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붓에서 지낼 때는 아무것도 안 한 날도 많았다. 밝지만 눈부시지는 않은 햇살을 맞으며 야외 소파에 누워있거나, 마당에 있는 개인 풀장에서 물놀이를 하곤 했다. 배가 고프면 느지막이 집에서 나와 스쿠터를 타고 우붓 곳곳의 식당을 찾아다녔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곳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은 충분히 특별했다.
집에서 빈둥거릴 때 주로 누워있던 곳. 항상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 쬐고 있었다.
하루는 우붓의 중심가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점원이 내게 “몽키 포레스트를 보고 온 거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그곳이 정말 그 이름대로 원숭이가 있는 숲인지 궁금했다. 그 점원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사실 원숭이 사원인데, 큰 공원으로 조성되어있고 원숭이 수백 마리가 살고 있어 우붓의 관광명소라고 했다. 마침 근처에 왔으니 들어가 보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이미 운영 시간이 끝난 후였다.
다음 날 하우스메이드에게 미리 운영시간을 물어보고 몽키 포레스트로 출발했다. ‘몽키 포레스트’보다는 ‘원숭이 사원’이라는 이름에 끌렸다. 입장권을 받을 때 “원숭이가 소지품을 빼앗아 갈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나는 속으로 ‘그럴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들어가자마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들을 위해 조성된 길이나 다리마다 원숭이가 앉아있었다. 바닥에 앉아 서로 등을 긁어주는 원숭이 가족을 피해 관광객들이 조심조심 피해가야 하는 정도였다.
몽키 포레스트의 원숭이들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태연하게 앉아있다.
사람들이 악수를 해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원숭이들이 사람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곳의 원숭이들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사람이 앉아서 쉬고 있으면 오히려 먼저 다가와서 손을 뻗기도 했다. 우물가에서는 덩치가 큰 원숭이 네다섯 마리가 다이빙 대결을 하듯이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가 우물로 몸을 첨벙 던졌다. 사진을 찍으러 가까이 갔던 사람들은 튀는 물에 옷을 적시기도 했다.
원숭이를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울창한 숲 속을 걷는 재미도 쏠쏠했다. 한국의 산에서 나는 냄새와는 또 다른 냄새를 풍기는 열대우림이었다. 숲 속에는 여기저기 사원들도 보였다. 도심 안의 울창한 숲, 그 속의 수많은 원숭이와 사원. 단어로 떠올리기만 해도 온갖 상상이 펼쳐지는데 그 한가운데에 와있다니, 그저 행복했다.
울창한 우림 속은 시원했다. 무거운 풀냄새가 났다.
나중에 하우스메이드에게 들은 얘기지만 발리에는 원숭이를 신성하게 여기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어떤 신화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발리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몽키 포레스트가 인기가 많은 명소라고 한다. 나름 해외 관광객으로 왔으면서 몽키 포레스트의 존재부터 의미까지 모두 한 발짝 늦게 알게 된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정보를 빠릿빠릿하게 알아야만 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실감했다. 진작 인터넷으로 조금만 검색해보면 되는 것이었는데 굳이 그 수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나 속도 경쟁에 몰려드는 경주에서 트랙이 아닌 관람석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돌아가면 다시 트랙으로 내려가야겠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는 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