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정도를 달려 도착한 라이스테라스에는 관광객이 매우 많았다. 이미 너무 유명한 곳이라 근처의 상점이나 카페가 모두 관광 상품화 되어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기에는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라이스테라스가 크고 특이했지만 별 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덥다’, ‘목말라’ 이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결국 그곳에서는 채 20분도 머물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라이스테라스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각종 상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까지 '강남스타일' 카페가 들어설 정도라니, 한국인 관광객도 꽤 많이 오나보다 싶었다.
우리는 점심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이뇨만은 잔잔한 식당이 근처에 있다며 길을 알려주었다. 식당 입구를 손쉽게 찾아서 바로 들어갔다. 맙소사, 나는 라이스테라스를 봤을 때보다 훨씬 놀라고 말았다. 그 식당은 식당인지 논인지 밭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과 하나가 된 곳이었다.
넓은 논 중간중간 오두막이 지어져있고, 오두막마다 테이블이 두어 개 있었다. 논두렁을 따라 한 오두막에 자리를 잡자 미소를 띤 종업원들이 와서 주문을 받았다. 메뉴는 여느 식당들과 비슷했지만 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드넓은 벌판에서 숨을 돌릴 수 있었으므로 가격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테이블이 있는 오두막보다 논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시원한 그늘에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혔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어 오두막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조용했고 나는 내 눈, 귀, 코가 느끼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라이스테라스에서는 보이지 않던 진초록 풀잎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발리의 충분한 햇살을 먹고 자라서인지 모든 식물이 선명한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도마뱀 울음소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멀리서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바람을 타고 고소한 밥 냄새와 커피 향기가 날아왔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깊게 쉬었다. 라이스테라스에서 실망했던 마음이 그새 위로 받은 느낌이었다. 마음속이 꽉 들어차 벅찬 기분이 들었다. “아, 행복하다."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다른 테이블과 멀찍이 떨어져 있다 보니 굉장히 조용한 분위기였다.
먼저 나온 주스를 마시면서 음식을 기다렸다. 이곳에서는 진동벨 대신 나무로 만든 장난감을 흔들어 종업원을 부른다.
행복한 마음으로 먹으니 흔한 음식도 유독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이뇨만에게 다음 장소로 가기 전에 라이스테라스에 다시 한 번 들르자고 제안했다. 라이스테라스도 평온한 마음으로 보면 달리 보일 것 같아서였다. 이뇨만도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이유도 묻지 않고 “좋다"고 말했다.
라이스테라스와 맞닿은 하늘까지도 그림 같았다.
라이스테라스를 두 번째로 마주할 때는 계단식 논의 층층이 더 눈에 잘 들어왔다. 곳곳에 서 있는 야자수도, 밀짚모자를 쓰고 수레를 미는 농부도, 밟혀서 누워있는 잡초도 모두 평화로워보였다. 많이 들어서 감동도 없던 “세상은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진다"는 명언에 공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