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서의 지역영화
“독립영화 지원을 하지 말자, 이런 말이 아니라 과연 이것이 영화 청년들을 위해서 잘하고 있는 것인지, 오히려 청년들을 더 배고프게 만들고 더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심지어 정말 안타까운 것은 독립영화 2편을 찍으면 다 신용불량자예요. 구제받을 수도 없는 신용불량자예요. 그게 현실이거든요. 상당 부분 그래요. 지금 저희가 정책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계속 당근만 주고 너희가 하면 된다고 얘기하고 제작지원을 받으면 된다하고 꼭 이래서 될 문제가 아니지 않나, 뭔가 행복하게 영화를 만들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나 문화를 조성해야 되는 게 아닌가?”
- 「2025년 제 9차 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 영화진흥위원회, 2025.05. 15쪽, 19쪽.
오늘날 ‘[지역]독립영화’의 시스템(system)은 한국[문화/영화]사의 역사적 경과로 마련되었다. 그러므로 주변 환경이 변화하면 ‘[지역]독립영화’의 좌표 역시 새로이 탐구되어야 한다. 이 글은 ‘[지역]독립영화’의 역사를 약술하고, 최근의 매체·산업 환경 변화로 인해 그간 ‘[지역]독립영화’의 정당성을 지지하던 기능이 축소 혹은 제한되었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문화(culture)’의 관점에서 ‘[지역]독립영화계’의 미래를 논의하는 게 유효함을 힘주어 말하고자 한다.
‘한국영화’의 시스템에서 ‘한국독립영화’
통상적으로 독립영화(Independent Film)는 거대 제작사에 속하지 않는 소규모 제작사의 영화를 총칭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이와는 함의가 조금 다르다. 서울영상집단이 발간한 ‘한국독립영화’의 정사(正史) 중 하나인 『변방에서 중심으로: 한국독립영화의 역사』에 따르면, ‘한국독립영화’는 정치적, 미학적, 경제적 자율성을 지향하는 영화를 각각 지칭하거나 그것을 모두 아우른다. ‘한국독립영화’가 자율성을 지향한 까닭은, ‘한국독립영화’ 운동의 주요 가담자인 민주화 세대 또는 386세대가 당대 ‘한국영화’를 타율(他律)적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일 터다. 기실 1960-80년대 ‘한국영화’는 개발독재정권에 검열과 권장으로 종속되었고, 그 성격이 영화에도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93년 이래 한국의 민주화는 ‘한국독립영화’ 진영에게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1994년 문화체육부에 ‘문화산업국’이 신설되었고(1989년 이전 문화체육부의 명칭은 문화공보부文化公報部였다.) 1996년 영화 사전심의제도 의 위헌 결정이 내려졌으며, 1998년 5월 영화진흥공사는 ‘소형-단편영화 제작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이처럼 타율적 조건이 정치적·법적으로 해소 또는 개선되면서, ‘한국독립영화’는 국가와 적대적 관계에서 협력적 관계로 전환하였다. 그리하여 1999년 7월 한국독립영화협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으로 등록된다. ‘한국독립영화’와 국가의 협력적 관계가 특히 견고해진 것은 1998-2003년 김대중 정부다. 김대중 정부는 ‘한국독립영화’ 진영이 토대를 두고 있는 민주화 세대의 ‘젊은 피’를 영화를 비롯한 곳곳에 ‘수혈’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독립영화’의 결정적 계기인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이 일어난다. 한미무역협상 이후 미국 무역협상단이 요구한 한국 스크린쿼터제의 폐지 혹은 수정에 대항하는 대중 동원에 ‘한국독립영화협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와 민주화 세대는 스크린쿼터제의 수혜를 입은 기존 주류 영화계—“저질영화”의 창작자로 지목되었던 이들—가 갖지 못했던 도덕적 권위와 전략을 제공했다. 예컨대,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의 광고에는 시위 현장에서 추위에 떠는 스타 배우가 물대포를 맞는 농민과 디졸브(dissolve)를 통해 동일시되었고, 현장에는 삭발, 단식, 성조기 불태우기 등 민주화 세대의 수사학이 펼쳐졌다.