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적절한 시소타기
작가 일을 하면서 꽤 괜찮은 습관 중 하나는 곧잘 사전을 펼쳐 보는 일이다. 궁금한 단어가 생기면 두툼한 사전을 펼쳐 뜻을 한번 더듬어 보는 걸 좋아한다. 원고 쓰며 급하게 찾는 건 인터넷 사전을 활용하지만, 뭔가 심심하고 수동적인 느낌이다. 직접 종이 한 장, 한 장을 넘기고 손으로 단어들을 쓸어내리면서 찾아내는 재미가 없다고 할까?
코로나19 여파로 여행다운 여행을 떠나 본 게 언제였던가, 잠시 기억을 헤집어 보는데 가물가물하다. 세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갈수록 여행이란 게 어려워지고 까다로워지는 시대가 지속된다면, 그래서 여행이라는 단어가 옛말이 되고 사전에서나 찾아야 되는 단어가 된다면 어떨까, 상상은 거기까지 갔다.
'여행,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두루 구경하며 다니는 일'. 단어의 뜻을 찾고서 보니 잠시 속상해진다. 지금은 그 여행도 마스크 착용이 필수이고, ‘두루’ 구경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혹시 모를 뭔 훗날에는 단어 뜻이 이렇게 개정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여행,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두루 구경하며 다녔던, 코로나19 이전 시대 사람들이 즐겨하던 일' 정도.
요즘은 여행이 어려워서 랜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직접 가지 못하는 대신 그곳의 영상들을 보며 즐기는 여행. 떠나고 싶은 갈증을 이렇게라도 해소하려는 사람들의 심리. 그래서 그 즐거움을 찾고자, 현실이 지겨울 때 사람들은 영화로도 기분을 환기한다. 최근에 본 미국 드라마도 그런 역할을 해줬다. 프랑스 곳곳을 누비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직접 그 속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미국 출신의 마케터 에밀리 파커가 파리에서 겪는 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과는 너무나 다른 프랑스 문화 속에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해서 극복하는 여주의 당당함이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어찌 됐든 드라마에서, 본인은 일이 좋다는 에밀리에게 프랑스 동료인 뤼크가 일침을 가한다.
“You live to work, We work to live.” 인생을 즐기는 삶을 원하는 프랑스인과 일에 매몰되어 사는 미국인을 대조적으로 표현한 대사. ‘당신은 일하기 위해서 살지만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한다.’ 일이 중요한지 내 삶이 중요한지. 무엇에 무게가 더 실려 있느냐, 순간 고민을 하게 만든 뤼크의 말이 오래 남았다.
일에 빠져 살 때는 궁극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성취감을 느끼고 생활이 나아지는 것, 결국은 잘 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니까.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일이 내 생활까지 치고 들어와서 떡 하니 자리잡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잠시 호흡 고르기가 필요하다. 무리하게 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그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서 꽤 많이 느꼈다.
코로나로 여행도 어려워진 이 시점에서, 특히 3차 대유행이라는 현실 앞에서, 또 한 번 불안에 사로잡힐 때 이런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일은 무엇이며, 사는 것은 무엇인가. 바이러스라는 제약에 발이 붙잡혀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 그 어떤 질문에도 선뜻 명료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