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마스터 퍼실리테이터가 전하는 '퍼실리테이터가 전하는 메시지
날이 갈수록 조직에서 구성원들간의 소통과 회의 방식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퍼실리테이터를 직업적으로 고민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회의나 워크숍을 설계하고 진행하는, 퍼실리테이터가 되기 위해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조직 내부에서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하는 것과 직업 퍼실리테이터가 되는 것은 매우 다른 일이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고민해야 하는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같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선 권위 있는 퍼실리테이터 Ingrid Bens가 언급한 퍼실리테이터 성장 3단계 이론으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당신은 속한 조직 내에서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자임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학습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회의에 적용해보면서 자연스럽게 동료들로부터 ‘뭔가 다르다’는 평을 듣는 순간이 올 것이고, 그것이 바로 조직 내 퍼실리테이터가 되었다는 뜻이다. 어디 가서 꼭 인증을 받아야 퍼실리테이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조직 내 퍼실리테이터는 이미 자신의 조직이 다루는 일의 내용과 방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회의 스킬과 진행 역량을 갖추면 된다. 이것이 퍼실리테이터로서 첫 번째 성장 단계이다.
만약 당신이 조직 내에서 그러한 경험이 쌓이고 어느 팀 아무개가 회의 진행을 잘하더라는 소문의 당사자가 된다면 다른 팀에서, 또는 잘 알고 지내는 지인으로부터 회의 진행을 요청받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면, 이제 낯선 주제에 대해 낯선 사람들을 대상으로 퍼실리테이션을 해야 하므로 더 많은 지식과 더 높은 역량이 요구된다. 이 단계가 퍼실리테이터 성장 두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퍼실리테이터협회(www.facilitator.or.kr)에서 인증한 퍼실리테이터 양성 기본과정을 이수한다면 2단계까지 성장하는 데 충분한 지식을 갖추는 셈이다.
외부 조직에 대해 퍼실리테이션 할 기회를 많이 가지고 훈련이 된다면 직업 퍼실리테이터가 되는 것에 관심이 생길 수도 있다. 직업 퍼실리테이터가 되는 것을 성장의 3단계라고 해보자. 직업 퍼실리테이터가 된다는 것은 수임료를 받고 상응하는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객은 당연히 ‘전문가’라고 불리는 당신에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앞뒤 없이 늘어놓을 것이고, 기대치도 상당할 것이다.
회의 진행 중에 퍼실리테이터는 참석자들에게 지식을 가르치거나 특정한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지만, 그 회의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는 고객에게 ‘이번 워크숍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특정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컨설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분야에 대해 컨설팅을 하려면 그 분야에 정통해야 한다. 경험이 충분해야 하고, 끊임없이 공부도 해야 한다. 따라서 1단계와 2단계는 큰 차이 없이 성장할 수 있지만 3단계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제, 어떤 조직 어떤 주제 어떤 참석자에 대해서도 다룰 수 있어야 하며 이 과정은 ‘조직개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전과는 다른 폭넓은 역량이 필요하다.
퍼실리테이션에 관심이 있어 스스로 ‘기본과정’ 교육을 신청해 이수한 사람들의 단골 질문 중 하나가 “이제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나요?”이다. 즉, ‘퍼실리테이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환원할 수 있다. 자주 듣는 질문이지만 진득하니 제대로 답변을 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문제 해결, 미션/비전/전략 수립 등 워크숍의 단골 주제들을 잘 다룰 수 있는 프로세스(GE Workout, Future Search, Appreciative Inquiry, Open Space Technology, World Cafe 등)를 익히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며, 질문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훈련하거나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Spot(세션 중에 짬짬이 수행하는 놀이 요소)을 다양하게 확보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하였다면 무엇을 더 배우기보다 기본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갈 것을 가장 권하고 싶다. 실제로 워크숍에서 대단히 다양하고 난이도 높은 스킬이 자주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포스트잇만 있어도 웬만한 소규모 워크숍은 잘 돌아간다. 그러나 이 간단한 기술도 잘 못 쓰면 참석자들로부터 ‘또 포스트잇이야...’라는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어렵지만 조금 더 근본적이 이야기를 해 보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분야의 책을 많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무엇이 있을까? 자꾸 적용해 보는 것, 잘하는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관찰하고 모방하고 변형해보며 내 것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 퍼실리테이션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좀 다른 이야기가 필요할 듯 싶다.
퍼실리테이터는 고객이 의뢰한 상황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객이 요구하는 대로 하면 되는지 다른 접근이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퍼실리테이터의 고객은 누구일까? 워크숍을 진행해 달라고 전화한 담당자일까, 워크숍 주제에 관해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누구일까, 토의의 주체가 될 워크숍 참석자들일까? 의사결정권자의 의도와 참석자들의 기대사항, 관점이 상충되면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가르마를 타야 할까?
1. 그 판단력은 어디서 나올까?
