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내어 상담선생님께 다시 연락해 보았다
꽤 늦은 나이까지 산타클로스를 믿었다.
막내와 10살이나 차이가 났기 때문에 동심을 지켜주려는 부모님 덕일 수도 있고, 그냥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한 번도 산타가 거짓일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어렴풋이 거짓말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 건 만으로 10살, 정확히는 초등학교 4학년 겨울이니, 태어나서 11년 동안 하늘을 날아다니며 선물 주는 흰색수염 할아버지를 믿었다. 한 가지 의아했던 건, 때로는 엄마 말도 안 듣고 거짓말도 했는데 매년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뭐가 됐든 선물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부모님 말에 의하면 기억이 나기 이전부터 디즈니 영화를 좋아했다고 한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디즈니월드에 놀러 갔을 때 놀이기구는 자처하고 하루 내내 퍼레이드를 챙겨 봤다고 한다. 마지막 퍼레이드가 끝나고는 신데렐라(배우)가 모든 퍼레이드에서 격렬히 그녀를 바라보며 좋아하던 검은 머리 어린이를 위해 특별 인사까지 해줬다고 한다. 좀 더 자란 후에는 공주의 테마송들을 모조리 외우며 그것을 부르고 춤추는 게 일상이었다. 예쁘게 생긴 공주들도 좋았고 그녀들을 구하는 왕자들도 좋았다.
어쩌면 아이돌 덕질을 하는 것도 산타클로스나 디즈니 공주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대 위에서 환상적은 몸짓으로 춤을 추고 노래하며 관중을 사로잡는 그들을 보면 너무 멋지고 가슴이 뛰어 황홀경에 들어가는 것 같다. 그 모습을 영원히 지켜주고 싶고 보고 싶어서 그들을 응원하는 걸 수도 있다. 아이돌의 개인사에 대해서 알려주면 고맙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어쩌면, 이 환상이 깨질까 봐 일 것이다. 무대 위의 그들을 볼 수만 있다면 계속 행복할 것 같다.
북스테이에 오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24년에 상담받았던 상담 선생님이 생각났다. 정신건강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이기에 여태까지 적어도 6명의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해봤는데 이 선생님은 내가 만났던 선생님 중에서 가장 잘 통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시던 선생님이었다. 아는 것이라곤 성함과 어느 상담센터에서 일하시는지 정도이고, 나이도 모르지만 선생님은 내가 하는 말들에 매번 진심이었고 경청하였으며 절망에 빠진 나를 끌어올려주는 구원자 같은 분이었다. 이 분과는 1년 가까이 상담하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그 선생님 앞에서 많이 울고, 많이 속상해했고 또 많이 힘을 내기도 했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독립 출판을 했고,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선생님은 바쁜 시간에 짬을 내서 독립출판물을 판매하고 있는 북페어에 와서 책을 사주시기도 하셨다.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날 정도로 좋아서 함박웃음 지으며 선생님께서 주신 꽃과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께서 내담자에게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지금까지도 감사한 순간이었다.
24년에 상담을 마칠 때 얼마나 구질구질하게 마쳤냐면, 선생님은 상담을 종료해도 된다고 했는데 나는 상담이 너무 좋으니 계속하고 싶다며 매달렸었다. 선생님은 그러면 2주 후에 보고, 3주 후에 보고, 마지막에는 1달의 텀을 두고 만나고 그 텀을 늘리는 것으로 생각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마지막 1달을 보내고 난 뒤에서야 겨우 마지못해 선생님과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 선생님은 내 기억 속에 '완벽한 선생님'이었기에 그 이후로는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다. 때때로 생각나고 궁금했지만 솔직히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기억 속에 있는 완벽한 선생님과의 추억이 혹시나 깨질까 봐 그걸 귀하고 예쁘게 두고 싶었던 마음도 분명하게 있다. 그래봤자 선생님이 갑자기 냉담해지고 그럴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큰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퇴사를 하고 나서는 연락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프로그램을 통해서 상담을 받게 되었고, 그 이후로 신변의 변화가 생겨서 이 참에 연락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내어 2년간의 사건들을 짧은(혹은 긴) 문장으로 만들어 문자를 드렸다. 퇴사를 했고, 좋아하던 아이돌은 아직도 좋아하고, 좋아하던 현실 남성분은 결혼하셨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좀 극단적이긴 한데 유쾌하고 밝은 마음으로 보냈다.
세심하신 선생님은 30분도 되지 않아 오늘 하루 종일 상담이 있어서 길게 답변은 못 드리지만, 혹시나 기다릴까 봐 미리 문자 남긴다며 내 환상에 딱 들어맞는 완벽한 답장을 먼저 주셨다. 결국 어제는 답장 못 하시고 오늘 아침에 답장이 왔는데 짧은 문자 안에서 본인의 근황도, 나의 마음이 어땠을지에 대한 위로와 인정도 다 포함되어 있었다. 나의 선생님은 여전히 완벽했다.
선생님께 북스테이 풍경을 보내드린다며 은근슬쩍 밤에 별 아래에서 찍은 내 사진도 보내드렸더니 기분 좋은 웃음이 났다고 또 다정하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을 영원히 좋아할 것 같다. 다음에는 더 좋은 소식으로 연락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결혼이라든지, 결혼이라든지, 결혼 같은 것 말이다 :D 그러면 실물로 선생님을 뵙고 만날 핑곗거리가 되지 않을까? 완벽한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