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손가락 -- 견월망지, 견지망월

by 금동현

동의대학교 학술지 『디스포지티프』에 쓴 글.




견월망지(見月忘指)


홍상수에 대해 말하는 건 너무 쉬우면서 아주 어렵다. 쉬이 홍상수를 말하는 경우야 잦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혹은 잘 알고 싶지도 않으면서. 홍상수를 패러디하는 영상들.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바스트 숏 그리고 술집.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홍상수의 화면을 상상하는 것 같고 실로 홍상수의 화면에는 자주 그런 요소가 담겨있다. 하여 너무 쉬이 말한다는(따라한다는) 불만이 그런 데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홍상수 영화의 말하기를 오해하는 게 못마땅하다. 홍상수를 패러디한 영상의 인물들은 으레 몽롱한 말을 하고, 흉심을 품고 거짓된 객쩍은 말을 늘어놓는다. 그렇지만 홍상수 영화에서 말하기가 패러디의 소재로 포착될 만큼 눈에 띄는 까닭이 그것이 모호하고 거짓되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사건을 자아내기 위해 거짓과 오인을 자아내는 한국영화는 홍상수가 아니더라도 많아 유별날 게 못 된다. 홍상수 영화에서 말하기가 특별하게 보이는 건 반대의 이유 같다. 그의 영화의 기억할 만한 인물들은 오히려, 마음을 가능한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거짓되고 모호하게 비치는 것은 다만 형태가 없고 연속적인 마음이 형태가 있고 불연속적인 언어로 오롯이 표현될 수 없으며 그러한 진심이 순간마다 다를 수 있음을 영화가 자의식화하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언어는 불완전하고 마음이 바뀌기에, 새로이 그리고 재차 말해야 하는 대화의 공전(空轉)이 그것을 독특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핵심은 무엇보다 그들이 진심을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일상의 상투적 표현이 담아내지 못하는 세계에 점근하는 것이 시인의 덕인 바, 홍상수 영화에는 시인이 자주 나오고 현실의 시인들도 1990년대부터 줄곧 홍상수에게 지지를 보내왔다. 시를 보는 눈이 밝은 황현산이 앞서 적은 정직성과 언어의 문제를 〈하하하〉(홍상수, 2010)에서 일찍이 그리고 명료하게 포착한 건 당연한 일인 듯하다.


