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선택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하고
허술한 진심은 곧잘 실수를 한다.
운명은 잔인하게도, 그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다."
*
이후로도 짝사랑은 때때로 점점이 피어오르고 저물었다. 그 피어오름과 저뭄의 사이에도 마음은 소란스러웠다. 짝사랑꾼들이 하는 일은 으레 그런 것이다.
비워둘 수 없는 마음속 빈자리를 무엇으로든 채워두는 것. 이별과 만남 사이. 잊혀지겠다는 다짐과 기약 없는 기다림 사이. 그 공백을 견뎌내는 것. 그것은 침묵하는 마음을 지켜보는 일이고, 그건 외로움이다,라고 기어코 써내지 않으면 아무래도 표현할 수 없는 일이다.
이별의 홀가분함은 잠시 느껴지는 환상 같은 것이었다. 결국 기다림과 외로움은 빈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때론 그 칙칙한 천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단한 호들갑으로 어느 마음들을 들쑤시게 하기도 했다. 아마도 모두 쏟아내 버린 마음을 되찾으려는 일종의 좀도둑질이었을 것이다.
바늘도둑이 점차 소도둑이 되어 가는 것처럼, 어느새 사회초년생이란 껍데기가 벗겨지던 무렵이었다. 한두 번 잇따랐던 행운이 내게 직업적인 성취를 가져다주었고. 그렇게 몇 번 들락거린 그 행운은 허파까지 가득 차올라 오만을 들숨 쉬게, 경솔을 날숨 쉬게 했다. 그것은 두세 번의 사랑을 잃어버린 애송의 것이었다. 단전부터 가슴팍 아래까지 이별의 잔해들이 들어차 보통의 방식으로는 숨을 쉬기 어려웠다. 하루 한두 갑씩 불을 들이쉬고 내쉰 연기를 눈으로 보며 그것들이 잿더미가 되길 바랬다. 바람을 타고 흩어져 어느 눈에 보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번 타올라 사라진 사랑은 불연성不燃性 이별을 남겨두는 법이었다.
그나마 술은 백해무익까진 아니었다. 이제는 사라진 달콤했던 기억을 혀끝에 선명한 씁쓸함으로 덮어냈다. 어느 술자리던 오가는 맹렬한 호감의 신호들을 마음껏 구경했다. 그들의 그런 야성野性을 멸시하면서도 얼간이들과 함께 취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필름이 끊긴 주정뱅이가 되어 귀소본능을 확인하고 싶었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라며. 하지만 이별의 불연성은 누적된 중금속을 닮아 있었다. 어떤 술도 그것을 배출해주진 않았다. 그렇게 엉망이 되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었다. 그 모든 휘청거림이 결국 허비임을, 청춘을 대가로 내 삶에 저지른 만행임을.
그 혼란스러웠던 겨울이 마지막 한기를 떨쳐내던 무렵. 생활은 단조로워지기 시작했다. 봄기운에 새싹이 트듯 구부정했던 몸은 자세를 되찾았다. 마음도 단순해지고 싶었다. 다시 펜을 들었고, 지난날 사랑했던 마음, 믿었던 거짓말들과 그 어리석음과, 그로 인한 실수, 운명이라 받아들여야 하는 이별, 그 잔인함에 대한 글을 썼다. 지금도 그 파괴적인 마음을 잘 다듬어낼 자신이 없어 잿더미를 털어내듯 한두 줄의 문장만 단시短詩처럼 건져두었다.
마주치는 어느 이름들을 두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있게 돼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지난 이별이 나를 아주 망가뜨리진 않았구나, 하며 새것인 듯 조금은 닳아버린 호기심으로 억지스럽게 마음을 채워 보기도 했다.
당신은 내 짝사랑이 되기에 충분한 사람인가요.
지난 이별보다 더한 아픔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요.
그런 마음이 얼핏 떠오르게 돼서야 그 겨울의 허비에 대해서 변명하고정의내리고 싶었다. 운명을 믿었던 대가를 다시 보상받고 싶었다.
원하던 게 뭐지? 결국 무슨 짓을 하고 싶은 거였지?