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의 성공으로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1993-1998년 사이의 15~25%에서 1999년 40%, 2002년 49.5%, 2006년 63.8%로 치솟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운동의 최대 수혜를 입은 영화는 다름 아닌 강력한 반공주의(反共主義)를 전제로 두고 미국의 장르물을 번안한 영화 〈쉬리〉(강제규, 1999)일 터인데, ‘한국독립영화’의 입장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을 통해—‘한국영화’를 적대했던—‘한국독립영화’는 ‘한국영화’의 공동체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2007년 스크린쿼터 축소가 결정되면서 설치된 영화발전기금을 통해 ‘한국독립영화협회’를 아우르는 현재의 ‘한국영화’ 체제가 완성된다. 상업영화의 입장료에서 징수한 영화발전기금을 거버넌스 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영화제·독립예술영화 제작 및 개봉지원·독립예술영화전용관 지원에 활용하며, ‘한국영화’ 내부의 성장 모델이 마련된 것이다. 이 모델에서 ‘한국독립영화’는 다양성을 자임하는 동시에—봉준호나 박찬욱을 키웠다는 식의—상업영화 감독을 양성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인들에게 이는 습속으로 굳었다. ‘한국독립영화’를 논의할 때 시장을 언급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치들이 왕왕 있으나, 대다수의 ‘[지역]독립영화’ 감독은 이미 단편을 두세 편 만들고→영화제를 돈 다음→독립 장편을 한두 편 만들고→영화제를 돈 다음→상업영화를 만드는 상승기류(上昇氣流)로 커리어 패스(career path)를 신뢰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시스템에서 ‘한국영화’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높은 수준의 자국 영화 점유율을 차지하며 성장했고, 그 결과 〈노란문〉의 청년인 봉준호가 오스카(Oscar) 트로피와 팔름도르(Palme d’Or)를 받으며 ‘한국영화’는 세계에 알려졌다.
그리하여 ‘한국영화’는 콤플렉스의 대상에서 영광의 대상이 되었고, ‘한국독립영화’는 시스템 바깥에서 시스템 내부에 자리 잡았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다양성’과 ‘양성(養成)’의 기능으로.
COVID-19, 넷플릭스(Netfilx) 그리고 조정의 국면
봉준호의 〈기생충〉(2019)은 ‘한국영화’라는 시스템의 승리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2019년 최초로 보고된 코로나바이러스-19(이하 코로나)를 계기로 ‘한국영화’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80년대 미국영화 직배 반대 투쟁, 90년대에는 스크린쿼터 수호 투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다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지키려고 하는 공동체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기생충〉에 대해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평가가 많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기생충〉은 시작이 아니라 하나의 끝을, 무언가 끝나는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닐까 싶다.”
새로운 국면의 성격을 규정하기에는 일렀던 2021년, 現한국영상자료원인 김흥준은 오오극장 관객프로그래머 영화제에서 (마스크를 쓰고) 흥미로운 말을 했다. 모두가 〈기생충〉을 두고 ‘좋은 의미에서’ 새로운 ‘전개’를 점치던 시기, 김홍준은 의미심장하게도 〈기생충〉에서 “무언가 끝나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영화연구회 ‘알라셩’과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하면서 1990년대 ‘한국독립영화’ 형성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영화감독 임권택의 조감독을 했고 충무로의 전통적인 제작사 태흥에서 〈장미빛 인생〉(1994)을 연출한 경험, 곧 두 가지 시스템을 관찰할 수 있는 시좌(視座)에 있었던 김홍준의 예감은 정확했다.
영화관이 코로나의 온상으로 지목된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전략적으로 영화관 그리고 영화관에서의 영화를 말려갔다. 실내 활동이 늘어난 기간 동안 OTT 가입자는 2019년 41%에서 2020년 72%로 급증했다. 반대로 영화관의 관객 수는 급락했다. 영진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2017~2019년)을 100%로 둘 때, 2023년 관객 수는 55.2%, 2024년은 55.7%다.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두 편씩의 천만 영화가 있었음을 고려하면, (아마도 천만을 기약할 수 있었던 마지막 영화인 〈어쩔 수가 없다〉는 12월 3일 기준 294만 명이 보았다.) 올해의 관객 수는—영화 6,000원 할인 쿠폰을 살포한 영향으로 선방을 할지도 모르나—더 적을 터이다.
