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를 위해 풍경을 카메라에 양보하다
꾸따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스미냑(Seminyak)에 잡아둔 숙소로 이동했다. 스미냑과 꾸따는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서로 다른 동네라고 말하기도 어색할 정도다. 그런데도 숙소를 따로 잡은 이유는 최대한 여러 집에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스미냑은 발리 내에서 부촌으로 유명하고, 풀빌라 단지가 여러 군데 조성되어 있다. 세계적인 휴양지 발리에 온 만큼 한 번쯤은 거대한 풀빌라에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감탄이 나왔다. 앞으로 적어도 5년 동안은 이런 곳으로 여행을 오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꾸따에서 스포츠 활동을 예상치 못하게 많이 했던 터라 스미냑에서는 푹 쉬려던 참이었는데, 집에만 있어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집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숙소를 만끽할 새도 없이 나는 짐을 놓고 바로 집 밖으로 나섰다. 짐바란(Jimbaran)에 있는 해변 식당에 저녁 식사를 예약해두었기 때문이다. 짐바란은 발리섬의 가장 남단 왼쪽인데, 바닷물이 꾸따에 비해 굉장히 맑고 노을이 예쁜 것으로 유명하다. 서핑할 때 만난 사람들이 짐바란을 강력히 추천하기에 궁금해져서 가게 되었다. 해변에서 보라색 노을을 보며 해산물 요리를 먹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우버를 타고 식당에 도착해보니,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이미 사람들이 꽤 많았다. 모래밭 위에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모래를 밟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는 식사는 익숙지 않았지만, 뻥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주문한 요리가 나와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한 입 먹고 바다를 볼 때마다 색깔이 조금씩 달라졌다. 해산물이 싱싱해서 음식이 맛있는 편이었지만 미각에 집중하기에는 아름다운 하늘 색깔에 시각이 더욱 자극되었다. 결국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계속 바다 쪽을 쳐다보았다.
풍경은 해가 수평선 너머로 들어간 직후가 절정이었다. 뭉게뭉게 떠 있는 구름에 노을 색이 퍼지면서 그림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을 얼른 카메라에 담으려고 계속 셔터를 누르다 보니 정작 내 눈으로 직접 본 시간은 너무 짧았다. 스스로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발리를 그리워할 미래의 나를 위해 양보했다고 여기기로 했다.
배도 채우고 눈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채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도 예쁜 마당과 널찍한 침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바닷바람의 소금기를 씻어내고 누우며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집에서 발리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을 최대한 늘어져 지내리라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