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 혐오
I love me and hate me
나는 잘난 척이 심한 편이다. 겸손을 떨면서 사실은 그 속에서 잘난 척을 하는데에 아주 일가견이 있으시다. 그런 문장을 만들어 내는데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겸손한 듯 보이지만 사실 정신을 차리고 잘 들여다보면 뭐야 결국 지자랑이네 하고 마는 것. 그 수가 잘 보이지 않아서 무심코 지나가면 허허 저 청년 참 겸손하고 사람이 좋아하고 마는 것. 그런 것에서 오는 쾌감을 즐기곤 한다.
그런데 밖에서 여러 가지 인간군상을 대하다 보면 종종 나와 같은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이들을 만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정말이지 상당히 언짢다.
그렇다고 이렇게 가식적으로 착한 척과 잘난 척을 동시에 하는 내가 싫으냐? 오히려 가끔 기특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왜 밖에서 타인의 그런 행동을 보면 마음이 불편할까. 내가 스스로 만족해하는 행동을 누군가가 했으면 응당 그들도 칭찬해 마땅하지 않나. 그런데 그런 이들을 보며 항상 느끼는 감정은 오히려 불편함이었다.
나의 이런 요상한 마음에는 원인이 무엇일까. 나는 두 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가설 1번은 내 고유성을 빼앗긴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바로 '개성'이다.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 작은 차이들이 모여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나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개성을 그도 가지고 있을 때, 마치 최근 구매한 옷이 심혈을 기울여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어 재작 해서 세상에 단 세벌 밖에 없다고 했는데, 집 앞에서 옆집 아저씨가 똑같은 옷을 입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세 벌이니까 분명 누군가가 입고 있는 것을 맞을 테지만, 왜 하필 그 사람이 옆집에 산단 말인가.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는 이 옷이 사실은 그냥 어디에서든 살 수 있는 흔한 것은 아니었을까? 의심이 든다.
이것은 곧, 나는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던 나의 고유성이 사실은 전혀 특별하거나 희소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흔한 그 무언가 일 수 있다는 것으로 정체성에 약간의 위협을 받는다.
가설 2번은 사실 내 성격이 그동안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약은 행동들이 사실은 내 깊은 곳에서도 스스로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종종 생각했을 수 있다. 내 성격의 장점과 단점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내 셩격의 단점이 은연중 양심에 거슬리고 있었으나, 이 성격의 장점이 단점을 무시할 만큼 마음에 들었으므로 계속 모른 척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타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니 역시나 찔리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어릴 때 명절에 외가댁에 놀러 가면 집안 어른들이 갑자기 '너 엄마랑 말하는 게 똑같구나'하며 놀리곤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왠지 기쁜데 기분이 나쁘다. 오묘한 일이다. 무엇을 두고 나를 엄마와 똑같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그 말이 기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동안 보아왔던 엄마에게 항상 장점만 존재했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동시에 살짝 기분이 안 좋기도 한 것이다.
스스로 결론을 내리기로는 두 가지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살면서 언어를 습득함과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살아간다. 사춘기 때는 그 의문이 정점에 닿아 종종 몹쓸 2차 산물을 생성하기도 하다가(흑역사라 부르자) 나이가 들고 삶보다 생이 우선이 되기 시작하면 일단 '나'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사색하기를 그만둔다. 그런 시기에 이런 나와 비슷한 존재를 만나면 문득 두려워진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