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방학식 날로 기억한다.
운동장 단상 앞에 모두가 도열했다.
방학식이란 설레면서도 귀찮은 법인데, 모두를 조금 더 귀찮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까마득한 국회의원 선배가 굳이 방학식에 귀빈으로 참석했으며 그로 인해 끝나는 시간을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평범한 고등학생으로서 그 존재와 사실이 귀찮을 뿐이었다. 머릿속에는 끝나고 놀러 갈 생각이 가득했다.
국회의원 선배가 마이크를 잡았다. 정치인에 대한 내 생각과 달리 그는 꽤 젊었다. 40대 초반 정도였을 것이다. 그가 뭐라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말 몇 마디에 우리 모두는 그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과연 정치인은 대단하다. 내가 삶에서 그것을 처음 체감한 순간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그의 말을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내가 했던 생각을 말해보자면, ‘멋지다… 나도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무언가 멋진 존재로 모교의 방학식?에 초청받고 싶다…’
그때로부터 약 15년이 지난 2024년.
나는 모교인 동래고등학교에 진로특강을 진행하는 강사로 초청받았다. 비록 방학식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학교는 내가 알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겉을 두르는 빨간 담장만 그대로일 뿐, 담장 안쪽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내가 다닐 때도 오래되었던 건물은 모두 허물어졌고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뛰어놀던 인조잔디구장 위에는 커다란 가건물이 자리했고 학교 건물로 쓰이고 있었다. 강연을 진행하기 위해 잔디밭 위에 올려진 가건물에 발을 디뎠다.
묘한 기분이었다.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 선생님들, 모두와 즐겁게 지내지만 가끔 벌을 서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학교를 감싼 빨간 담장만 그대로일 뿐, 안에는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건물도, 사람도, 나도.
후배들을 만나 밝게 인사하며 생각했다.
최선을 다하자고.
그러면 방학식에 불러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방학식 문의.
아 아니다... 강연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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