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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아빠 육아
by 두 개의 등대 May 10. 2018

그렇게 아빠가 되어갑니다

아이의 첫 수술


 “여보, 여기 와서 이것 좀 봐요. 애 배꼽 아래쪽이 혹처럼 불룩 튀어나와 있는데 이게 대체 뭐지?”
집에서 22개월 된 딸아이 샤워를 시키던 아내가 소파에 앉아있던 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이게 뭐지? 인터넷으로 한 번 검색해볼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아이가 영유아기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소한 증상들이 나타나고 없어지는 경우가 흔한 건 익히 알고 있던 바였다.


 <사타구니 위쪽이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배 안에 있던 장이 서혜부에 있는 구멍을 통해 나온다. 빠져나온 장이 구멍에 걸려 다시 복강 내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장을 빨리 환원시키지 못하면 장에 괴사가 일어나 위험해질 수…>

 <서혜부 탈장의 치료법은 수술밖에 없다. 진단되면 되도록 빨리 수술해주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신 마취를 한 후…>



 다급한 마음에 주방놀이를 하던 아이를 억지로 끌어다 앉혀놓고 아랫배를 가리키며 물어봤다.
 “우리 딸, 여기 아파?”
 단어와 단어를 붙여서 문장이라는 걸 이제 막 구사하기 시작한 딸아이가 대답한다.
 “요기 압파요.”



 급히 수소문한 끝에 이 분야에선 꽤나 인지도 있는 병원을 찾아 바로 진료를 예약했다. 스케줄이 밀려 열흘 뒤에나 진료가 가능하다는 걸 조르고 또 졸랐다. 이틀 뒤에 오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 검사와 엑스레이 촬영 결과를 보며 귀에 들릴 듯 말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탈장이 맞네요. 바로 수술 진행하지요."

 아이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천진하게 웃고 있다. 손바닥으로 자기 눈을 가렸다 떼면서 '짜잔!’ 소리 지른다. 혼자만의 재롱잔치를 벌이느라 바쁜 와중이다. 이 보드랍고 조그마한 몸에 어떻게 칼을 댄단 말인가. 우리 딸이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어깨는 축 가라앉았다.

 해가 들지 않는 답답한 병실 창문에 애써 담담한 척 기를 쓰는 나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문득 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한 장면이 떠올랐다.



“너 약 안 먹으면 죽는다고!”
동생이 약 먹기를 끈질기게 거부했나 보다. 평소 조용하셨던 어머니는 참다못해 갈라지는 목소리로 외치셨다.

 “이게 내가 잘못해서 아픈 거야? 내가 잘못한 거냐고!”
동생은 서럽게 엉엉 울며 방문을 쾅 닫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옆에서 바라본 그때의 어머니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덜컹 내려앉은 듯한 나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어린 마음에 생각했다. 어머니는 모든 걸 초월하거나 해탈한, 뭔가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고.

 동생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악성 빈혈 진단을 받았다. 원인도 알 수 없고, 특별한 치료법도 없었다. 동아줄을 태우듯 생명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는 그런 병이었다. 집안에는 항상 어떤 아저씨 아주머니가 가져다주신 헌혈증이 쌓여있었다. 어머니는 이게 있어야 동생이 헌혈증 하나당 수혈 한 번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한 번은 동생이 다니던 중학교에서 전교생이 성금을 모아 치료비로 보태라며 전달해 준 적도 있었다.

 어느 날 안방 문이 빠끔히 열린 틈으로 문을 등지고 앉아계신 어머니가 보였다. 누군가와 전화 통화하시는 내용을 듣고 알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동생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어 간다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은 큰 병원 소아암 병동에 있는 무균실 - 외부와는 차단된 하얀색 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어느날부터인가 티비에서 보던 아픈 아이들처럼 내 동생도 머리카락이 없어졌다. 어머니는 여전히 감정이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상하게도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리고 결코 웃지도 않으셨다.



 “수술 잘 끝났습니다."


 딸아이는 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은 듯 사지를 축 늘어뜨린 채 수술실에서 나왔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넌지시 알려준다. 많은 아이 부모들이 이 모습을 보며 울음을 터뜨린다고. 아기들은 전신마취 중에 폐가 쪼그라들기 때문에 계속 등을 두들겨서 울려야 했다. 안타까움과 딸에 대한 미안함, 모든 게 내 탓 같은 죄책감에 마치 누군가 나의 가슴을 꽉 쥐어짜는 듯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그 혼란한 감정에 빠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인생의 첫 부침을 힘겹게 겪어내고 있는 눈 앞에 있는 내 아이를 당장 안아줘야 했다. 그리고 정말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줘야 했다. 아이에게 ‘이런 건 금방 털고 다시 일어나는 거야. 아무 일도 아니야.’ 라고, '엄마 아빠는 괜찮으니 걱정 말고 어서 나으렴.’ 이라고 표정으로써 말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울음을 억지로 삼켜가시며 자식들이 당신의 절망만큼은 배우지 않길 바라셨다는 것을, 그리고 삼켰던 눈물을 동생과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어딘가에서 수백 번 토해내셨다는 것을.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야 백분의 일만큼은 이해하게 된 걸까. 속으로 얼마나 많이 삭히고 또 삭히며 살아오셨을까? 어머니의 그 마음을 20년도 더 지나서, 아빠가 되고도 한참 뒤에야 깨닫게 된 나의 한 없는 미련함에 계속하여 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이는 오늘 저녁도 밥을 먹기 싫다고 땡깡이다. 좋아하는 고기를 달라며 온 힘을 다해 두 팔을 휘적휘적하다가 이내 젓가락을 바닥에 집어던진다. 평소 같으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딸아이를 나무랐겠지만,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썽 부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게 사실은 진정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내 아이만큼은 희망을 보게끔 이끌어주는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해본다. 마치 나의 어머니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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