어떤 사안의 의사결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모두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할지 '논리력'이 필요할 것이다. '논리적 사고(logical thinking)'이 되지 않으면 참석자들 앞에 놓인 엉킨 실타래를 풀어갈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즉 '판단'하는 일을 잘 해야 한다. 거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판단'도 많이 해 보아야 한다. 어려운 결정 앞에 많이 서 보아야 한다. 다양한 입장에 많이 서 보아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을 다 경험해볼 수는 없기 때문에, 간접 경험의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 워크숍을 통해 만나는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냥 듣고 넘기지 말고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나의 경험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일을 추진해야하는 리더 또는 경영진의 입장과 어쩌면 '경영 속사정'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일반 구성원의 입장을 균형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감력'이 필요할 것이다. 참석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이 무엇인지, 정말로 그것이 중요한 것 같은지 공감할 수 없으면 좋은 프로세스를 설계할 수 없다. 타고난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면, 공감능력이 좋은 주변 사람을 잘 관찰하고 '따라하기'를 추천한다. 인간이 노력하고 학습해서 안 되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모르면, 잘 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흉내내며 학습하기 바란다.
이러한 이유로, 워크숍의 프로세스는 합리적이어야 하며, 기법은 촉진적(Facilitative)이고, 매체는 감성적이어야 한다. 때로는 이 세 가지가 자유롭게 섞여들어야 한다.
2. 이러한 기획력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워크숍을 수행하기로 일이 성사가 되어 구체적으로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단계로 들어서면 퍼실리테이터가 알고 있는 모든 이론과 기법을 총동원하여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인 과정으로 주물 해야 한다. ‘모든 이론과 기법’에 퍼실리테이션 이론과 기법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설계과정을 마무리하고 이제 참석자를 만나는 워크숍 당일 현장을 떠올려 보자. 이제 정말 실전이다. 당연히, 경험이 쌓일수록 진행이 노련해지기 마련이다. 경험이 쌓일수록 퍼실리테이터가 제시한 토의 방법에 대해 참석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미리 상상해볼 수 있다. 점점 더 살아 숨쉴 것 같은 토의 방법과 프로세스를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실전 경험’이 필요하다는 말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실전경험'이라는 뻔한 답 말고, 더 구체적인 답은 무엇일까? 퍼실리테이터가 되고자 하는 당신이 혹시 너무 '범생이'라면 좀 '놀아보길' 권하고 싶다. 퍼실리테이터의 기획력은 퍼실리테이터가 평소에 경험하고 쌓아 온 다양한 컨텐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퍼실리테이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은 강사로서 무대에 서는 것과 또 다른 일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강사는 퍼실리테이터보다 참석자들에 대해 더 큰 권위를 갖는다. 퍼실리테이터는 지적 우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워크숍의 주인공은 참석자이며, 퍼실리테이터는 철저하게 이들을 돕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의 적극적 참여와 몰입이 없어도 강의는 진행되지만 퍼실리테이션은 이것 없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주입식이 아닌 참여형으로 강의하는 사람도 역시 ‘퍼실리테이터’라고 부른다) 따라서 퍼실리테이터는 다양한 성격, 다양한 관점, 다양한 관심사, 다양한 배경지식을 가진 참석자들을 두루두루 유연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이들로부터 ‘보편적인 지지(인정)’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스타일이 독특하면 ‘팬’과 ‘안티팬’이 동시에 생긴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타일이 너무 독특한 것보다 두루두루 보편적인 지지를 받는 스타일이 훌륭한 퍼실리테이터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참석자 누군가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공격적이든 수동적이든 ‘오버쟁이’든 소심한 사람이든 지나치게 분석적이든 감성적이든 학력이 높든 낮든, 이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고 이들 사이의 소통의 다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3. 이런 전인적 역량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전인적 역량'을 만들어가는 일은 매우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 답은 독자의 고민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
크게 3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것이 ‘퍼실리테이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며, 나 스스로에게 늘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또한 늘 하는 이야기지만, 나도 노력 중이며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다만, 개인 기량에 따라 요구되는 노력의 양이 다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기본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하나하나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그 다음 할 일이다. 그 과정을 항상 위 3가지 질문과 함께 해야 한다. 3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얼마나 찾느냐에 따라 프로페셔널 퍼실리테이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프로페셔널 퍼실리테이터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조직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초 수준의 퍼실리테이션 역량을 갖춘다면 조직 내 다양한 의사소통을 각자의 자리에서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사회 곳곳에서 해결과제 영순위로 거론되는 ‘소통’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열쇠라고 믿는다.
현대사회에서 컴퓨터 활용 능력이 모든 직장인들의 필수 역량이 되었듯이, 점점 더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 이 시대, 그리고 미래사회에서는 그룹 의사소통 역량이 필수다. 우리나라에 퍼실리테이션 시장이 형성되던 초기에 많은 기업 교육 담당자들은 ‘창의력’과 ‘혁신’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퍼실리테이션을 이해했다, 마치, 새로운 유행을 대하듯이.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큰 오해다. 퍼실리테이션은 원활한 조직 운영을 위해 조직 구성원들이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그룹 의사소통 역량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퍼실리테이션을 더 잘 이해하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1단계 성장을 이루기 바란다. 물론, 원하는 만큼 노력하는 퍼실리테이터는 2, 3단계 성장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5월 31일
주현희
링크컨설팅 대표
국제인증 마스터 퍼실리테이터 CPF/Master of IAF
국제인증 소시오크라시 전문가 CSE of ISCB
《더 퍼실리테이션》 저자
퍼실리테이터가 되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