을 어떻게 기록했었는지 어딘가에 남겨둘 걸 그랬다.
늘 2등이게 해서 미안했어, 늘 1등짜리였어, 하며 등을 두드려줬던 너에게 우는 표정을 보이지 않았던 건 가끔 그날이 떠오를 때마다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게 한다. 그러니 너도 잘 가렴, 잘 살아가렴. 2등이어도 썩 괜찮았어, 라며 웃으며 인사한다. 너의 1등이었던 그에게 가끔 기도한다.
너에게
아픔보다 건강이 찾길
불행보다 행복이 잦길
묻어둔 시절이 한두 번쯤 웃음 짓게 하길
그곳의 강줄기가 네 삶을 더 선명하게 하길
A로부터
삶을 흘러가는 무언가로 본다면, 그 흐름은 붙잡을 수 없는 강물과도 같다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정말로 그랬습니다. 특히, 생生과 함께 물려받은 환경이란, 성년으로 자라나고서도 수년은 더 맞서야만 하는 거대한 물살이었습니다.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그렇다고 지금도 믿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흘려보내지는 대로. 우리는 대체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세상에는 욕심껏, 재주껏, 그리고 마음껏 활개 치며 운명을 거슬러 오르자는 재간둥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비난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지만, 때때로 부러운 마음과 질투가 솟아오릅니다. 그들과 나의 몸담은 물줄기가 다른 것은 아닐까, 하며. 젠틀하게 흐름직한 그곳 강줄기 아래 가라앉은 모든 것들을 두고, 엉겁결 살갗에 닿아도 한없이 보드랍진 않을까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에게로든, 가까이 다가가면 비슷한 냄새가 납니다. 인향만리가 비슷한 뜻일까요. 질투하고 증오할만한 사람이 세상엔 크게 없었습니다.
넓은 바다의 물고기들, 때론 좁은 담수의 물고기들과 조우하고 저마다의 자유영自由泳에 때때로 함께하며 행복을 배웁니다. 서로 다른 삶들의 만남을 기적 같은 일이라 믿으며 눈길이 닿는 모든 것들 위로 생각을 얹습니다. 어느 우연들이 모여 운명인 듯 소용돌이친다고.
우리 모두에게 기수어의 적응력이 있기에 수면 아래 모든 물고기우리들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저마다의 기쁨과 슬픔을 저마다의 흐름에 맡긴 채 살아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 흐름 아래 어딘가 당신이 있음을 알고, 미리 마음에 품어 위로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