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합을 맞춰갈 차례였다
모든 일엔 '어.. 예상과는 다른데?' 하는 순간이 온다. 아무리 예상하고 대비해도, 상상만 하던 것과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리라. 좋아서 시작한 일이어도 예외는 없다. 정말 모든 게 좋을 것만 같던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간에 그런 순간은 온다.
어떤 일의 모든 것이 좋거나 과거에 정말 그랬던 것이 있다면. 아직 그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그 일의 모든 면을 알지 못하고 그만둬서가 아닐까 하고 감히 단언한다.
첫 봉사였던 교육봉사를 마치고 내가 선택한 것은 한 초등학교의 돌봄 봉사였다. 다양한 돌봄 봉사가 있지만 내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장애학생들이 수업에 적응하도록 옆에서 돕는 일. 일전에 비슷한 동아리를 해본 적이 있었고, 평소 아이들도 좋아했다. 그렇게 걱정 없이 신청한 나는, 이주 차도 안되어 생각했다.
'내가 봉사를 정말.. 좋아하진 않는 건가?'
지금까지 해 온 봉사는 모두 소통이 되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고, 불편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할 수 있는. 과거의 경험으로 이번에도 비슷할 거라고 속단한 것이 문제였다.
이번에 만난 아이들은 전에 만났던 아이들보다도 장애의 정도가 심했다. 대화보다는 표정으로, 말보다는 손짓으로 소통을 했다. 아이들의 생각을 바로 알 수 있었던 전과 달리, 온종일 아이 옆에 있어도 아이들의 생각을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내가 도움이 되고 있는 건지, 내가 마음에 드는지. 그저 눈빛과 표정으로 가늠해볼 뿐이었다.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아이들의 특성상 당연한 것이고, 여기서 서운해하면 안 된다는 것도. 하지만 생각만큼 마음이 따라와 주지 않았다. 활동이 전처럼 즐겁지도, 보람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런 나를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알고 보니 나는 생각보다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었다. 남을 돕는 그 행동.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그 행위에 보람을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게 맞지만, 내가 봉사를 좋아하고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조건적인 희생정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소통, 활동에 대한 인정의 표현,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 느끼는 보람 때문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알아가고, ‘합’을 맞춰가는 과정. 일이라고 다를까.
나는 그 일을 나의 좋았던 경험만으로 판단했다. 나의 경험이 그것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좋아서 시작한 일엔 내가 좋아하는 ‘그 모습’ 말고도 아주 다양한 모습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과 다른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였다. 그 부분을 감내할 만큼 좋아해서 더 해보거나, 무시할 수 없는 큰 부분이라 다른 길을 가기로 하는 것.
나는 한번 합을 맞춰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