*
살아가는 일은 비단 미지未知에 대한 답을 얻어내는 일뿐만 아니었다. 사랑이란 뭐지? 내가 원하는 게 뭐지? 하는 그런 의문들은 오히려 고상하고 직관적인 것이었다.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때그때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그래서 더 깊이 번민할 수밖에 없는 질문은 선택을 요구하는 갈림길 앞에서 떠오르는 것들이었다.
한 번의 선택이 모든 방향과 사건을 결정짓는 삶의 갈림길.
한 번 걷기 시작하면 초단위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 선택의 갈림길.
한 번의 계절이 다시 지나가기 전에 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그런 지겨운 질문을 멈추기로 했다. 그저 하루하루 지나온 갈림길들이 있었고, 오늘도 내일도 수천수만의 갈림길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 받아들이기로, 너무 깊은 고민은 않기로 했다. 하나의 길과 그 옆 또 다른 길. 양자택일의 그곳은 언제나 후회와 미련을 남겨두는 법이었기에.
그리고 이 이야기는 내게 세 번째 선택지가 있음을 처음 깨닫게 했던 어느 인연에 관한 기록이다.
*
술집 오픈한다.
회사 선배가 돌연 퇴사소식을 밝혔다. 결혼 3년 차의 유부남이었던 그는 남성성과 여성성, 실력과 겸손, 지성과 유머를 두루 갖춘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갑작스러운 변덕은 주변인들의 걱정과 만류를 샀다. 내게도 그는 무모한 청년으로 보였다. 와이프와 함께 할 소소한 사업에 맹랑한 기대를 걸고 있는.
설마!
엉. 거기.
우린 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고 있었다. 마음이 잘 맞는 동료였기에 퇴근시간이 맞으면 종종 형동생이 되어 그날그날 주종酒鍾을 바꿔가며 술 한잔씩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가 말한 거기는 매일같이 가던 장사 안되던 단골집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곳 사장님과 얘기가 잘 풀렸다는 것, 그리고 인사성 밝은 형수그의 아내가 도리어 더 신이 나는 바람에 계약서에 덜컥 도장을 찍었다는 것이 대화의 골자였다. 안정과 도전이라는 중대사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조금의 고민이나 걱정도 없는 듯했다. 그는 당장 일주일 사이 퇴사했고, 각자에 주어진 책무가 달라진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다.
밤이면 아직 한기가 느껴지는 늦봄 즈음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던 길에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오픈식에 와달라는, 약간의 부탁조가 섞인 초대였다. 그동안 출퇴근 길을 지나며 내외부 공사과정을 거의 매일 보고 있었기에 오픈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미리 사뒀던 마네키네코-재물운을 준다는 일본풍 고양이 탁상시계-를 선물할 기대감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며칠 뒤 오픈식은 고즈넉한 초저녁의 해가 저물고서야 만석으로 떠들썩해졌다. 축하와 감사를 충분히 주고받았다 생각한 나는 스을 자리를 비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왠지 구면인듯한 두 사람이 가게 안을 둘러보는 모습이 보였다.
아! 오셨어요!
선배는 두 손님과 반갑게 인사한 뒤 나를 쳐다봤다.
기억하지? H기획 C 부장님, S 주임님
선배를 따라 처음으로 갔던 실무자협회 간담회에서 명함을 주고받았던, 당시 다녔던 우리 회사보다 훨씬 덩치가 컸던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대형기획사 담당자들이었다. 사이좋은 아버지와 딸 같은 인상이 꽤나 강렬했었기에, 두 이름에 남아있던 기억이 선명해지자 반가움과 놀라움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딱 한 번의 간담회에서 멀리 앉아 있던 S의 모습을 뜨문뜨문 훔쳐보며 감탄했었던 게 그 두어 달 전이었고, 도대체 가능하긴 한 건지 의문했던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게 바로 그날 오픈식이었다.
여기 같이 앉아도 되는 거죠?
표정이든 차림새든, 자신이 가진 무엇으로든 자신감을 뽐낼 줄 알았던 S는 그녀 자신과 썩 어울리는 당돌함으로 물으며 내 앞에 마주 앉았다.
분위기는 전에는 느껴본 적 없던 낯선 이들의 유대감으로 가득했다. 그녀의 상관은 내가 예비 사윗감이라며 선배에게 나에 관한 평판을 따져 물었고, 선배는 시아버지 노릇을 하며 며느리의 주방솜씨를 캐물었다.
