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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Jul 20. 2023

의향과 오해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을 지키고자 했던 때가 있다. 어떤 기분에도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는 사람은 굳세고 올곧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때는 느끼는 모든 부정적 감정을 감추며 의연해지려고 애쓰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 생각을 달리 하고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태도가 아니라면, 기분에 따라 맘껏 슬퍼하고 우울해하고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느꼈다. 우리의 마음은 결코 영원한 상태가 되지 못하며, 하나의 모양으로 귀결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기분은 날씨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 이후로 우울한 마음에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서 생산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다. 너무 깊은 울적함 탓에 잠자고 멍 때리기를 반복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서글픈 일들이 잦기도 했지만, 우중충한 날씨도 분명하게 한 몫을 했다. 오늘 낮에 구름이 걷히고 새파란 하늘이 드러나면서부터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서 뜬금없이 책상에 앉아서 영어 공부도 했고, 계속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내가 이중인격이 아닐까 의심했다.


마음이란 게 이렇게 어렵다. 한때의 마음은 모호하게나마 이름 붙일 수 있지만, 마음의 상태를 하나로 정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정해지지 않고 재빠르게 날뛰므로 쉬운 이해가 불가하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극적으로 뒤집히고 바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마음은 궁금해도 뜯을 수 없는 존재, 정녕 파헤쳐 살핀대도 확언할 수 없는 상태. 마음은 내 탓과 네 탓과 여러 요인 탓에 쉽게 변하고, 변한 마음은 우리가 느끼는 삶의 분위기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미묘하게 뒤틀어 고쳐 놓는다. 결국 우리는 어느 것도 알 수 없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나도 나를 결정짓지 못하니, 우리는 타인을 감히 판단할 수 없고 완전하게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삶의 결정적 한 장면에서, 우리는 묘하게 애타는 조급함 때문에, 어떤 사람을 완전히 파악해 내 손에 쥐고 싶은 의향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고정되지 못하고 난무하는 것들은 응당 불안을 부르니까, 우리는 관계를 안온하게 유지하고픈 욕심에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가정해 버린다. 성가시게 반복되는 원주율의 소수점 이후 숫자들을 모조리 반올림한 채 3.14로 가정하듯. 아니 그것도 모자라 문자 하나에 무한을 욱여넣고 이름을 붙여 못 박듯이. 우리는 감히 확언할 수 없는 한 사람의 마음을 고작 나의 편의 때문에 임의로 정의해 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따라서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모조리 짐작에 불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대하는 과정에서 감히 확단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대충 이름 붙여 다룬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넘겨짚은 마음일 뿐, 우리는 결코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니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계는 오해로 점철되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일이 잦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마음이 변하는 것은 당연지사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마음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섣불리 믿어 짐작하는 미련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 우정, 신뢰, 의지 따위로 명명되는 감정들이 지배하는 사람 사이의 모든 관계는 깨지고 상하기 쉬운 것이다. 어림잡아 헤아려 짚은 타인의 마음은 오랜 시간 그대로 흘러 서로를 끊을 수 없게 만드는 일도 가끔 있지만, 많은 경우 시간이 지나며 움직이고 돌아서면서 우리더러 부끄러운 오해를 확신시키도 하는 것이다. 진심된 의향이 오해로 굳어지는 순간 우리는 상처받기 쉽다.


우리는 매일 틀린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날씨가 나쁘면 죽을 것처럼 가라앉다가도 구름이 걷히고 해가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해지기도 하는 것이 우리 마음이니까. 내 옆의 사람을 있는 힘껏 모질고 억세게 대우하다 우연한 때에 그 사람을 은연하게 좋아하게도 되는 천진한 존재가 우리 마음이니까. 스스로 무척이고 실망하다가도 홀연한 계기로 나를 사랑하게도 되니까. 우리의 마음은 변덕이 심하고 못 미더운 모양새니까.


지금 내가 갖는 슬픈 마음에,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여주는 달콤한 마음에 너무 몰입하지 마시기를. 아픈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좋아지고, 사실은 좋은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아파지기도 할 테니까.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은 우연한 계기로 좋아질 수 있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뜻하지 않게 식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게 연약한 우리의 여린 마음이니까. 섣부른 감정과 해맑은 의향을 영원히 굳게 믿으면 아픈 결론으로 맺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므로. 오해와 오해가 서로를 엮는 세상에서 마음 깊이 다치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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