다른 조건을 고려해도 앞으로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코로나를 전후로 대중들은 영화관 방문 이외의 취미를 많이 가진 듯하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프로스포츠의 경우 코로나 이전(2017~2019)을 100%로 둘 때, 2024년 기준 프로야구(KBO) 누적 관객 수는 13% 상승했으며, 프로축구(K리그1) 누적 관객 수는 16% 상승했다. 심지어 2019-2021년 사이 대중에 널리 향유된 ‘숏폼(Short Form)’의 주의분산은 영화관의 다크큐브(Dark Cube)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형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예컨대, 청소년들은 극장판 〈귀멸의 칼날〉, 〈체인쏘맨〉처럼 이미 알고 있는 콘텐츠의 ‘특별 편’을 대규모 스케일로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이러한 예측이 보편화된 것일까? 근 3년 동안 지상을 달군 ‘한국영화의 위기’라는 표어조차 더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위기’란 평시와 견주었을 때 현저한 차이가 발견되는 경우를 포착할 때 비로소 유효하다. 그러므로 코로나 이전에서의 전망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지금, ‘위기’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딱히 유효하지 않다. 이제 ‘위기’로 지목할만한 상황이 새로운 보편이 되었다. 코로나의 종식과 함께 사어(死語)가 되었지만—코로나 그리고 그와 동시기에 결부된 OTT의 확대로—한국영화는 일종의 ‘뉴노멀(new normal)’에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뉴노멀’이란 표현은 지나치게 중립적이다. 여전히 위기 이전의 상황에 기준과 경험을 두고 있는 우리에게 이 국면은 ‘조정의 국면’이다.
혹자는 이 ‘조정의 국면’이 상업영화의 문제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 현재 ‘한국영화’ 시스템의 일부인 ‘한국독립영화’도 ‘조정의 국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업영화’의 복판 혹은 그 자락에 위치한 인력들은, ‘상업영화’ 경력이란 사회 자본을 토대로 재빠르게 시리즈(Series), 뮤직비디오 등의 콘텐츠로 이동하고 있다. 오히려 치명적인 영향력을 받는 건 ‘한국독립영화’다.
상술했듯, ‘한국독립영화’는 상업영화에 부재한 ‘다양성’을 자임해왔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콘텐츠를 유통하는 OTT는 니치(niche)한 취향도 세계적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다양성’을 훨씬 폭넓고 안정적으로—예컨대, 한국의 0.001%는 시장이 되기 어렵지만, 세계의 0.001%는 소비 시장을 충족한다.—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독립영화’의 정당성을 지지하던 첫 번째 기능인 ‘다양성’은 OTT가 초과 달성할 수 있을 터이다. ‘한국독립영화’의 존재—생산, 유통, 상영—를 가능케 하는 기반—제작지원, 개봉지원, 영화제·독립예술영화전용관 지원—인 ‘영화발전기금’의 핵심인 ‘영화상영관 입장권에 대한 부과금’이 그간 크게 축소되어 고갈의 위기에 이르렀다는 점은 이보다 더 핵심적이다. 이는 단지 극장의 관객 수가 줄어들어 재원(財源)이 위태로워졌다는 것 이상의 문제다. ‘영화발전기금’은 이윤 창출이 되는 상업영화에서 징수하여 당장은 이윤 창출이 불가능하지만 이를 기대할 수 있는 인력이 활동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이는 영화인들의 커리어패스[독립 단편 제작→단편 영화제 유통→독립 장편 제작→장편 영화제 유통→상업 영화]라는 상상의 기반이다. 그런데 2021년부터 “넷플릭스행을 문의하려는 한국영화의 줄이 넷플릭스 코리아가 위치한 종각에서 종로5가까지 이어졌다.”는 말이 돌 정도로, ‘독립장편 제작→’ 이후 단계의 감독들이 OTT행을 꾀하고 있다. 영화감독 개개인이 OTT 콘텐츠에서 자신의 전망을 찾는 것은 자유이며 결코 문책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영화발전기금’을 징수할 수 없는 OTT로 인력이 유출되면서 ‘영화발전기금’을 재생산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란, ‘영화발전기금’을 중심으로 구성한 ‘한국영화’ 공동체/모델의 끝을 예고한다. 또한 일시정지, 중도 이탈을 비롯한 다양한 관람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기실 넷플릭스는 자신들이 ‘데이터산업’을 한다고 말한다.—OTT는 수집 데이터를 바탕으로 품질 관리(Quality Control)를 고도화하므로, 복잡한 커리어패스의 충족을 필요로 하지 않을 터이다.
