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시작하면서
잡지 마감을 끝내고 파주 인쇄소에 교정보러 가던 길이었다. 매월 편집장님과 한 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며 많은 얘기를 나눈다. 생각과 마음이 잘 통해서 가는 길이 재밌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얘기하다 고민 없이 고민하던 고민이 진지한 고민으로 훅 들어왔다. 갑자기 마음이 복잡, 분주, 조급, 이하 등등….
안정적인 직장을 다님에도 ‘앞으로 뭐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은 모든 버티스타(버티고 있어도 당신은 슈퍼스타, 권수호 에세이)들의 운명인가 보다. 며칠이 지났다. 사장님 방에 세 사람이 모였다. 사장님, 편집장님 그리고 나. 사장님 방은 항상 열려있다. 화장실 가려면 사장님 방을 지나야 한다. 사장님이 부를까봐 – 사장님은 곧 일이고 사장님이 부른다는 것은 일이 부른다는 것이고 - 벽에 붙어서 땅 보고 갈 때도 있다. 농담이다.
“은희 씨 커피 한잔하러 오세요” 하면 그날은 여유가 있으시단 뜻이다.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주시는데 내가 더 맛있게… 이하 생략…. 아무튼 서로 여유가 있는 날엔 종종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자연스레 고민을 말씀드렸고 사장님께서 다시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직장생활에 공부까지. 부담되긴 했지만 어쩐지 마지막 기회 같았다.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착착 진행되었다. 학교는 우리 잡지에 광고 중인 세종사이버대로 정했고 때마침 원서 접수 기간이라 서둘러 몇몇 학과의 커리큘럼을 살폈다. 회사에서 영상 사업을 계획 중이었기에 유튜브 학과를 눈여겨봤다. 사실 딴마음도 조금 있었다. 몰래 유튜브 하다가 대박 나면 사직서 쓰고 나와야지 하는 마음. 과를 결정하고 사장님께 말씀드릴 때 이 얘기도 했더니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셨다. 솔직히 우리 몰래 유튜브하고 있을 것 같았다고.
어쨌든 2021년 3월,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했다. 디자이너 출신 편집자! 엄청난 강점이 될 거라며 진심으로 응원해주셨다. 학비 1원 한 푼 안 보태주셨지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D
사장님은 내 브런치 초창기 구독자시다. 라이킷도 눌러주시고 댓글도 몇 번 달아주셨다. 생각나실 때 띄엄띄엄 들어오시더니 요샌 내 브런치의 존재를 잊으신 것 같다. 꼭 이럴 때 귀신같이 나타나서 사람 당황하게 하시더라만. 싸대기를 시작하려면 – 사장님께 날리겠다는 말은 아니다 - 이 얘기를 안 할 수 없기에.
사장님은 오래전부터 일을 하나씩 맡기려 하셨다. 난 일이 추가되는 걸 막기 위해 철벽 방어를 쳤다. 대학 다닐 때 학보사 기자를 했다는 말을 괜히 해서 여러 번 발목 잡힐 뻔했다. 편집회의 때 내는 아이디어에 “어쭈, 요것 봐라.”하는 마음에 내 역량을 좀 더 넓혀주려 하셨지만 일이 1+1이 되는데 세상천지 어느 직원이 좋아하겠냐고.(요)
어쨌든 사장님께 감사하다. 형평성 문제로 학비 지원은 어렵지만 자기 계발에 도움 되는 것이라면 아낌없이 지원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근데 문제는 일하고 강의 듣느라 바빠서 아낌없는 지원을 땡겨먹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장님 월급 20%만 올려주세요.
어쨌든 사장님께 감사하다. 공부 하면서 소소하게 이뤄낸 성과들에 누구보다 기뻐해 주셨다. 우수과제로 선정됐을 때 사장님께 가장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브런치도 사장님과 편집장님께만 말씀드렸다. 두 분이 내 글을 읽는 건 조금도 불편하지 않기에 내가 먼저 알려드렸다. 사랑의 편지에 글이 실렸을 때 직원 중 가장 먼저 인증샷 찍어서 보내는 사람에게 사비로 상금을 주겠다고 이벤트도 해주셨다. 내가 제일 먼저 찍어 사장님께 보냈는데. 아 글쎄 사장님께서 내가 찍은 사진을 회사 단톡방에 올리시곤 입 싹 닦으셨다. 사장님 나빠요. 좋은 생각 인스타툰을 보시곤 개인적으로 메시지도 보내주셨다. 사장님은 회사 수익이 오르는 것보다 직원들이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고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진심으로 더 행복하다고 하셨지만 이는 검증이 필요하다. 심증도 물증도 없지만 일단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어쨌든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나의 잘됨을 누구보다 축하해 주셔서 공부할 맛이 난다. 거의 확실한데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사장님 같은 분은 없을 것이다. 사장님 저 월급 20%만 올려주세요. :D
그리고 드디어 수강 신청을 하게 됐다. 첫 학기 성적표 공개와 수강 신청 망한 이야기는 다음에 풀어보겠다.
매거진 <싸대기>는 세종Cyber대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우고 쓰면서 만난 설렘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기록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