이처럼 홍상수를 오해함으로써 너무 쉬이 말하는 경우가 잦다면 그 반대의 경우로 쉬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앞의 사례와 아주 다르고 여기에 구태여 너무, 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르지만 어딘가 쉬워서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독법은 오해가 아니라 오히려 직해(直解)다. 홍상수는 자주 영화의 초반, 그 흐름이나 설정 혹은 주제를 함축하는 장면을 탈-맥락(脫-脈絡)적으로 삽입한다. 저런 행동—예컨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홍상수, 2004)에서 눈을 뒷걸음질하는 것—을 갑자기 왜 하지? 왜 저런 이야기—가령 〈생활의 발견〉(홍상수, 2002)의 회전문—를 하는 거지? 그런 것은 독법의 역할을 하고 관객은 홍상수가 제안하는 독법에 기댈 수 있기에 이른바, ‘관습적 극영화’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물론, ‘탈-맥락적 장면에 의한 독법 제시’는 근래의 영화로 올수록 드물어지고 있는 듯하다. 프로덕션 규모와 그에 수반하는 관객의 축소(혹은 관객의 축소와 그에 수반하는 프로덕션 규모)와 상관관계가 있을지, 그런 제시가 희미하거나 심지어 없어도 ‘홍상수 영화’를 여전히 보는 우리는 그의 영화를 ‘관습’에 기대지 않고 받아들일 준비를 미리 한다. 하여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어딘지, 벽/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등장인물이 쇼트를 벗어나도 아직 그 등장인물인지, 쇼트와 쇼트 사이에 시간은 얼마가 되는지…… 와 같은 웬만하면 의식하지 않아도 될 관습에 바짝 긴장을 하게 된다. 종종 홍상수가 초기영화를 좋아한다고 밝혔듯, 영화의 관습이 아주 헐거움—문법에 비해 이른바, ‘영화언어’는 규칙이 될 수 없다.—을 의식하게 한다. 그리하여 나 역시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영화의 감각을 새삼 일깨웠으며 그야말로 교육의 역할을 하는 감독이라고 종종 말해오곤 했다. 앞 문단의 오해에서 말미암은 감상이 릴스나 쇼츠로 비화한다면, 직해의 감상이 영화에 대해 말을 하게 되니 흥미로운 대조인 셈이다. 그런데 다시 말하자면, 이런 방식—직해(直解)도 어딘가 불만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그의 영화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그를 (앞의 문단에 쓴 것처럼) 오해하거나,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는 방법 밖에 정녕 없는 걸까. 이 둘을 피해가는 방법은 좀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꽤 오래하며 홍상수의 영화를 봐왔다. 기대대로—생각해보면 홍상수의 영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혹자는 홍상수 영화가 ‘모두 같다.’는 의아한 이야기를 하지만, 홍상수는 순열·조합·뺄셈·덧셈의 차원에서 매번 영화를 조직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홍상수에 대해 품는 기대는 오히려 갱신과 이탈에의 기대다—즐거운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여행자의 필요〉(홍상수, 2024)를 보다가 어떤 장면에서 아주 잊고 있는 것이 떠올랐다. 잊은 것은, 언어를 완미할 수 있는 번역 과정의 지연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필요한 여행자라는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희소해 마땅한 관습의 망명 상태가 이미 홍상수의 기댓값이었던 것 같다. 나는 〈소설가의 영화〉에서 영화 바깥의 사랑이 들어온 이후 극장을 나온 김민희/길수(라고 쓸 수밖에 없는 배역 상의 혼란과 함께 그)의 불안을 오히려 더 정확하고 잊을 수 없었지 않은가. 기대치 못했던 장면, 잊을 수 없었던 장면은 오히려 그런 완미, 지연, 불안 같은 것의 정반대의 장면: 하성국의 어머니로 연희(조윤희)가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여행자 그리고 여행자를 견디는 세계에 연희는 마치 침입자처럼 등장한다. 단지 성국(인국)과 이리스(이자벨 위페르)의 평화를 방해하는 서사 내적인 역할을 해서가 아니라, 그가 언어의 완미함을 일축하는 상투성의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국: 열심히 사는 거랑 진지한 건 완전 다른 거야. 진지하다는 거는 가짜에 미치지 않고, 진짜 사실에 근거해서 살려고 노력하는 거야. 진짜 진짜 사실.
연희: 그래? 그 여자가 그렇게 살아?
인국: 노력을 해요. 정말로, 쉬지 않고.
연희: 미쳤구나, 네가 그 여자한테 미쳤구나. 너 그 여자 모르잖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네가 어떻게 좋아해? 네가 상상하고 있는 게 그 사람은 아니잖아 그지. 모르잖아 너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잘. 그지?


이렇게. 연희는 나이 많은-신원 불상-외국인 여성을 알지 못한다는 관습으로 아들을 타이르길 조윤희는 놀라울 정도로 통상의 ‘한국 영화/드라마’에 가까운 톤(tone)으로 연기한다. 그리고 연희가 끓여주는 김치찌개가 등장한다. 그 충격적으로 맛없어 보이는 김치찌개를 보며 내가 분명 알고 있었지만 아주 오래 잊은 것이 떠올랐다. 홍상수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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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지망월(見指忘月)

감독마다 비평을 모아 토픽 모델링(Topic Modeling)을 하면 그 감독이 어떻게 다뤄져 왔는지, 그간의 핵심이 계량화 될 것인데, 이는 평자에게 제법 유익한 지침이 될 터다. 그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제법 근사하게 예측해볼 수는 있다. 가령 봉준호의 영화에 대해서는 한국사회로 모이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그의 영화가 그런 방식을 유도하니 당연한 결과일 테다. 그렇지만 봉준호가 유도하고 그간의 핵심이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정말 요체일 이유는 없다. 이라크 파병 반대와 스크린쿼터 투쟁을 했다고 하여 봉준호 영화의 요체가 정치일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강사로 있을 때 시종 영화에 나오는 인상적인 문(門) 표현을 다뤘다는 이야기처럼, 많은 영화에서 봉준호의 인물(혹은 괴물)들은 어서 빨리 정치/사회가 닿지 않는 문 안으로—폐쇄성에서 하나의 만족을 느끼는 듯—재빨리 들어간다. 설정의 고증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해왔듯 봉준호 영화에서 그런 정치와 사회는 오히려 알리바이며, 저 유명한 ‘삑사리의 미학’은 역사-정치-사회를 시치미 뗀 결과 같기도 하다.


