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했지...
2021년 1월 11일. 봄 학기 수강 신청이 시작됐다. 사이버대학생은 처음이라 첫 학기 수강 신청 폭망으로 4학기 중 1학기를 날려 먹었다. 편집자를 위한 강의는 없었지만 글 쓰는 것도 편집자의 중요한 일이기에 글쓰기 과목과 한국어 어문규범, 문법 등을 배울 수 있는 과목을 찾기 시작했다.
수강 신청 페이지를 보니 강의명과 학년이 적혀 있다. 이게 뭐지? 학년 별로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정해져 있는 건가? 듣고 싶은 과목은 전부 1, 2학년에 몰려 있었다. 경솔했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물을 생각은 전혀 못 하고 3학년 과목만 신청했다. 이것저것 다 빼고 나니 전공과목은 <1인 미디어 글쓰기>, <독서와 논술의 이해>만 남았다.
전공과목을 보완하고자 나름 머리 써서 한국어학과 과목을 보기 시작했다. <한국어 이해 교육론>, <한국어 어휘 교육론>이 눈에 띈다. 오호! 이 정도면 교정·교열 볼 때 유용하겠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 두 과목만으로도 이미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관심 있던 일반과목과 교양과목을 하나씩 선택해서 수강 신청을 마쳤다.
쓰다 보니 너무 억울하다. 나 같은 사람 나만 있는 건지. - 안타깝게도 아직 나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만. ㅠㅠ - 수강 신청 페이지에 <모든 강의는 학년과 관계없이 신청할 수 있다>는 공지 한 줄 적어두기가 무에 그리 어렵단 말인가. 무에 그리!!!
만족스러운 수강 신청 후 드디어 첫 강의를 듣고 한 주가 지났다. 한 주 만에, 단 한 번의 강의 듣기로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강 신청을 변경할 수 있었으나 난 3학년이고 넌 1, 2학년 과목이고. 어쩔 수 없는 줄만 알았다.
나는 또 한 번 알아버렸다. 세상천지 한국어가 제일 어렵다는 것을. <한국어 이해 교육론>과 <한국어 어휘 교육론>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는 한국어교원 강의라는 걸 또 나만 몰랐지. 부끄럽기 그지없다. 두 분 교수님의 강의는 정말 훌륭했으나 애초에 이 공부에 흥미도 목적도 없었던 나는 강의 내용이 머리에 전혀 입력되지 않았다.
한국어학과 강의보단 나았지만, 전공과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독서논술지도사가 될 것도 아니었고 유일하게 글쓰기가 붙은 <1인 미디어 글쓰기>도 ‘글쓰기’보다 ‘1인 미디어’가 핵심이었기에 1학기가 얼른 지나가길 바랐다. 솔직히 전과 신청을 할까 무지 고민했다.
첫 시험이 시작됐다. 오픈북 믿고 공부는 하나도 안 했다. 와 근데 제한 시간이 심하게 짧네? 20~25문제에 주어진 시간 20~30분. 교안 찾다가 시간 다 갔다. 교수님들은 하나같이 프로 낚시러였다. 문제 유출 방지를 위해 시험 화면 전체가 내 학번과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다. 가뜩이나 정신없어 죽겠는데…. 시험 시작과 동시에 시간이 후두두둑 떨어지는데 어린 시절 목줄 풀린 진돗개가 으르렁거리며 쫓아올 때의 느낌이 그랬지 싶다. - 그때 살려고 논두렁 아래로 굴렀다. - 첫 시험 이후 정신 차리고 공부했다. 싸이버, 헐렁하게 봐서 미안하다.
학과 단톡방은 다들 과제 한다고 난리였다. 소설, 웹소설, 시, 서평, 에세이 등. 나만 혼자 시험공부를 하고 앉았다. 유일한 글쓰기 과제도 기획안을 쓰는 것이었다. 1인 미디어 콘텐츠 기획안. 하- 이건 마치 수학여행을 가는데 나만 혼자 남의 반 버스를 타고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첫걸음이 살짝 삐끗하긴 했지만, 마냥 폭망은 아니었다. 비록 독서논술지도사의 꿈은 없었지만, <독서와 논술의 이해> 강의를 듣고 독서논술지도사가 되고 싶기도 했다. 매주 강의마다 상상했다. 동그란 테이블에 젖살이 통통하게 붙은 아이들과 둘러앉아 놀이로 아이들의 생각을 키우고, 동화 읽고 토론하고 글쓰기하고. 이 은혜로운 꿀 조합.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꼭 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상행선, 너는 하행선. 갈 길이 달랐기에 아쉽지만, 이 강의는 처음이자 마지막 강의가 되었다.
그리고 <1인 미디어 글쓰기> 기말과제에 달린 교수님의 피드백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유튜브 콘텐츠 기획안으로 작성한 내 기획안을 보시곤 글이 브런치와 어울린다고 하셨다. 내 기획안 콘셉트가 엄마의 일상을 기록하고 엄마의 삶을 추억하는 vlog <엄마이웨이>였는데 이는 곧 내 브런치의 매거진이 되었다.
그 피드백 한 줄을 시작으로 나는 에세이스트라는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녀와 만난다. 그 이야기는 다음 이 시간에. 그럼 이만 총총.
매거진 <싸대기>는 세종Cyber대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배우고 쓰면서 만난 설렘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기록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