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장 생활은 변화의 연속이었다. 잡지사 인턴 기자, 논술학원 강사, 교육 프로그램 연구원, 첨삭 전문가, 출판 편집자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직업들을 하나도 묶을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한참을 고민해 왔다. 한마디로 나를 정의하자면 나는 ‘글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에겐 늘 ‘책’이 곁에 있었다. 사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부모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나는 늘 책과 함께하며 성장해 왔다. 어린 시절, 경기도에 살았던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서울에 있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자주 갔다고 한다. 앨범을 보아도 교보문고 혹은 책 박람회에서 책에 집중하고 있는 내 모습을 종종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 담임 선생님이 엄마를 호출하신 적이 있었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 학급문고의 책을 읽다가 책에 너무 빠져들어서 수업 시간까지 그 책을 읽었던 게 화근이었다. 선생님이 주의를 주었는데도 그때뿐, 다시 읽던 책에 빠져들어 읽었던 어린이였다고 한다. 엄마가 학교에 온 것과 나에게 주의를 준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읽었던 책이 <장화 신은 고양이>와 <눈의 여왕>이었던 것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에는 만화로 된 세계명작동화 전집을 사 달라고 부모님께 졸랐던 기억이 난다. 전집의 권수가 20권이 넘는 것을 보고 어떤 작품들인지도 모르는 그 책들을 읽고 싶다는 욕구와 희망에 부풀어 부모님을 졸라서 전집을 득템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죄와 벌>, <노인과 바다>, <대지> 그리고 <폭풍의 언덕>을 만화로 먼저 읽었다. 주인공이 어떤 감정을 갖고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때로는 히스클리프의 광기에 슬픔을 느끼기도 했고, 노인의 처절한 사투에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책을 많이 읽었던 유년 시절 속, 내 이름을 단 첫 번째 책은 6학년 때 출간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던 수학여행 안내 책자였다. 6학년 전교생을 위해 만들어진 안내 책자에는 수학여행을 가게 될 공주와 부여의 유적지와 유물에 대한 정보, 관광 코스에 대한 세밀한 일정을 담고 있었다. 안내 책자 편집위원 경험을 토대로 학급문집을 만드는 데도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이와 함께 본가에 고스란히 남겨진 30여 권의 일기장을 포함한 기록물들은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친구와 함께 나누었던 교환일기와 주고받았던 편지들 또한 글쓰기를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연스러운 행위로 만들어 주었다.
만화책을 수차례 빌려 읽었던 중학교 시절을 지나, 고등학교 시절에는 기숙사와 독서실에서 해리포터 전집을 친구들과 돌려 보았던 기억이 있다. 국어 영역 고득점을 위해 읽었던 한국문학 작품들은 참 재미가 없었다. 청소년 시기에는 어떤 책이든, 어떤 글이든 흥미를 느껴야지만 내 곁에 두었다.
학부 시절에는 자발적인 흥미로 책을 읽을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국문학을 복수 전공 하다 보니 매일 읽어야 할 작품들이 정말 많았고, 강의 시간마다 작품을 읽고 퀴즈를 보거나 원페이퍼 에세이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쓰고 싶은 글들을 많이 썼던 시기이기도 했다. 영화 리뷰와 일기뿐 아니라 기자를 준비하면서 ‘쓰기’와 관련된 다양한 대외활동을 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쓰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간지의 인턴 기자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보도자료를 접했고, 매주 5편의 프리뷰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학부 시절까지 쌓아 온 다양한 독서와 글쓰기 경험들은 ‘활자’를 다른 사람들보다 친밀하게 여기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해 주었다. ‘쓰는 행위’ 자체를 두고 두려움 대신 편안함을 갖게 했고, ‘읽는 행위’ 속에서 터득한 다양한 어휘들을 통해 누군가의 글을 매끄럽게 고치는 능력을 갖게 해 주었다.
여기저기서 인문학의 위기를 떠들던 학부 시절, 다들 복수 전공으로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할 때 기자의 꿈을 가지고 국어국문학을 택했던 나는 졸업 후 신문사 편집 기자 최종 면접에서 탈락의 쓴맛을 보았다. 언론고시를 계속 준비할지 다른 쪽으로 취업을 할지 고민하던 시기, 새로 깨달은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