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단념이란 이런 거야
이토록 평화로운 단 하루만의 단유
단호하게 끊어낸다.
차분하고, 따뜻하게.
'엄마, 단호하다는 건 이런 거야.'
하고 알려주러 내게 온 것처럼.
그렇게도 밝게 웃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하루 만에 단유를 평화롭게 받아들이고
단 하루 만에 6개월 전처럼 아빠와 잠을 자고
2년 가까이 엄마 젖 없인 잠들지 않으려 울던 네가
하루아침에 내 품 가까이 오지 않고
거리를 두다니..
엄마만 보면 달려와 안겨 젖을 찾던
익숙한 네가
이제 한순간에
추억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내일도 그제처럼
울면서 밤에 엄마젖을 찾고
엄마가 없이는 못 자고
엄마 품에 안겨
엄마를 꼭 안고 늘 함께 자고
힘들고 지치고 목마르고 배고프고 졸리고 짜증 나고 속상할 때마다 내 옷을 들추며
내게로 돌진해 와 젖을 물 것만 같은데
그 모든 게 어제가 되었구나.
단 하루 만에.
엄마가 옷을 벗어도
쳐다봐도 못 본 척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책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겨우 22개월의 철이 든 네가
잠자리에서 처음
아주 또렷하게
아빠 엄마의 이름을 불렀어.
'엄마'라는 말에 이어
내 이름 두 글자를
그토록 다정하게.
심장이 일렁였어.
너는 지금 어떤 맘일까?
슬픔의 꼭지를 굳게 잠그고 있는 걸까.
차라리 네가 울었다면 나았을까.
드러내놓고 슬퍼하면 좋겠다, 딸아.
벌써 너는 마음을 삼키는 법을 알고 있구나.
너는 슬픔을 웃음으로 삼키는 아이구나.
엄마를 꼭 닮아서.
우리 셋은 평소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장가를 부르며 함께 누웠지만
엄마는 네 나이에 맞지 않는 어른스러움이 놀랍고
차분하게 이 독립의 과정을 이해하고 있는 네가 대견스러운 걸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했지만
슬프기도 했어.
네 눈빛이 달라져서.
철이 든 것 같아서.
네가 너무 빨리 어른이 되는 것 같아서.
이 모든 걸 다 이해하고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실은 준비가 안되어 미루고 있던 건
엄마였지.
네가 그런 엄마를 위해
오래도 기다려주었구나.
네 독립을 응원하고 기뻐하며
너와의 분리에 적응하는 일이
엄마에게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딱딱해지고 땡땡하게 부어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관리사님께 연락을 했어, 오랜만에.
네 얘기를 들으시더니
"참 단단한 아이네요."
하셨어.
"몇 날 며칠이고 너무 오래 울어서 단유를 포기하고 다시 수유하는 경우도 있어요."
우리의 평화로운 단유가
축복이며
그만큼 엄마와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언제나처럼
자기 전에 젖을 찾던 네가
실리콘으로 가려진, 사라진 엄마의 젖을 보고
울 줄 알았어, 당연히.
맹렬히 오래 울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어.
그런데 되려 울음을 뚝 그치고
두 눈이 땡그래져서는
"엄마, 아야."
엄마 아프겠다고 걱정해 주며
빨리 나으라고 '호-' 해주고는
아빠에게 안겨 잠을 자던 네가
정말 22개월의 아이가 맞는 걸까.
네가 밥 먹으려 할 때
엄마가 바닥을 닦고 있거나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엄마 이리 오세요."
"엄마, 하지 마~"
"앉아."
"엄마, 아~"
"옳지~"
하며 일하는 엄마를 기어이 식탁에 앉혀
쉬게 하고, 먹게 하고,
입에 넣은 뼈를 뱉게 하고
잘했다고 칭찬까지 해주는
엄마 같고 언니 같은
22개월의 내 딸아.
우리 딸아.
네가 오늘 처음으로
어린이집에서 2시간을 넘게 자다니
잠귀가 그리 밝던 네가
친구들이 깨어도 계속 낮잠을 잤다니
놀랍고 감사해.
엄마가 진작에 찌찌랑 안녕하게 해 줬으면
더 잘 잤겠구나, 우리 딸.
미안해하지 않을게.
최선을 다했을 뿐.
우리 둘만 아는
그 사랑이 넘치는
연결의 시간들을
소중히 담아둘게.
엄마는 그 기억만으로도
충분하고 넘쳐.
세상에서 가장
완전하고 평화로운 행복을
경험했으니까.
덕분이야.
엄마보다 단단하고,
엄마를 깊이 사랑하고 걱정해 주며
벌써부터 엄마를 챙겨주는
사려 깊고 따뜻한 우리 딸아.
잘 살아야겠다,
엄마가.
네가 훌륭해서
부족한 엄마가
이제 내 삶을 정말로
잘 살아야 하겠다.
자주 깨던 네가
어제 딱 한 번 깨어 엄마 젖을 찾았는데
사라진, 가려진 걸 보고는
울음을 뚝하고
엄마에게서 아빠에게로 달아나는 너를 보고
바로 잠을 잘 수 없었어.
쓸데없는 일들로 밤을 지새운 엄마는
아침에도 여느 때처럼 안기지 않고
혼자 노는 네가 낯설고 서운한 마음을 감추려
괜히 헌 책을 닦고
바닥을 닦고
빨래를 널었어.
일월.
갑자기 더 추워진 한겨울이야.
좋은 계절에 작별하고 싶었는데
네 잠과 성장과 치아와 아빠와의 연결감을 위해
좀 더 서둘렀던 거야.
따뜻한 봄이 오면 우리
이 적당한 거리감에 적응하며
서로 부쩍 깊어져있겠지?
그땐 자주 엄마를 안아주고
이따금 오래 엄마 품에 안겨있고
엄마가 필요하다고 찾는 날들도 있겠지?
그때까지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너와 함께할 공간들을 아름답게 가꾸고
네 단단한 영혼을 닮아 여물어갈게.
이대로 일터로 달음질쳐갔다면
이 공허함이 덜 했을까?
아니,
그건 아니야.
솔직한 시간들을 지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