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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Nov 09. 2022

삶은 잠수가 아닌 헤엄이기에

잠수 탈출기 


                                                                                                          





  우울증의 첫 번째 증상은 체중 감소였다. 입맛이 없었고, 좋아하는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체했다. 보다 못한 친구가 일터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쌀국수를 사주며 이럴 때 더 먹어야 한다고 채근했다. 뜨거운 국물을 몇 모금 먹었다. 금방 배가 불렀다. 결국 얼마 먹지 못 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날도 나는 한참을 울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는 그런 생각 말라며 다그쳤다. 우리는 팔당행 지하철을 기다렸다. 서울에 사는 친구는 나를 굳이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내가 코를 훌쩍이고 있을 때, 다리 하나가 없는 비둘기가 옆으로 콩콩 다가다. 


  "불쌍해."

  친구는 비둘기가 지나가고, 지하철이 들어올 때까지 울었다.


  두 번째 증상은 불면이었다. 쉽게 잠들지 못했고, 잠을 자도 두 시간마다 한 번씩 눈을 떴다. 개운하게 못 잔 상태로 출근을 하니, 하루종일 몸에 기운이 없었다. 퇴근 후 내가 향하는 곳은 집이 아니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근처 공원을 찾았다. 동물원이 함께 있는 공원이었다. 코로나로 휴점 상태인 매점 옆에 앉아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걷기 힘들 땐 모텔을 대실해 그곳에서 쉬었다. 집에선 맘 편히 쉴 수 없었다. 나를 너무 걱정한 나머지 가족들은 약을 중단하기를 권했다. 그 말이 듣기 싫어, 집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렇게 생활한 세 달 동안 7kg이 빠졌다.



선생님,
다들 견디고 사는데 제가 유난스러운 것 같아요.

  


   “우울증? 다들 그렇게 살아.”


  누군가 말하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치료보다는 수면에 도움을 받고 싶었다. 처음엔 2주에 한 번씩 추천받은 병원에 갔다. 선생님께서 어떠셨어요? 하고 물으면 잘 잤어요., 혹은 못 잤어요. 로 대답했다. 잠이 잘 오느냐, 안 오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우울한 생각은 그대로였다. 

  

  잠실환승센터에서 집으로 향하는 직행버스를 타면 꼭 잠실대교를 건넜다. 그때마다 뛰어내릴 곳을 바삐 눈으로 훑었다.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내가 겁쟁이 같았다. 집에 도착하면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가족들이 말을 걸기 전에 약을 털어 넣고 잠들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피했다. 내 속의 이야기도 감당이 안 되는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체력이 없었다.


  약을 복용하고 일 년 뒤 병원을 바꾸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전 병원은 지하철로 왕복 두 시간 거리여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됐다. 다음 병원은 데스크 직원 분과의 통화로 정했다. 귀찮음이 묻어있는 목소리가 들리면 전화를 끊었다. 서너 군데 통화를 해본 다음 결정한 병원은 집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꾸며진 의사 선생님 방에서 나는 물었다.


  "제가 정확히 무슨 증상인가요? 다들 저처럼 살지 않나요?"

  남들이 어떻게 살아도 환자 분이 힘들면 힘든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난 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이제 3년 차다. 약 용량은 처음보다 늘었지만, 우울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조금 달라졌다. 예전엔 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우울’과 관련된 책을 스스로 찾아 읽었다. 내가 이런 감정이었구나, 그래서 침대에서 못 일어났구나. 사소한 습관 속에서 내 우울을 찾는 동안 나는 더 깊이 잠겨 들어갔다. 나는 환자니까 안 돼. 견디지 못할 거야. 그런 생각들이 이룰 수 있는 목표와 일상을 막아섰다.


  이제는 파묻히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생각은 줄이고 행동을 늘렸다. 숨 참고 잠수하는 연습은 그만두었다. 헤엄쳐야 한다.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고, 때때로 힘차게 수면 위로 올라가 숨을 쉬기 위해 팔을 휘저어야 한다. 이 일기도, 그림도 헤엄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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