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ilitation 퍼실리테이션
아이디어 도출을 위한 워크숍 과정에서 발산된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검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어떤 아이디어가 우리가 찾고 있는 최적의 아이디어인지 판단하게 됩니다. 장점이 많은 아이디어와 단점이 더 많이 보이는 아이디어를 가려내게 되됩니다. 저마다 관점이 달라서 하나의 아이디어에 대한 판단도 다르기 마련인데, 문제는 서로 다른 관점의 의견이 충돌하여 더 좋은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는 긍정적 측며도 있고 부정적 측면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돈이 너무 많이 드는 아이디어입니다"라고 비판하면 누군가 "그래도 정말 독창적이지 않나요?"라고 받아치며 불필요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두 사람의 의견 모두 맞는 말입니다.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일찍이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한 번에 하나의 관점으로 토의하자는 이론이 제시되었습니다. 여섯 색깔 모자 기법은 생각하는 방법에 관해 여러 저작을 발표한 바 있는 에드워드 드 보노의 이론으로, 여섯 가지 색깔에 빗대어 토론의 방법을 설명합니다. 토론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여섯 마당으로 나눠 놓은 것입니다.
* 정확한 팩트가 무엇인지, 필요한 정보는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나눈다 : "흰색모자를 쓴다"고 정의하자
* 직감적으로 어떤 느낌이 드는지 가볍게 이야기 나눠본다: "빨간모자를 쓴다"고 정의하자
* 이 아이디어의 장점과 수반되는 긍정적인 효과는 무엇일까?: "노랑모자를 쓴다"고 정의하자
* 이 아이디어의 단점, 위험요소, 부정적인 파급효과는 무엇일까?: "검정모자를 쓴다"고 정의하자
*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할 창의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초록모자를 쓴다"고 정의하자
* 이제 충분히 토의했으니 결정하자! 어떻게 결정할까?: "파란모자를 쓴다"고 정의하자
각 색깔의 모자를 어떤 순서를 쓸 것인가는 진행자의 판단에 달려 있으나, 무난한 순서로 설명하자면 흰색 모자부터 설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흰색 모자를 쓰자는 말은 누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더 알아야 할 것과 그것을 어디서 누구를 통해 얻을 것이냐 즉, 객관적 정보와 사실에 관한 논의만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최소한 실체는 알고 논의를 전개하자는, 듣고 나면 너무나 당연한 논리인데 종종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희고 깨끗한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듯 참석자들이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할 정보를 먼저 그려봅시다.
아름다운 감정의 극치, 정열의 장미는 단연 빨간색죠. 회의할 때 빨간 모자를 쓰면 왠지 직관적으로 느낌이 좋다거나 좋지 않다거나, 이런 일은 누가 잘할 것 같다거나 논리적인 근거보다는 참석자들의 감정과 예감, 직관 등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창의력 전문가들에 따르면 창의적인 생각이나 직관은 종종 논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지식이 순간적으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뇌리에 번쩍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빨간 모자 세션은 참석자들의 막연한 걱정이나 기대감 등 인간이기에 당연히 갖게 되는 감정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감정을 넘어 생산적인 논의에 몰입하는 관문 같은 효과를 가지기도 합니다.
다음은 어떤 색깔을 이야기할까요? 여러 가지 우려와 걱정을 말하기 전에 우선 희망적인 상상, 긍정적인 평가를 권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나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위험에 대비하기에 앞서 긍정적인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것을 마다할 리 없겠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란 모자, 노란 단복, 노란 가방, 노란 신발을 신은 유치원에게서 느껴지는 희망처럼 노란 모자를 쓰고 어른인 우리도 마음껏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논의 중인 아이디어의 가능성, 긍정적인 파급효과에 집중해보는 것입니다.
비판적인 평가,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최악의 시나리오 상상, 치명적인 약점 등을 논의하게 하는 모자의 색깔은 검정색입니다. 변고가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영화 속 먹구름처럼, 상처 받은 사람들이 동굴 속으로 은둔한다는 표현처럼, 한 줄기 빛도 없이 어두운 터널처럼 까만 모자를 쓰면, 철저하게 빈틈없이 아이디어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 현실적 한계, 부정적 파급효과에 대해 토론합니다. 평소에 회의만 하면 자금이 충분한지, 경험이 있는지, 만에 하나 잘못되었을 때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온갖 문제를 제기하는 통에 심리적 불편을 겪은 경험이 있다면 이런 날카로운 리스크 관리자들과 함께 검정 모자를 쓰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봅시다. 업무나 과제의 완성도를 올려줄 것입니다.
필요한 정보를 파악하고 감정의 문턱을 넘어 희망의 모자와 걱정의 모자를 썼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살리면서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따뜻한 봄날, 아무것도 없을 듯한 땅 위로 돋아나는 새싹 같은 초록 모자를 모두 쓰고 머리를 맞대면 섬광처럼 근사한 해결책이, 처음보다 더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까요?
파란 모자로 마무리해봅시다. 많은 기업 심볼의 색으로 파란색이 채택되는 이유는 파란색이 신뢰와 합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파란 모자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하나는 이제 논의를 마무리하고 결정하자는 의사 표현이고 또 하나는 의사진행 발언 또는 회의 진행 권한 부여입니다. 이러한 특성상 워크숍 참석자도 쓸 수 있지만 주로 퍼실리테이터가 쓰게 되므로 '퍼실리테이터의 모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섯 색깔의 의미를 알았다면 어떻게 운용할지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실제로 많은 경험을 쌓기를 바랍니다. 모자를 쓰는 순서, 제한된 시간 안에서 어떤 모자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일지, 어떤 성격의 세션에서 이 기법을 활용할지 정답은 없습니다. 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참석자에게 어렵더라도 노란 모자를 쓰게 함으로써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회의 분위기를 조율할지, 검정 모자를 통해 비판의 멍석을 깔아줌으로써 한 두 사람의 지나친 걱정 때문에 회의가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리스크에 대비하게 할지, 어느 것도 명백한 정답이라 하기 어려운 경계에서 곡예를 해야 하는 사람이 퍼실리테이터 인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당신이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이러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는 점입니다. 브레인스토밍 후, 아이디어 검토나 의사결정 단계에서 활용한다면 불필요한 감정적 대립을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종 문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성장은 이루어집니다. 당신이 만약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썩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희망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노력하게 될 것이고 노력한 만큼 성장할 테니까요!
주현희
링크컨설팅 대표
국제공인 퍼실리테이터 CPF of IAF
한국퍼실리테이터협회 홍보위원장
'소통을 디자인하는 리터 퍼실리테이터'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