홍상수는 제법 반대의 사람 같다. 그의 영화에 대해 말할 때면 자연스레 우리는 현실로부터 초연해지고 영화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2025)를 말할 때 계엄을 언급하지 않고, 〈자유의 언덕〉(2014)을 말할 때 세월호를 논하지 않으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를 말할 때 탄핵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굵직굵직한 정치사가 아니라 사소한 사건으로 옮아가도 마찬가지다. 한국영화사의 견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사실이건 허구이건) 내셔널 시네마의 역사 아래 굵직굵직한 감독들이 자리를 잡는 반면, 홍상수는 거듭 예외로 등록되는 데 그치는 것 같다. 하여 홍상수는 한국영화사의 아웃라이어로 여겨진다. 앞의 장에서 살펴본 오해를 통해 희화화하는—이런 희화화는 그 대상을 건드리지 못하기에, 오히려 희화화를 하는 주체의 얕은 파악력이 조롱의 대상이 됨을 뒤늦게 일러둔다.—작품이 계승을 자청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성격의 현상(phenomenon)으로 파악되어야 할 터이다. 그렇지만, 그러므로…… 홍상수와 한국이라는 주제에 오히려 핵심이 있지 않을까, 이런 비평의 욕심을 부려본다. 봉준호에게 한국이 알리바이였다면, 홍상수에게 영화가 알리바이였던 건 아닐까? 욕심을 부려, 달이 아니라 홍상수의 피부를 유심히, 그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직해(直解)를 거슬러서, 볼 수는 없을까.

홍상수의 일대기는 그런 욕망을 부추긴다. 이하의 연대기는 허문영이 편집하고 서울셀렉션에서 발간한 Hong Sangsoo에 수록된 “연대기Biography”의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홍상수의 어린 시절 버릇 중 하나는 거실에서 속옷만 입은 채 타잔처럼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같은 한국어로 된 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변잡기가 포함된, 어딘가 수상한 이 연대기는 홍상수를 논의할 때 대개 눙쳐지기에 다소 길게 옮겨 본다.


1960.10.25. 육군 중령 홍의선과 영화잡지 및 제작사 대표 전옥숙 사이에서 출생

1963. 홍의선-전옥숙은 제작사 ‘연합영화사’를 설립했다.

1967. 연합영화의 재정난이 계속되면서 가족 또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고, 홍의선은 홍상수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 집을 나갔고, 부모는 몇 년 후 이혼했다.

1975. 전옥숙이 계간지 �한일문예�와 �소설문예�를 창간했고, 홍상수의 집은 매일 밤 문화계 인사로 붐볐다. 홍상수는 그 자리가 끝나고 나서야 고요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1978. 홍상수는 대학 입시를 위한 시험을 치르지 않고 거실에 앉아 ‘Dust in the Wind’를 들었다. 겨울, 남산 근처의 싸구려 여관에서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 시도를 했다. 인생의 한 챕터가 끝났다고 느낀 홍상수는 음악을 하고 싶어 했다. 피아노를 조금 배웠지만 흥미를 붙이지는 못 한다.

1980. 전옥숙의 지인이 종종 집에 찾아와 홍상수가 좋은 연극 연출가가 될 것 같다고 말했었다. 홍상수는 이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에 입학했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해였고 홍상수도 시위에 참여했지만, 스스로 저항 운동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연극 전공자의 집단주의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한 홍상수는 사생활을 존중하는 영화로 전공을 바꿀 결심을 한다.

1981. 병역 의무를 하지 않고 현진영화사 사장인 김원두의 지원으로 캘리포니아 예술공예대학(CCAC)에 입학했다.

1983 아내를 만나고 1985 결혼했다.

