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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크컨설팅 Jun 18. 2020

퍼실리테이터의 가방 속

Facilitation 퍼실리테이션

퍼실리테이터의 가방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Facilitator"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촉진제"라는 뜻이 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촉진제는 '촉매의 작용을 촉진하는 물질 또는 어떤 일이 빨리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최근에는 사전에 '퍼실리테이터'라는 단어도 등재되었는데, '회의나 교육 따위의 진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돕는 역할'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역할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을 돕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퍼실리테이션은 기업 경영뿐 아니라 가정에서, 학교에서 지역사회에서 나아가 국회에까지 사람 사이의 소통을 돕는 참여의 원리이며 정신이고 문화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진정한 퍼실리테이션이 자리잡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난 경영이론들이 많습니다. 진정한 가치나 정신보다는 당장의 쓸모, 눈에 보이는 스킬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충분한 현장 경험으로 단련된 전문가의 손이 필요한 사안에도 아직 무르익지 않은 손을 손쉽게 빌려왔던 탓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일정 책임은 시장을 연 선구자들에게 있기도 할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 기업들이 퍼실리테이션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후 지금까지 퍼실리테이션 시장은 계속 확장하고 고도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생겼다 사라지는 경영이론들의 전철을 밟지 말겠다는 초창기 퍼실리테이터들의 자각과 노력도 한 몫했을 것입니다. 아직 성과를 논하기에 도입 역사가 길지 않지만 2020년 현재를 기준으로, 국내 첫 퍼실리테이션 전문사(인피플컨설팅)가 문을 연 지 11년이 지났으니 현재의 추세로 보면 어느 정도 긍정적 진단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초창기 퍼실리테이터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체감하고 이 일에 관심을 가지도록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했을 것입니다. 여러가지 노력이 있었겠지만, 퍼실리테이터들이 마다하지 않고 고객이 있는 현장으로 들고 다녔던 무거운 "물품 가방"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각종 색지와 기록 도구는 기본이죠!


퍼실리테이터의 가방 속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있습니다. 고무밴드, 풍선, 칼, 가위, 포스트잇, 접착제, 각종 테이프(도톰한 양면테이프, 얇은 양면테이프, 스카치테이프, 마스킹 테이프, 청색 테이프...), 마커펜, 각종 색지(A4, A5, A4 길게 자른 것...), 색카드, Image Card, 신호등 카드, 압정, 스티키월(Sticky Wall), 스톱워치, 점 스티커, 주사위, 트럼프 카드, 단어 상자...... 등등 물품은 점점 늘어나 특수한 용처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도 50가지 정도 됩니다. 


동의/공감을 한 눈에 파악하는 신호등카드: 손에 들면 솔직하게 되는 마법 카드죠~


어떤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그 때 어떤 것이 도움이 될지, 퍼실리테이터의 머리에서 어떤 조합이 어떤 것으로 이루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목적은 하나, 워크숍 같은 그룹 활동 참석자들이 효과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더 돕기 위해서입니다. 사소한 준비가 때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섬세함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준비된 퍼실리테이터입니다. :) 요리를 좀 해본 사람들은 요리의 세계는 무한하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물이 존재하고 인간의 뇌는 무한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퍼실리테이션의 세계도 무한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정카드: 나의 감정이 어떤가... 요 걸로 이야기하다보면 힐링의 마법이 벌어져요!


사람은 '엔터'를 누르면 답이 나오는 기계가 아니라 환경의 영향을 받는 생물이기에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습도가 높고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에도 에어컨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배가 고파도 여전히 고성과를 올릴 것이고 기분이 좋은 나쁘든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이 있든 없든 사람들은 늘 같은 성과를 낼 것입니다. 불쾌지수라는 말이 뉴스거리가 될 필요가 없고 사전에서 사라져 버려야 할 것입니다. 퍼실리테이터는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하는 데 최상의 온도와 습도를 맞춰줄 수 있어야 합니다.


준비하는 데 시간 좀 걸리겠죠?


퍼실리테이터의 세심한 준비의 일부는 가방이 보여 줄 수도 있습니다. 퍼실리테이터의 가방 속에는 각종 생각 촉진제와 소통 촉진제, 그리고 참여 촉진제가 들어있습니다. 노련한 퍼실리테이터일수록 다양한 처방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미난 물건이 잔뜩 들어 있는 저의 빨간 여행가방을 보고 마술상자같다고도 합니다. 퍼실리테이터의 가방 속, 소통을 이끌어 내는 마술 용품이 들어있다고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니겠죠? 


마술사가 마술을 준비하는 것처럼


퍼실리테이션이라는 것의 존재를 인지하고, 업무를 통해 익힌 지 4년, 본격적으로 전문퍼실리테이터가 된 지 올 해로 어느 새 12년차가 되었습니다. 직업으로 10년 쯤 하자, 도구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최소한의 도구로 더욱 자연스럽게 세션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일상적인 업무회의를 효과적으로 도와 줄 의사결정 원리를 전파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복잡한 토의를 효과적으로 해야하는 굵직한 워크숍에는 다양한 촉진제들이 여전히 필수입니다. 특히, 초심자라면 '개인기'를 너무 믿기보다 철저한 사전 계획과 최적의 도구를 고민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엇 또는 서너 사람 간의 그룹 대화 정도가 아니라, 한 두 시간의 간단한 일상 회의가 아니라, 십 수명 또는 수십 명 이상의 굵직한 워크숍을 체계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도구들이 필요합니다. 최적의 도구는 토의 시간을 단축해주고, 소통의 효과를 올려줍니다.


무겁지만, 오늘도 가방 끌고 달립니다. :)



주현희

링크컨설팅 대표

국제공인 퍼실리테이터 IAF CPF

한국퍼실리테이터협회 이사, KFA CPF

'소통을 디자인하는 리터 퍼실리테이터' 공저

'소시오크라시, 자울경영 시대의 조직개발' 번역서 감수

www.lii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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