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직장까지 잠시 쉬어가기 타임
춘천에 있는 예쁜 북스테이에 와 있다. 재작년 말부터 뚜벅이로 갈 수 있는 곳에, 혼자 여행 가서 글 쓰고 오는 것을 몇 번 해보고 있는데 꿀 같은 시간들이다. 물론 다 핑계지만, 글 쓰는 데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마음먹고 어딘가로 떠나와서 글을 쓰면 집중도 잘 되고, 글을 써야지 최종적으로 생각이 정리되는 편이라 마음 상태에도 도움이 된다.
조용하고 고요한 곳에 오면 초반에는 춤추고 노래 들으면서 신나 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차분하게 앉아 나와 독대하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이번 짧은 여행에서는 무엇을 정리하고 싶은가 하면, 거창하진 않고 언제나 그랬듯이 지나온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다.
4월 둘째 주에 퇴사를 했고 5월에 입사를 앞두고 있다. 짧게나마 주어진 휴식 시간 동안 병원 다니면서 몸도 수리해야 하고, 못 만났던 친구들과 만나 캐치업하고, 도쿄로 콘서트를 보러 가는 여행도 계획되어 있다. 그 사이로 억지로 억지로 이 북스테이를 끼워은 이유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전혀 쉬는 것 같지 않게 시간이 후루룩 지나갈 것 같기 때문이었다.
4년을 꽉꽉 채워 다닌 회사를 관두는 것은 생각보다 감정 소모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성인이 되고 다닌 여섯 번째 직장이었는데,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했기에 다녔던 회사 중에서 가장 오래 다녔고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랑 일해본 곳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안 좋은 상사를 만나서 관둔 것이긴 하지만, 그전에 상사들은 좋은 사람들도 많았고 특히나 속해있던 지금의 팀 동료들은 더할 나위 없이 합이 잘 맞고 똑똑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마음 한 켠이 계속 무거웠다.
이전 직장들에서 퇴사할 때는 '시원 섭섭'이 아니라 '시원시원'의 상태로 나왔는데 여기서는 거의 '섭섭'만 있는 상태로 조금은 구질구질하게 나왔다. 퇴사 주에는 인사하고 만나야 할 사람들 명단을 써 놓고 하나씩 지워가면서 만나고 면담을 했고, 거의 50명이 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 과정에서 마음이 많이 정리되기도 했는데, 무엇보다 좋은 어른들의 조언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진심으로 나의 앞길을 걱정해 주는 어른부터, 이렇게 저렇게 설득하다가 안될 것 같으니 결국 눈물을 보인 이전 상사님도, 몇 번 뵙지 못했는데도 나의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해서 결국 나를 울린 상사까지 모두 너무 감사했다. 내가 관둔다는 소식을 너무 늦게 들어 당황한 대표님까지 모두 나에게 소중하고 고마운 인연이었구나 싶었고, 그래도 4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아서 감사했다.
그럼에도 관둬야 했던 이유가 분명했고,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 용기를 냈었기에 가능했던 이직을 앞두고 있다. 새로운 분야로 또 가는 것은 솔직히 너무 긴장되는 일이기도 하고, 이곳은 어떤 곳일지 예측도 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마저 일어난다. 이렇게 아쉬워하며 떠나왔던 이전 직장도 사실은 초반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낼 만큼 적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PTSD처럼 새로운 곳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이미 퇴사했고 이미 입사하겠다고 채용 건강검진까지 다 마친 상태이다. 조금 더 규모감 있는 곳으로, 그동안 부족했던 것을 채운다는 느낌으로 도전해 보는데 힘들어도 분명히 배울 것이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믿음 하나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고, 솔직히 지금은 그냥 쉬는 게 좋긴 하다. 계속해서 자도 자도 잠이 오고, 1,000피스짜리 퍼즐을 사고 그런 모든 시간들이 좋긴 하다.
이전 브런치 글에 그만 울고 싶다고 남기면서 직장도 하나의 문제로 넣어두고 힘들어했음을 고백했다. 세 가지 문제 중에 하나는 그나마 해결(?)이 된 것 같아서 일단은 감사하기로 한다. 어차피 앞으로의 일들은 일어나기 전까지 모르는 것이고, 아슬아슬하게 연봉도 높여서 협상했으니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좋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내기 시작해야 다른 두 개(덕질과 연애)의 문제들도 해결될 것 같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 실제의 감정 사이의 간극은 얼마나 큰가, 옳은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면 어찌나 긴장되고 무서운지 지금은 거의 공포 수준에 있긴 하다. 그렇지만 두려워한다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도 아니고, 휴식을 온전히 취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편해야 하기에 mind control, 이곳에서는 행복하게 쉬다가 갈 예정이다.
어쩌면 이 글 하나를 쓰기 위해 온 걸 지도 모르는 북스테이 Day1 시작 :) 하나 더 쓸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마는 오늘의 브런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