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장편소설 <끝의 시작> 민음사
4월의 시작을 <끝의 시작>으로 끝냈다.
3월 24일에 33페이지까지 읽고 잠깐 멈췄다. 병실에 누워있는 영무 엄마의 이야기가 고통스러웠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펼쳐보기 두려웠다. 고통스럽게 그려진 건 아니었다. 그저 이별, 죽음, 질병, 상실, 부재의 고통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고 많이 약해진 상태라서 그 감정들과 대면하는 게 힘들었다.
다시 책을 편 건 4월 4일 밤 10시. 읽다 보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눈은 황사 바람을 직통으로 맞은 듯 뻑뻑했지만, 자세를 여러 번 달리하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
“4월이 끝나고 5월이 시작됐다는 게 거짓말 같았다.”
_174p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앞서 느낀 고통스러운 감정을 보상받듯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거짓말처럼 답답했던 가슴이 홀가분했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세계, 끝날 것 같지 않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상처도 끝이 있다. 우리는 상흔과 함께 일상을 살아간다. 모두 다치고 아물기를 반복한다.
아득하고 컴컴한 시간 속에 갇힌 것 같을 때, 무엇으로도 나를 가눌 수 없을 때, 그저 떠밀리는 대로 살아갈 때, 지금이 내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일 거라고 막막함에 몸부림쳐도 지나고 보면 그 또한 찰나의 시간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 시간이 부리는 힘이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인지 알 수 없는 끝과 시작이다.
이별, 상실, 공허… 저마다의 끝에서 상처받은 사람들과 그들을 위로하듯 다시, 또다시 시작되는 삶의 재생력.
‘베인 상처 위에 붙일 수 있는 밴드’ 같은 소설이다. (중략) 이들에게는 언젠가 갈(가고야 말) ‘우유니 사막’이 있고, 예정된 죽음 앞에서도 손톱과 발톱에 바를 매니큐어가 아직(아마 계속) 있고, 그리고 봄꽃 같은 연애가 있다. 베인 자리에 붙인 한 장의 밴드가 상처를 곧바로 아물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러나 ‘밴드를 붙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가.’
_ 이승우(소설가)의 말 중에서.
몇 달 전 A가 말했다. 서유미 교수님 소설 <이 밤은 괜찮아, 내일은 모르겠지만> 읽어봤냐고. 내가 쓰는 소설이랑 스타일과 느낌이 비슷하니 읽고 구조를 배워보라고 했다. 마침 읽으려고 사두었던 터라 읽고 있던 다른 책을 덮고 바로 읽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지 거기 다 있었다.
대단하지 않은 일상,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미세한 균열, 미묘하게 어긋나는 심리의 변화, 세밀하고 차분한 장면의 포착에서 달려드는 무수한 감정들. 연애편지 받은 사람처럼, 한 의미라도 놓칠까 봐 차분하게 읽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작가의 말을 한참 들여다봤다.
언젠가 원고를 떠나보낼 때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적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나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꼭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