그날 그 농담 같은 시간에 첫눈에 반한다는 뜻 말고도, 그녀에 관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낯선 곳을 구경하는 눈빛, 소주잔을 어루만지는 방식,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호방함, 알딸딸하게 취기에 오른 빈틈, 그런 빈틈 같은 단어선택,...
마감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우리는 거나하게 취한 몸을 일으켰다.
명함...
아, 그때 받았던 거 가지고 있어요!
그녀가 지갑에서 꺼내 보인 내 명함을 보고서는 웃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리고 다음 실무자협회 간담회가 열릴 무렵부터, 한 번의 계절이 또렷이 지나기까지. 우리는 선명하게 달랐던 서로를 사랑했던, 짧지만 진지했던 연인이었다.
*
여전히 부끄러움이 많았기에 민낯을 숨긴다 했어도, 그녀는 나의 대부분을 들여다봤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녀를 들여다봤다. 그녀의 전부는 아니었을 테지만, 나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녀만의 것들은 똑똑히 새겨뒀었다. 다만, 내 안의 무엇이 이별을 택하게 했던 걸까에 대해선 희미할 뿐이다. 나의 치부恥部를 그녀는 끝내 들춰내진 않았으니까.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눴던 늘상의 전화통화에서 여느 때처럼 다정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녀에게 미안함을 한 줌 토로했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만나서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렇게 그녀의 동네어귀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몰랐겠지만, 나 사실 프로 장난꾸러기.
헤어지기 싫다 투정을 부리며 나는 그녀를 몇 번이나 웃기려 했고 그녀는 몇 번이고 웃어줬다. 마주 앉은 사이 일 미터 남짓한 공간, 그날 우린 평소보다 거리감이 없었다. 고마웠다며, 많이 배웠다며, 응원하겠다며, 나 너 진짜 사랑했어 라며, 그렇게 우는 시늉을 하며 웃었던 나를 그녀는 마지막으로 감싸 안으며 보내줬다. 희망했던, 적어도 슬프지만은 않은 이별의 모습이었다. 우린 친구사이로, 협회소속 실무자 관계로 돌아갔다. 더 이상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
그리고 한동안 각자의 길로 돌아선 장면을 떠올렸다. 그 마지막 갈림길이었던 카페에서, 그녀는 떠나보냈던 지난 인연들과 똑같이 말했다. 사랑하니까 보내주는 거야.
···?
사랑하는 일이 돈을 벌어다 주는 직업이 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나는 타고나길 보기 드문 갑부가 됐을 터였다. 그래서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준다, 그 말뜻조차도 어렴풋 이해하고 있었다. 사랑해서 죽음을 택하는 일이 지금도 어딘가 벌어지고 있을 텐데, 죽는 일 보단 보내주는 일이 아름다운 선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열댓 번을 다시 태어나도 그걸 인정할 일은 없을 테다.
*
고작 서너 달.
그날 너는 말했지. 사랑하기에 보내준다고. 나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장난스럽게 따져 들었지. 지금이야 가벼운 미소와 함께 그날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때 그 카페에서 너에게 웃어 보였던 건 절반쯤 황당함이었다. 그 절반의 반은 웃으면 붙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머지 반은 너와 마주 앉은 그 시간조차 좋아서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사랑하기에 보낸다는 모순을 품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직도 인정할 수 없다. 나를 더 사랑하기에 보내준다는 네 말이 사실이었더라면, 그게 가능하다면, 그때 나는 너만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길목에 한참을 서성거렸던 걸까.
지금이야 눈을 엷게 뜨고서 네 말에도 일리가 있을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 주고자 했던 사랑은 너무 깊었다, 네가 던진 돌멩이는 형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작별의 인사를 선뜻 건네받기엔 두 팔 가득 사랑이 무거웠다, 돌려받은 마음을 내버려 두기엔 아까울 만큼.
마음이 너무 좁았다, 모두 인정하기엔.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 지금은, 너가 덜 사랑해서, 그래서 절대로 놓아주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있길 바란다.
