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 노력하지는 하지 말자
만으로 4년 동안 지내온 곳에서 퇴사하려니 미운 정도 많이 들어 아쉬운 마음에 퇴사 파티도 하고, 온갖 상사들과 약속을 잡아서 면담도 하고 선물도 드렸다.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아쉬움도 표하고 나만의 작별인사도 하며 마음 정리를 하고 퇴사한 지 고작 1주일 만에 소속감이 사라져 버렸다.
아직 휴가 소진 중이라 목요일까지는 재직 상태이긴 한데, 실질적인 마지막 출근일을 기준으로 사옥 출입을 위한 지문과 얼굴도 지워버린다고 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보안을 위한 당연한 처사겠지만, 매정하기 이를 데가 없다. 오늘은 마지막 월급까지 받았다. 복지 포인트 1년 치를 1월에 미리 당겨 써서 100만 원 가까이 되는 돈을 갚아야 해서 월급이 줄어들까 걱정했지만 미리 떼어놓은 온갖 세금도 상당해서 비슷한 급여가 들어와 1달을 살아낼 수 있게 됐다.
동료들은 여전히 친절하고 아직까지 살아 있는 실무자용 단톡방에 빡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은 하지만, 솔직히 이제는 다른 나라 이야기다. 속해 있는 업무 단톡방도 다 인사드리고 나와서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가 어렵고, 바로 위의 상사는 내가 정보를 빼낼까 봐 무서워 이메일이 지워지기도 전에 팀 공용 메일에서 나를 삭제시켰다. 목요일 이후면 이메일도 없어져서 더 이상 공유 캘린더 일정도 볼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정말 2주 안에 소속감이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소외당하는 것 같고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어렵게 적응한 회사였어서 그런지 미련이 남는 걸까 싶기도 하다.
입사 초반에는 당시 팀원들에게 왕따 당하면서 일을 못한다며 수습기간 연장을 강요받고, 눈물 흘리며 겨우 버텼던 시간들이 있었다. 한 동안은 점심을 같이 먹을 동료를 찾는 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고, 식후 혼자서 하던 산책을 함께 할 동료가 생겼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아 감사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있다. 좋은 상사를 만나고 난 후에는 그 상사와 계속 같은 팀을 하고 싶어서 기도드렸고 연속 2년을 같은 팀을 했을 때 "리더님이랑 계속 같은 팀 해서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고 상사분이 나중에 기억해 주셨다.(속으로만 생각한 줄 알았는데 기어코 말까지 했다)
그렇게 겨우 안정을 찾아서인지 이곳에서 생긴 소속감은 나에게 매우 중요했는데, 이렇게 1주일 만에 소속감이 사라지니 앞으로는 조금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도 별로 개의치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 후 이상하게도 나의 결론은 '너무 열심히 노력하지는 말자'가 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도 안 되는 결론이긴 한데, 이렇게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소속감을 갖기 위해서 내가 했던 노력들이 너무 덧없이 느껴졌다.
더불어 4년을 다녔는데도 이렇게 허무한 느낌이 드는데, 평생을 한 곳에서 일하거나 10-20년씩 일한 직장에서 나오는 어른들이 마음은 어떨까 헤아려보게 되고 왜 퇴직 후에 우울증이 찾아오는지 너무나도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것보다 더 큰 상실감이 온다면 나라도 슬프고 무기력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상하게 다음번 직장을 앞두고서 먹을 마음은 아니지만, 너무 열심히 소속되기 위해 노력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람들과 잘 지내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고, 적당히 해내도 괜찮은 것이구나 싶다. 50명에게 인사하고 나오는 소위 인싸 같은 사람이었던 나도 나오고 나니 그냥 무소속의 어떠한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소속이란 있다가도 없는 것이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 그것에 목매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