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무력감 사이에서
오랜만에 둘째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이번 주 화요일 날 뭐 해?"
"왜?"
"아니.. 엄마 병원 검사받으러 가는 날인데, 오빠 별일 없으면 오빠가 좀 모시고 갔다 오라고. 근데 오빠, 엄마 췌장에도 뭐 있는 거 알지?"
"내가 우째 아는데?"
"뭐?"
"말을 안 하는데, 우째 아는데?"
순간,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았다.
왜 아무도 부모님 건강검진 결과를 직접 챙기지 않는 걸까.
누군가는 물어봐야 아는 거 아닌가.
"엄마, 아빠, 건강검진 받으신 건 알지?"
"어."
"그거 결과 안 물어봤나?"
"물어봐도 뭐 그냥 별거없다카지 뭐."
분노가 서서히 차오른다.
'별거 없다고? 정말 별거 없나 봐?'
내 속은 끓지만, 차분히 말을 이어가 본다.
"아니, 오빠! 검사를 받았으면 오빠가 직접 결과지를 읽어볼 수 있잖아."
"몰라. 그럼 니가 직접 모시고 갔다 오든지!"
참나, 언제는 내가 안 갔나.
늘 내가 모시고 가고 있거늘.
내일도 내가 갈 예정이었지만,
교육 일정 때문에 못 가게 된 걸
왜 이렇게 이해 못 하는 걸까.
"야!! 나는 모시고 갔다 왔거든?! 내일도 내가 갈 예정이었는데, 교육 때문에 못 가서 오빠 휴무라 말해보는 거야."
"내일 아부지도 일 도와 달라고 부르시던데."
"그래, 그래. 바쁘네.
아빠 일 도와드리는 것도 중요하지. 알겠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타들어간다.
내 마음이 다치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리고 오빠는 여전히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허리 디스크 아니랄까 봐,
내 허리가 아픈 것도 디스크니 뭐니,
디스크 몇 번이니,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오빠, 엄마 좀 많이 웃게 해 드려.
엄마 웃게 해 드리는 건 오빠들뿐이야."
"니가 시집가면 엄마 제일 많이 웃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마음이 조급하고, 답답하다.
엄마 얼굴이 떠오르면서
이 전화가 끝나지 않았으면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무력감이 몰려온다.
결국, 한숨과 함께 내뱉는다.
"끊자."
가족사이의 대화는
때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내 마음이 급하고,
상대방이 제 길만 가는 듯 느껴질 때,
그 답답함과 서운함은 내 안에 쌓인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엄마 웃는 얼굴을 떠올린다.
그 짧은 미소 하나가
지금의 답답함과 분노를 조금씩 덮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