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 버린 과거의 글쓰기 경험
출판사 이직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고 싶은 사실이 있다. 학원 강사에서 대학원생이 되고, 졸업 후 연구 개발자로 일하다 출판사로 이직해 일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한 것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들이 브런치 작가가 되도록 도와주고, 글쓰기 즉 활자 밥벌이를 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볼 때는 별것 아니라 여길 수도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것들로 인해 내가 지금껏 프리랜서로 살 수 있단 생각이 든다.
블로그
사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한 것은 꽤 오래전으로, 학원 강사로 근무할 시절이었다. 매일같이 남의 글을 읽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손으로 쓰던 일기를 쓰기가 싫었고 차일피일 밀리던 와중에 며칠 전에 했던 일들조차 기억이 나지 않기 시작했다.
평소 기억력이 썩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블로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주간 일상을 모아 사진 일기를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이 일을 가장 최근인 2025년까지 했으니 꽤 오래 지속한 편이라 볼 수 있겠다.
블로그에 일주일간 핸드폰에 담은 사진을 올리고 그 아래 코멘트를 쓰며 그때 있었던 일을 돌아보고, 당시의 감정을 글로 녹이는 연습을 했다. 길 때도 있었고 짧을 때도 있었지만 이 기록이 없었다면 내가 과거를 어떻게 인지했을까 아득할 정도이다.
주간 일상 외에도 맛집이나 제품을 사용해 보고 난 다음 쓰는 후기 포스팅, 여행에 관련된 정보성 포스팅도 꽤 많이 했었다. 요즘 남들은 블로그를 부업의 일환으로 한다는데, 나의 경우에는 돈을 벌기보다는 아끼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돈보다는 내가 아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고, 방문자 수가 오르다 보니 하나의 챌린지처럼 여겼던 것 같다.
어쩌다 보니 하루에 블로그에 방문하는 방문자 수가 몇천 명이 될 때도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는 맛집 체험단도 많이 했었다. 대학원에 다녀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벌이가 줄었었는데, 맛집 체험단을 하며 외식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마침 필요한 제품이 체험단에 올라오면 신청해 사용 후기를 올리기도 했었다.
여담이지만 블로그 체험단 후기가 다 거짓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내 경우는 제품을 고를 때나 식당 체험을 신청할 때 매우 신중하게 선택한 편이었기 때문에 실패한 적은 드물었다. 음식을 다 남길 정도로 맛없었던 적은 거의 없었단 얘기다.
체험단이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것을 몸소 체감한 사람으로서, 블로그에서 검색할 때 체험단 후기라고 그냥 거른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유명한 프랜차이즈나 맛집들도 체험단을 홍보의 일환으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내가 블로그를 그만두게 된 것은 네이버 인플루언서 선정에 두 번 떨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운영한 블로그는 일상뿐 아니라 여행, 맛집, 제품, 영화 등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었는데 네이버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한 분야의 전문가를 원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위 노출에서 배제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3000자씩 쓴 포스팅이 제대로 노출되지 않거나 아주 뒤에 밀려서 검색이 어려우면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스템에 놀아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만은 않아 나중에는 블로그에 소홀해지고 말았다.
지금은 사람들인 긴 글, 긴 영상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블로그의 노출 기준에 맞게 2000자가 안 되는 포스팅이 많지만, 과거만 하더라도 3000자에서 4000자를 기본으로 한 장문의 포스팅을 상위에 노출시켜 주었다. 이때의 블로그 운영이 글쓰기 연습의 일환이 되어 꽤나 쏠쏠한 글쓰기 경험치가 쌓였다고 본다.
더 나아가 지금은 네이버플레이스에서 영수증 리뷰 남기기를 주로 하고 있다. 짧은 글이라도 남기는 내 모습을 보면 여전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 남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은 그대로인 듯하다.
자기소개서 첨삭
이것은 남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역량과도 같아 이 글에 쓰는 게 맞나 여러 차례 숙고했는데 그래도 자양분이라 할 수 있는 특별한 글쓰기 경험이라 이곳에 경험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사실 내 첫 첨삭은 대학생 때 사촌동생의 입시 자기소개서를 첨삭해 준 것이다. 대학교 2학년 때였던가, 사촌동생이 우리 학교에 수시를 넣고 싶다고 하여 자기소개서에 어떤 것이 들어가면 좋을지 알려 주고 최종 수정해 준 경험이 있다.
그때 학교에서 실제 시행하고 있는 제도나 정책 등의 실제 이름을 넣어 우리 학교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이게끔 ‘입학 후 학업 계획’ 항목을 수정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남들과는 다른 자소서를 쓴 사촌동생은 우리 학교에 합격했고, 그 뒤부터는 매년 엄마의 지인분들의 자녀들의 자소서를 한두 명씩 봐주곤 했다.
이는 내가 학교에서 웹진 기자를 했으며, 기자단 봉사활동을 하고, 잡지사에서 인턴 기자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당면한 나의 과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너무 신기하게도 내가 돈을 받지 않고 첨삭해 준 자소서로 지인분들의 자녀들이 대부분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했고, 그때부터 첨삭 능력은 나의 재능이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한 뒤 크몽이라는 플랫폼에서 자기소개서 첨삭을 하기 시작했다. 크몽에서만 300건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하며 명문대는 물론 전문대학원, 특목고,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 합격하게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다양한 이들의 미래에 조금이나마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있었다.
초반에는 대놓고 대필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대필은 한 적 없었다. 글쓰기로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양심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 직업 윤리였고,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내가 첨삭해 준 편입 자소서로 대학 합격을 하고, 4년이 흘러 인턴 지원을 위해 취업 자소서를 의뢰했을 때에는 뿌듯함을 넘어 뭉클하기까지 했다. 원하는 기업에 합격한 오빠가 여동생의 취업 자소서를 의뢰한 적도 있을 만큼, 재의뢰가 정말 많았다.
하지만 사람만큼 똑똑해진 AI 때문에 수시 자소서는 약술로 바뀌었고, 취업 자소서 역시 의뢰가 급속히 줄어들고야 말았다. 처음 시작할 때에도 비싼 의뢰 금액을 받던 것이 아니었고 부업의 수준이었기에 가계에 큰 타격이 되진 않았다.
사실 많은 이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온 흔적들을 자기소개서를 통해 보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했었는데, 그런 기회가 사라졌단 게 아쉬울 뿐.
브런치에도 ‘자기소개서 잘 쓰는 방법’에 대해 두 편의 글을 게재했었는데, AI의 손을 빌리기보다는 직접 자기소개서를 잘 쓰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결국은 첨삭과 블로그 모두 지나간 경험이 되었지만, 이렇게 수년간 걸쳐 나에게 자양분으로 남은 이 글쓰기 경험들은 장문의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었고, 향후 출판사 취업에도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