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 문제가 해결은 될까?
퇴사를 고민한 날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날처럼, 길 위에서 엉엉 울었던 날은 단 한 번뿐이었다.
2023년 여름,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악성 민원에 시달리던 젊은 교사가, 결국 교내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뉴스를 보는 내내,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아팠다.
왜 그토록 내 마음이 아렸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교사의 무너짐이 꼭 내 이야기 같았던 것 같다.
당시 나 역시, 매일같이 민원 전화를 받았다.
그날도 평범하게 시작된 오후였다.
“감사합니다, 시청입니다.”
익숙한 멘트를 입에 올리는 순간, 그날의 감정은 시작됐다.
“네 주둥이에 인주를 지져줄까?”
“나 칼있어. 칼로 찔러 같이 죽자.”
“어디 어른이 말하는데 공무원이 앉아있어? 물 따라와.”
그날 오전에 찾아온 민원인들은, 익숙하다고 느끼기엔 여전히 무서운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시작된 오후의 또 다른 민원인의 전화.
앞서 기질검사에서도 말했듯, 나는 자극을 추구하면서도 충동적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척도도 중간값에서 조금 낮은 편이다.
직장에서가 아닌 평소의 나라면 같이 화를 내거나 전화를 그냥 끊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의 나는, 끝까지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다만, 법령상 도와드릴 수가 없어서…”
어쩌면, 그렇게라도 끝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전화는 4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끊겼다가 다시 오고, 또 오고.
내 오후 시간은 그 민원인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사라졌다.
전화를 끊고 나서,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자리에서 몰래 훔친 눈물은, 더 이상 감춰지지 않았다.
같이 일하던 동료와의 관계도 별로였다.
민원을 함께 처리해야 할 사람이었지만, 오히려 내게 모든 일을 떠넘겼다.
신뢰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관계.
조직 안에서도 외로웠다.
그렇게 지친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퇴근하던 길,
창밖으로 한 고등학교 앞에 걸린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 저희가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순간, 숨이 멎는 듯했고, 눈물이 쏟아졌다.
버스에서 내리는 내내, 집으로 가는 길 내내 멈출 수 없었다.
교사들의 대민 업무가 이렇게 주목받는 날이 왔다면,
우리의 고됨도 언젠가는 이해받을 수 있을까?
아니, 사람들은 이런 걸 이해하려고나 할까?
‘그래도 공무원이 낫지 않냐’는 말,
‘연차 쌓이면 편해질 거야’라는 위로,
‘애 키우기엔 이만한 직장이 없지’ 같은 말들.
그 모든 문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자주 내 마음의 무게를 확인한다.
참는 게 무조건 성숙한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를 이해하고, 나를 돌보는 것.
그게 어쩌면, 진짜 나를 지키는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