위의 사정을 면밀히 검토하는 책의 제목처럼 �한국영화가 사라진다.�(이승연, 2023) 그리고 ‘다양성’의 기능은 축소되고 ‘양성(養成)’의 역할을 하던 기반이 무너지면서 ‘한국독립영화’는 더 무력하게 사멸할지도 모른다.
문화(culture)로서의 지역영화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한국독립영화’를 정당화 할 수 있는 상징적·물질적 기반은 예전보다 좁아졌다. 그러니 기존 시스템 내에서 양적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무사와 안일이 아닐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지역]독립영화’에 대한 모든 논의는 지원금을 더 달라는 말로 귀결된다. ‘한국영화’가 조정될 전망이 예측된다면, 양적 축소야말로 윤리적인 판단이다. 이 글의 제사(題詞)로 활용한 한 영진위 위원의 말처럼, 수용량(capacity)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원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이 오히려 기만이 되기도 한다. ‘지역독립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지역독립영화’에 대한 담론은 서울-중앙에 비해 부족한 부분을 공적 자금 투여를 통해 보충하자는 주장으로 흘러가기 일쑤며 공공성의 견지에서 변호된다. 그러나 ‘지역독립영화’를 포함한 ‘한국독립영화’ 전체가 존립의 근거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독립영화’의 존재는 더욱 불투명해지고, 지원금의 요구는 몽니에 가까워진다.
시장이나 담론에 가까운 서울, 수도권의—과거라면 ‘독립영화인’으로 정체했을 단계에 있을—영화인들은 이러한 ‘조정의 국면’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전국의 영화제를 자주 들리는 사람이거나 근자의 담론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익히 알겠지만, 오늘날 주목 받는 영화인들은 미술 영상, 곧 무빙이미지(moving image) 작업을 대다수가 겸한다. 동료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오늘날 기민한 영화인들은 미술로 매끈하게 “환승연애”에 성공한 듯하다. 기실 최근 서울과 수도권 기획전에서 큰 인기를 끄는 건 의외로 실험영화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다크 큐브’에서의 몰입-관람을 전제하는 기존의 영화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영화감독 박진용에 따르면, 이미 세계영화제는 ‘한국독립영화’의 전형적인 극영화가 오히려 드물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 ‘지역독립영화’들은 전형적인 극영화의 형식인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상황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까? 많은 작품은 상업영화 연출의 역량을 쌓기 위한 듯, 전통적 극영화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다수다. 커리어패스가 완전히 작동을 멈춘 것은 아닐 터이나, 다시 한 번 제사(題詞)의 영진위 위원의 근심을 읽어보자면 그 가능성의 영역은 부쩍 협소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역독립영화’는 오직 과거의 ‘한국영화’ 모델에서 교양을 쌓고 전망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한 독립영화관 프로그래머가 전국의 영화제가 ‘대구독립영화’를 반기는 이유가 “옛날 한국독립영화 느낌”이라고 말한 것처럼, ‘대구독립영화’는 이러한 진단의 특별히 유효한 대상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행동을 음미하면서 그것을 근본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이 거짓된 세계관을 믿는 지독한 무지가 아닌지를 끊임없이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대구에서도 실험영화를 하자…… 따위의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조금 더 알맹이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금까지 나는 ‘한국영화’라는 상위의 견지에서 ‘지역독립영화’를 바라보았다. 그 결정적인 까닭은 ‘지역독립영화’의 습속이 ‘지역독립영화작품’을 시스템의 상위로 올리는 데—앞에서 말한 이유로 시스템 자체가 위태로워지는데도 불구하고—지나친 공력을 투자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문화(culture)로서 대구영화’를 조성하는 데 오히려 무관심한 걸 꼬집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구영화’에는 ‘문화(culture)’의 느낌이 전무하다. 흔히 ‘지역독립영화’의 당위를 설명할 때 “지역민의 생활이 담긴 영화……” 같은 말을 하지만, ‘대구영화’가 인정(recognition)의 근거를 찾는 곳은 대개 규모가 있는 영화제인 것 같다. 매해 ‘대구영화학교’를 통해 창작자가 새로이 만들어질 뿐,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조건인 ‘대구영화’의 ‘관객’은 전무하다. 예컨대 매년 오오극장에서 열리는—그리고 이 발제가 읽히는—‘대구영화연말정산’은 ‘대구영화인파티’에 가깝다. ‘대구영화연말정산’에 오는 관객은 영화인이 아니면 상영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의 친구다. 오히려 ‘대구영화연말정산’이란 이름에 걸맞게 실제로 정산(精算)을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영화인과 상영 영화를 만든 감독의 친구의 입장을 금지한 상영을 배치함으로써 관객 성적표를 받거나, 제작비와 상영 수익을 계산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말이다.