1987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로 이사했고 3년을 살았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로베르 브레송과의 만남이었다. 그 후 오즈 야스지로, 루이스 부뉴엘, 칼 드레이어, 에릭 로메르 등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을 찾아 나섰고, 학교 옆 미술관에서 세잔의 작품을 보고 “이거야!(Ah, This is it)”는 기쁨에 휩싸였다. 이 시기에 앙드레 지드, 안톤 체호프, 표토르 도스토옙스키, 어니스트 헤밍웨이, 알베르 카뮈, 장 폴 사르트르의 작품에 천착했다. 이들의 작품은 나중에 그의 영화 프로젝트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되었다.


홍상수의 작품을 설명하며 연대기적 사실을 언급하는 소수의 경우에도 주로 언급되는 것은 1987년 이후의 항목이다. 『시네마토그래프에 대한 단상』과 세잔의 작품에 보냈던 경탄으로 홍상수의 비-서사성과 다면성을 주해하고, 지드의 미장아빔(Mise en abyme), 체호프의 정지와 침묵에서 그 형식의 기원을 찾으며, 오즈와 부뉴엘, 드레이어와 로메르 사이에서 홍상수의 좌표를 찾곤 한다. 그런데 청년 홍상수로 하여금 발견의 탄성—“이거야!(Ah, This is it)”—을 지르게 한 것이 단지 발견한 대상이 탁월했을 뿐은 아니다. 과거의 세계를 지루해하고 등지지 않는 한, 새로운 세계를 바라고 그것에 경탄할 준비가 되지 않는다. 연대기의 1987년 이전, 홍상수가 한국에서 경험한 아동기의 혼란, 청소년기의 고독, 청년기의 방황이 없이 “이거야!”의 경탄이 존재할 수 있을까. 홍상수를 한국의 예외로 만든 모더니스트와의 조우가, 그의 한국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는 아닐까.

홍상수가 지낸 1960-1987년의 한국은 개발과 계획 그리고 독재 또는 집단주의의 풍속을 공유했다. 종적(시간)으로 꽉 짜여있고, 횡적으로 입장의 다양한 배치가 제한되었던 시기다. 홍상수의 영화는 이와 아주 다르다. 종도, 횡도 구성할 수 없는 영화로 홍상수는 향하고 있다. 또한 1960-1987년은 역사를 둘러싸고 국가 단위에서 개발과 논쟁이 많았던 시기다. 그런데 홍상수는 여행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강원도, 청주, 경주, 통영 그리고 당연히 서울 등 한국 곳곳에서 촬영하지만, 곳곳을 산지(山地)나 바다 혹은 릉(陵)과 같은 감각의 경험으로 대할 뿐, 그 지방에 내재한 역사와 지리 혹은 풍물과 관습을 빌려오는 경우는 드물다. 〈생활의 발견〉(2002)에서의 ‘회전문과 뱀’ 설화와 〈하하하〉의 이순신이 그 드문 예외라 할 수 있을 텐데, 〈생활의 발견〉은 바로 앞에서 그 문화재를 찾지 않고 〈하하하〉는 이순신을 위트로 사용하니 말이다. 유운성은 “홍상수의 영화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문제는, 달리 말하자면, 오늘날의 한국영화에서 과도하게 주체화된 영화적 이미지가 사진적 이미지의 엄정한 비인칭성/무인칭성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임을 지적했다. 이를 (앞의 장에서 언급한) 한국어와 한국이라는 땅으로도 확대해볼 수는 없을까. 과도하게 관습화된 언어 교환의 신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과도하게 관습화된 땅의 감각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타진한다고, 그리하여 홍상수야말로 ‘한국영화’ 감독이라는 이상한 결론으로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언급하지 않은 예외가 있다. 눈에 띄게 ‘한국영화’ 같은 영화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이다. 그의 이후 영화에서 느끼기 어려운 충무로의 감각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는 강하게 느껴진다. 철학자와 돼지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가 낫다] 그리고 철학자와 하녀[하늘을 보며 걷던 철학자가 우물에 빠지자 하녀가 비웃었다]의 우화를 섞어 만들었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돼지들의 서울 살이 같은 총체성을 지향한 게 느껴진다. 홍상수의 영화가 뒤로 가는 영화—앞에 제시되는 탈-맥락적 사건이 독법이었음을 알게 되어가는 영화—인 것처럼, 그의 필모그래피도 뒤로 간다면, 언젠가 그의 예외를 아우를 수 있는 독법을 가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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