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한 비평

by 금동현

KMDb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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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곰곰이 뜯어보면 ‘비평, 안녕하십니까.’란 질문은 오묘하다. 비평critic이 위기crisis를 전제로 한다는 통설에 근거하자면, 비평이란 그 성질상 한사코 안녕(安寧)할 수 없는 것이거나, 최소한 안녕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태평한 시기일지라도 비평가는 위기를 발견하고, 때로는 그것을 인식의 표면에 올리고자 위기를 조장해야 한다. 통념과 상식의 범주에 포착되지 않는 요소를 끝내 사유의 영역으로 회수해내는 일—그곳에 비평가의 덕목과 기쁨이 있다. 물론 이러한 덕목을 실천하고 기쁨을 누리는 비평가도 안녕하기는 어렵다. 상식과의 불화를 견지하면서 평안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녕한 비평’은 존재할 수 없고[안녕하면 비평이 아니다.] ‘안녕한 비평가’는 소속감을 불안으로 받아들이고, 불화에서 안정감을 찾는 사람들의 희귀한 기질을 갖춰야 한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어느 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내 존재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잊음oubli이다. 나는 잊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잊음이다.”] 비평가는 탄탄대로를 지척에 두고도 굳이 외줄을 탄다. 탄탄대로처럼 보이지만 실은 앞길이 끊어져 있다고 말하며. 그러므로 마땅히 안녕할 수 없는 비평(가)에게 주어지는 ‘비평, 안녕하십니까.’란 질문은 이렇게 읽힌다. ‘비평, 설마 안녕히……하고 계신 건 아니죠?’


내게 비평가란—등단 등의 제도를 통해 부여되는 자격이 결코 아니고—비평의 기능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사람의 총칭이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부끄러울 정도로 조금만 비평가다. 그렇지만 질문은 언제나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다. 그러니 질문을 핑계 삼아 외줄에 올라보자. 다시 한 번, 김현은 이렇게 쓴 적 있다. “나는 항상 옳다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항상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의 사람은 투사고 뒤의 사람은 종교인·예술인이다. 나는 항상 옳다고 말하는 사람의 자부심 없이는 싸울 수 없고, 나는 항상 잘못한다고 사유하는 사람의 원죄성 없이는 느낄 수 없다.” 비평가는 투사와 예술인의 세계를 오가고, 부지런히 샛길을 만든다. 잠깐, 자부심의 시간이다. 그렇지만 나는 부끄럽기에 아주 멀리 우회하고 감추고 파편화할 것이다.


2.


이두용의 <장남>(1984)은 고향이 수몰지구로 선정되어 노부모가 자식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상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장남(신성일)을 중심으로 담은 극영화다.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1953)처럼 처음 장남의 집에 모셔진 노부모는 도시화된 생활과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집터로 사둔 변두리에 잠시 머물고 결국 노인에게 불편한 아파트로 옮겨진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제주도로 장남이 출장을 간 사이 노모는 아파트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틀니를 전달하지도, 임종을 지키지도 못한 장남이 도착한 건 엘리베이터에 실을 수도 없어 관이 ‘짐짝’처럼 곤돌라로 내려지고 있는 때였다.


이렇게 글줄로 옮기니 장남이 적극적으로 불효를 저지른 것 같지만, 장남은 결코 지탄 받을 정도의 불효자가 아니다. 그는 다만 ‘잘 잊는 사람’일 뿐이다. <장남> 그리고 이두용의 탁월함은 이 성격을 구축하는 표현법에 있다. 5분, 장남이 공중전화에서 막내에게 전화를 하고/다음 이용객이 장남이 수첩을 두고 갔다고 불러/수첩을 전해주는 장면이 있다. 슬래쉬(/)를 기준으로 세 커트로 이뤄진 이 장면은, 장남이 ‘잘 잊는 사람’임을 보여주려는 의도intention를 드러낼 정도로 강조 되어 있지만, 몰입을 저해할 만큼 웅변조는 아니다. 이 장면을 계기로 시작된 ‘잘 잊는 사람’이란 성향이 연속되며 결말이 엄습해온다. 장남의 유실물이 점점 중대해진다. 그는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을 잊고, 어머니의 틀니를 해주는 것을 잊고, (어머니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말을 했음에도) 결국에는 어머니의 다가오는 죽음을 잊는다.


그 제목만으로 <장남>과 ‘각각의 영화사’를 상상하게 하는 <장손>(오정민, 2024)은 여러모로 다른 영화다. 노부모가 장남을 찾아오는 게 아니라, 상경한 손자가 가족이 사는 대구의 고향집으로 내려온다. 장남과 달리 장손 김성진(강승호)은 자동차를 몰지 않는다.—임권택은 언젠가 영화평론가 정성일에게 “남자가 말이오, 나이가 들어서 늙으면 안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운전밖에 없어요.”라고 말한 적 있다. 남성성과 운전—그리고 무엇보다 장남은 가족의 무게를 지려고 한다. 그렇지만 장손은 가족의 무게를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장손은 조부모의 영정사진을 찍는 일을 회피하고, 할머니의 장례식장으로도 곧잘 들어오지 않으며, 병실 바로 앞에서도 고모부의 얼굴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창밖의 햇볕에서도 눈을 돌리듯, 가족의 문제를 외면(外面)한다.


