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모순 중에서
요즘 세상 사람들은 위로가 참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래서인지 위로에 대한 글도 말도 책도 참 많다.
껍데기일 뿐인 성의 없는 말은 하지 말라던가 - 힘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같은?
말을 많이 하지 말고 가만히 안아주라던가.
맛있는 음식을 사주라던가.
위로를 할 거면 진심으로 공감하라던가.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라던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인생에 느낀 것이 있다면
사람은 똑같은 입장이 되어 똑같은 일을 겪어야만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지사지'란 말이 있지만 상대가 같은 일을 실제로 겪기 전에는
그저 아주 조금밖에 이해할 수 없더라.
그마저도 사람에 따라 이해해주지 못할 수도 있는데,
하물며 겪어보지도 않은 일을 이해하고 공감해서 위로해주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정말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위로는 어떤 위로일까?
위로를 받고 싶을 때를 생각해 본다.
내게 힘들고 슬픈 일이 생겼을 때는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에게만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같이 짊어져 주고, 나누는 건 아니지만
진심으로 들어주고 힘든 상황과 마음을 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 일이 생겼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도와줄 거 있으면 꼭 얘기 해."
아무런 악의 없이, 거짓 없이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크게 위로가 된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힘든 일을 주변에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미 현실을 살아가며 다들 지쳐있는데 나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고,
한편으로는 내가 힘든 것에 누군가는 속으로 기뻐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30대가 되니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걸 알려봤자 좋을 게 없어졌다.
힘들어서 어디든 털어놓고 싶은데, 이런 여러 생각들로 인해 말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최근에 [김이나의 작사법]을 읽었는데, 김이나 작사가님의 책에도 이런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내가 세상을, 사람들을 너무 삐뚤게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쁜 사람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 또 조금 위로가 되었다.
내 불행이 타인에게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음이 두려워 힘든 일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반대로 때론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는 소리다.
양귀자의 '모순'에는 이 현실이 고스란히 나온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가면을 쓰지 않은 진실.
그래서 조금은 마주하기 불편하지만 진실인 위로의 모순.
이런 모순 없이도, 순수한 마음 그대로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정말 축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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