*
사랑은 측정할 수 없다. 둘셋의 마음을, 나란히 펼쳐놓고 깊이와 넓이를 재어볼 수 없다. 저울에 매달아 무게를 재어볼 수 없고, 수평계로 기울기를 재어볼 수도, 나침반을 얹어두고 방향을 가늠할 수도 없다. 다만 이따금씩 마주치는 갈림길에서 추측해 결정할 뿐일 테다. 그래서 사랑은 종종 걱정거리라 할만하다. 이별과 만남의 갈림길 앞에서도 나보다 당신을, 당신의 한순간 안녕까지 사랑한다.
사랑은, 그런 식으로 짝사랑을 자처하는 일이었다. 걱정이라는 양분을 받아먹으며 자라나는 꽃이 아니겠냐며. 왠지 모를 염분으로 화원이 가득해지는 줄도, 어지간한 꽃은 견딜 수 없는 성분인 줄도 몰랐다. 때문에, 시들어가는 꽃을 책망할 권리를 가지려 했던 적도 없다. 때문에, 겨울 뒤 새봄이 오리라 믿으며 위태로운 꽃부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낙화의 전조는 한낱 실바람이 먼저 전하는 법이었지. 그건 나비의 날갯짓에 비견해도 충분하겠지. 그건 언젠가의 사소한 한숨으로 시작됐겠지. 그건 또 다른 날 너의 손사래에 떠밀렸겠지. 그건 또 다른 날 내 옷자락을 스쳤겠지. 너와 나, 아무도 모르는 사이, 살을 에는 온도로 돌아온 그것이 네 꽃대를 날카롭게 쓰다듬었던 거겠지.
사랑은 시든 꽃을 거두는 일도 필요한 것이었다. 너는 이런 꽃잎을 피웠구나. 이번에 떨어진 잎새는 이렇게 파랗구나, 하며 유난히 기억에 밟히는 것들을 주워 모아 어느 한 자리에 간직했다. 언젠가 잃어버릴 허술한 유리병에, 누구도 펼쳐보지 못할 사진첩 사이사이에.
백년해로의 인연도 채 일백 번의 계절을 견디지 못하잖아.
그렇게 말했던 그곳, 그 사거리 모퉁이에 섰던 그녀와 나를 떠올리며 사랑에 있어 갈림길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것은 연인으로 하여금 자유와 구속이라는 이자택일二者擇一의 갈림길 앞에 세워두는 일이었다. 물고기처럼 홀연히 떠날 자유, 혹은 연인이라는 미명하美名下아름다운 구실 아래에 두는 구속 사이에.
한때 피워냈던 러브스토리의 종장은 늘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만남과 이별의 갈림길은 그 어느 쪽에서 바라보더라도 함께 시작했던 하나의 점이 멀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숱한 갈림길들 사이사이에 놓여있던 세 번째 선택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것이었다.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가, 쏟아지는 설우雪雨의 한기가, 불어닥치는 바람의 전자기력이, 함께 날아드는 광물의 분진이, 무섭게 피어오르는 풀더미와 나무뿌리의 생명력이 뿔뿔이 흩어진 우리들의 자취를 완전히 덮어버릴 때까지.
당신이 남겨둔 것들을 떠올리며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었다.
시간은 어떻게든 우리로 하여 다른 길을 찾아가게 할 터였다.
최재천 교수님의 알면 사랑한다는 말씀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더라도 그에 대해서, 그의 특성과 그 배경에 대해서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는 통찰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십대 초년에 그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애송이에겐 매우 큰 행운이었습니다.
짧았던 인연이 떠오를 때면, 그때 보았던 그 모습, 알고 싶었던 그 삶, 받았던 그 마음의 질량과 부피와 깊이가 다시금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그 어느 마음도 측정해 볼 수 없겠지요. 그래서 가끔은 그때 그 갈림길의 흔적-세 번째 선택이 있음-을 보았던 그곳이 마음속 어딘가 희미하게 남아있음을 인정합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무리 짧더라도, 서로를 알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알고,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찰나의 우연이라도 곁을 스쳐가는 누구든 붙잡고 실없는 질문을 건네며 대화를 나누고 싶어 집니다. 어떤 가수를 좋아하세요? 못 먹는 음식이 있나요? 꿈이 있으신가요?
하물며, 내가 사랑하는 당신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