물론 <장남>의 잦은 망각도 무의식적 외면의 욕구가 가족주의에 검열된 결과로 충분히 바라볼 수 있다. 다만 무의식적 외면의 욕구가 가족주의라는 검열과 부딪칠 때마다 쌓였던 에너지는 노모의 죽음과 함께 슬픔으로 폭발하고 관객에게 전이된다. 그리하여 이두용 영화에 내재한 미묘한 냉엄함과 별개로, <장남>은 가족주의의 메시지로 귀결된다. 이와 달리 가족의 무게를 결단코 외면하지만 [지극히 특권적이고 결단코 반항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그러므로 단언컨대 성진은 그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핵심적 구동원리인 ‘장자우선주의’의 수혜자인 덕에 가족주의의 전全 과정을 익히 알 수 있는 성진의 특권적 시야로 인해 <장손>은 건조한 케이스 스터디로 귀결된다. <장남>과 <장손>의 이 차이는 흥미롭다.


그렇지만 지금 남겨둘 질문은 하나다. 어쩌다 장손은 외면을 하게 되었는가?


3.


유산heritage은 벽이다. 외면하고 도망치려 할수록, 그 벽은 점점 더 커지고 결국에는 모두를 병들게 한다. 이 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은 단 하나다. 그것을 정확히 대면하는 것. 나는 여기에 관한 최량의 우화를 하나 알고 있다.


남재일 |당신의 영화는 매우 공격적이고 신랄하게 발언한다. 지금 ‘아버지’라고 표현한 부분일 수도 있겠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공격하고 싶은 건가?
임상수 | 나는 모든 권위 혹은 권위주의를 철저하게 경멸한다. <그때 그 사람들>을 본 사람들은 임상수가 이렇게까지 존경심이 없다는 데 당혹해한다. 좌파와 진보적인 사람들까지도. 그런 걸 보면 나는 묘한 쾌감을 느낀다. 경멸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경멸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조롱하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조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뿌리 깊은 속성부터 아무런 존경심이 없다. 그 근원은 내 부친이다. 그는 존경심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출세하지 못한 사람이 출세한 사람에 대해 가지는 질투가 있었지만, 나는 한 세대를 겪고 나오면서, 그 질투를 정확하게 걸러냈다. 그의 경멸만을 물려받았다. 경멸하려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만큼도 존경할 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허투로 존경받고 있다는 치명적인 사실 말이다.(강조-인용자)


‘남한’을 구축했다고 할 만한 최대의 유산인 박정희를 경멸하기 위해 임상수는 사실을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임상수는 박정희를 거의 촌부로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 해직기자이자 영화평론가였던 아버지 임영(林英)의 덕이며, 심지어는 “어떤 점에서는 아버지가 이 영화의 공동창작자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층위는 다소 다르지만) 유산의 성격이다. (박정희라는) 유산은 강력하다. 그렇지만 정확히 대면하면 그것을 경멸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버지-임영이라는) 유산은 강력하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한국의 영화에도 많은 유산이 있다. 나는 이 유산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유산은 일종의 물과 어항이다. 나는 그 안에 살기에(물) 제한된다(어항). 제한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으면 평안함을 누릴 수 있지만, 의심이 시작되면 참을 수 없이 답답해진다. 이 답답함을 외면(外面)하는 것이 ‘안녕’한 선택이다. 그리고 ‘안녕’을 위한 외면도 반복된다면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 다시 한 번, 비평은 어항의 ‘바깥’을 향한 몸짓이다. 그 몸짓의 방법과 정도는 가지각색일 수 있다. 어항 속의 물고기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지느러미로 어항을 가늠하고 빈틈을 탐색할 수도 있고, 눈알이 빠지도록 대가리를 어항에 처박을 수도 있다.


한국의 영화사를 돌아보면 많은 비평은 어항을 새로이 만드는 일에 참여해왔다. 초기의 비평은 세계영화에 비해 기반과 역사가 빈천한 ‘한국영화’의 위신prestige을 위해 투쟁했고, 90-00년대 ‘뜻밖의 연합Unexpected Alliances’[주: 포스트 권위주의 사회에서 영화산업과 국가 그리고 독립영화가 어떻게 예기치 않게 연합을 이뤘는지를 설명하는 동명의 저서의 제목]이 이뤄진 시기의 비평은 ‘스크린쿼터 운동’을 문화제국주의에 대립하는 첨예한 전선으로 잡고 독립과 인디indie의 기반이 되는 제도와 기금의 조성에 헌신했다. 이들의 투쟁과 헌신이 얼마나 상례적이었고 유효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지만, 제도는 분명 중요한 비평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비평의 결과로 만들어진 제도가 오늘날 영화에서의 유산이다.


