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기억을 굳이 들출 때

좋았거나 정말 떨쳐내고 싶거나

by francis kim

Hamilton Lake Domain

지난 10월 달에 가장 많이 방문한 공원이다. 둘레가 3km 조금 넘는 인공 호수이다. 물을 둘러싼 공간은 자연스럽게 조성되어 있다. 마치 호수가 수천 년에 존재했던 것처럼, 가장자리와 둘러싼 숲 사이에 인간이 길을 낸 것처럼. 인구 밀도가 고민일리 없는 나라의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쾌적하게 공원 부지를 확보해 놓았다. 덕분에 공원 한 켠에 하루 종일 주차해도 눈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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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tec Hamilton City Campus

해밀턴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도서관을 찾았다. 구글 맵은 도시 정중앙에 있는 대학을 가리켰다. 아무리 한적한 도시라도 번화가에는 무료로 주차하기 힘들다.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온종일 매일 주차한다면 금액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근처 무료 주차장을 찾아볼 수밖에. 그렇게 Lake Domain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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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s on Collingwood

뉴질랜드 생활은 단순했다. 새벽에 일어나 맨몸 운동을 하고. 8시에 도서관 근처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콘텐츠를 제작하고. 마지막 수업이 끝날 무렵 주차장으로 돌아가고 호수를 세 바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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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Zealand

북촌으로 이사하는 걸 무르고 나서 뉴질랜드로 떠났다. 가을 초입이었고 남은 한 해를 모조리 그곳에서 보낼 예정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못 떠날 것 같다며 주변인들에게 여행의 이유를 얼버무렸다.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바뀐 환경에서 비롯된 예기치 못한 무언가를 기대했었을 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기대한 환경에 이르렀을 때 막연함은 막막함으로 돌변한다. 결국 문제에서 도망치고 싶었다는 본심을 마주하게 되고.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적들이 스멀스멀 떠오르며 결코 변하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한다. 자책한다.

이러한 패턴은 심하면 목적지 공항에 내려서, 대게 이틀 후면 발현되었던 것 같다. 남은 여정이 한참 남았기에 실수를 만회하려고 한다. 뭔진 몰라도 뭐라도 해야지. 조바심이 자신을 등 떠민다. 자기혐오가 스며들 틈이 없이 빈틈이 없이 하루를 설계한다. 그때 즈음이면 목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은 굉장히 유사했다. 여태 도피했던 경로와, 한국에서의 생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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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p

호수 둘레 길이는 애매했다. 두 바퀴는 아쉽고 세 바뀌는 숨찬 거리였다. 세 바퀴를 달릴 수밖에 없었다.

길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숲 속이 들어가다 물 위를 달린다. 부잣집 정원 앞을 지나다 물가에 바짝 붙어 뛴다. 거대한 나무들에 가까워졌을 때는 구름을 보는 것처럼 고개를 치켜들다 경외감에 지나갈 때마다 매번.

도서관에서 걸어서 15분. 한숨 열댓 번을 하고 걱정과 자책과 망상에 가라앉을 찰나에 주차장에 도착한다. 차 속에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을 때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11km를 달린 후에는 희미한 희망이 새어 나오기까지 했다. 내일은 다를 거라는 기대를 품고 집에 이른다. 두 달 동안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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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지나서야 감상을 남긴다

당시 경험은 그래도 값졌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윤곽을 그릴 수 있었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대중 잡을 수 있었다. 자연에게 수없이 위로를 받았고 낯선 환경에서 오히려 자신감을 얻었다.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무슨 주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력적으로 흡입력있게 '잘'들려주고 싶었다.

잘하려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여태 정체했던 것처럼 결국 한 글자도 쓰지도 못했다. 불현듯 떠오른 그날 기억들에 오늘만큼은 내일이면 잊힐 다짐을 답변하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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