물론 ‘지역독립영화’뿐만 아니라 ‘한국독립영화’ 전체에 문화의 영역은 매우 미비하다. 이런 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영화제의 자원봉사자다. 세계의 영화제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영화제 자원봉사자들은 대개 그 영화제에 오랜 기간 봉사를 하고 있는 全연령의 시민들이다. 이와 달리 한국의 영화제 자원봉사자들은 90% 이상이 스펙을 필요로 하는 청년이다. 모두 예비 산업 역군이다. 그러나 ‘한국독립영화’ 전반이나 보편에 문화가 부재한다고 해서, ‘지역독립영화’가 그에 순종하거나 낙담할 이유는 없다. 애초에 경작하다(cultivate)를 어원으로 갖고 있는 문화(culture)는—같은 시기 도시민(civitas)을 어원으로 갖고 있는 문명(civilization)과 유의이자 소극적인 반의관계 속에서—지방, 주변, 농민의 생활 방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지역 혹은 지방이야말로 문화를 조성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성공적인 모델은 <옥천신문>의 경우를 찾아보면 된다.)
문화를 조성한다는 건 관객을 유혹하는 일이다. 이는 제작 지원금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제작 지원금을 받은 후에 영화를 만들고, 개봉 지원금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하는 수동성과는 거리가 멀다. 저기로 가면 무언가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줘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영화인들이 능동적인 영화인이 되어야 한다. 제도의 선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건을 조장함으로써 제도가 뒷받침해주지 않아도 되는 숫자를 가져야 한다. 예컨대 인정을 기존의 제도에 구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자유롭고 신속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상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작지원으로 사용하는 금액의 일부를 유통이나 담론 차원에서 사용할 수도 있겠다. (연말정산을 해보면 알겠지만!) 대구의 창작자는 이미 수요를 한참이나 초과했다. 그러므로 제작지원금을 주는 게 아니라 그만큼의 금액을 책이나 잡지/무가지를 만드는 데 지원하는 방법도 있을 터이다. 저널리즘이 사건을 만들고, 사건이 관객을 만들고, 그 관객이 영화를 보고…… 이런 것이 모두 요원하다면—부산에는 이미 존재하는데—지역영화정책연구 그룹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이 반복될 때 비로소 탄탄한 문화를 만들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독립영화’가 죽니 마니 하는 볼멘소리를 더는 듣지 않아도 될 터이다.
한 가지 이야기로 끝을 맺고 싶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마음씨가 조금 좋아졌다. 그래서 아이는 소일거리를 하는 대가로 용돈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서 살기로 했다. 아이는 어느새 용돈에 길들여졌다. 아버지가 용돈을 주지 않으면 때때로 화를 냈지만 집을 나가지는 못했다. 용돈에 익숙해진 탓에 몸이 많이 물러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이가 더는 필요 없다는 듯 용돈을 서서히 줄여갔다. 아이는 이를 눈치 챘다. 어찌할 것인가? 성장소설(Bildungsroman)은 아이가 집 바깥으로 나가면서 시작할 것이다. 영화는 집의 외화면(外畫面)을 비추면서 성립하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