나는 2010년대 중반부터 영화 비평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기억컨대, 2010년대의 영화계는 제도 비평의 활기가 가득했다. 혹자는 이들의 제도 비평을 두고 지면紙面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라고 저열한 힐난을 했지만, 내가 아는 한 제도 비평에 열을 올렸던 비평가들 중 영화계에서 안정된 지면을 얻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제도 비평은 실질적으로 유효한 행정의 변화로 이어지지도 않았고, 제기한 논점을 두고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듣는 회담이 열린 적도 없다. 솔직한 토론이 이루어질 경우 자신들의 지적 기반과 역사적 모순이 노정될 게 두려웠던 것일까?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억누르고 말하자면, 영화계는 제도 비평을 수용하고 처리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비판을 지면의 요구로 해석하는 사람이나, 비판의 실질이 아니라 태도를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사람들은 영화를 문화가 아니라 산업으로 보고 자리를 지키는 것에만 혈안이 된 게 아닐까? 그들은 종종 이렇게 무의식적인 고백을 한다. “이런 비판에는 동업자 정신이 결여 되어 있어……” 재원의 전부가 국가지원금인 경우에도……) 어쨌거나 그때의 비평가들은 대개 미술이나 문예 계열의 지면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2020년 COVID-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이 도래했다. 10년대가 핵심적으로 겨냥한 유산이 ‘뜻밖의 연합’이 창안한 제도였다면, 이러한 역사적 우연은 지극히 공교롭게 느껴진다. 초기의 비평이 세계영화에 대해 한국영화의 위신을 추구한 배경은 당대 영화의 미디어 환경이 단관극장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같은 맥락에서 ‘뜻밖의 연합’ 시기의 비평이 세계영화에 대해 한국영화와 독립영화의 ‘다양성’을 ‘보장받길’ 원한 배경은 당대 영화의 미디어 환경이 멀티플렉스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수의 상영관에서 한국의 영화를 확실히 몇 자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그리고 팬데믹은 정확히 멀티플렉스에 치명적인 위기를 몰고 왔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하여 10년대의 제도 비평을 지금 보면 어딘가 예언적인 게 있다. 그때 지적된 다양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산적해있고 심화되었다. 그렇지만 학습의 효과일까. 오늘날 영화 비평은 더는 제도를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어차피 내 대가리만 깨지고 말 텐데?)


그리고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마이크로시네마’가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 같다. (여담이지만 《씨네21》이 서로 너무도 이질적인 집단을 묶고 이들을 ‘마이크로시네마’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제시했지만, 그 요체인 소규모-(비)공식-영화보기 모임은 당연한 말이지만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최근의 ‘마이크로시네마’가 새로운 현상인 것은 이 기획에 비평가가 다수 참여하고 있고, 과거와 달리 [위법성의 소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한 홍보로 호객을 한다는 점일 테다.) 그 실질은 제도 비평과 아무 관계없다고 실소할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구조적으로도 팬데믹 시기에 강화된 OTT라는 미디어 환경이 영화를 초과공급하고 있기에 강력한 큐레이팅 기능을 요구하는 수요를 포착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역사의 시야에서 10년대의 제도 비평과 20년대의 마이크로시네마가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나만의 착각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혹은 착각일지라도, 이 착각이 적잖이 생산적일 거라고 자신한다. 이러한 착각을 지속하자면[사실 비평가는 착각의 대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포스트 10년대’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영화 제도가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유통과 인정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판단, 혹은 제도화 없는 비판이 내파implosion와 외파explosion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토대로 시작한 참호공사. 어항과 금붕어의 비유를 계속 들자면, 전자는 작지만 작은 어항을 새로이 만들자는 것이고, 후자는 어항을 부술 수 있을 때까지 머리를 단단하게 만들자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다보니, 제안 받은 원고의 매수와 주제를 모두 훌쩍 초과했기에, 이쯤에서 서둘러 마무리해보자. 나는 비평이란 그 성질상 위태롭고 불쾌하고 불건전할 때 적절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다시 어항에 대가리를 처박는 사람들이 보고 싶다. 10년대에 예견되었듯, 멀티플렉스는 머지않아 시장에 의해 자동조절 될 것이고 줄어드는 관객에 따라 영화에 부착된 사회적 기능도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적 실천이 아니라, 제도 비평의 계절이 다시금 오기를 바란다. 그러니 [이제, 감히 대명사를 바꿔 보자] 우리의 ‘제도 비평’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나의 근심이자 고민이다. 나는 성진-장손이 택시를 돌려 다시 집으로 가길 바란다. 그것이 그의 몸과 정신을 찢어놓는 결과를 낳을지라도, ‘2010년대 재방문’이 너무 늦지 않기를.


“장자의 무용지용에 대한 퉁명스러운 반론: ‘그래 그렇게 오래 살아 뭐하자는 게요, 제기랄.’” (김현, 『행복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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