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싫었지만 지금은 추억

사회생활 이야기

by 제이와이

첫 회사에서 부서 배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이 한통 날라왔다.

'당신은 오늘부터 문화팀으로 소속 되었습니다.'


'문화팀이 뭐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이름에서 무엇을 하는 팀인지 대충 감이 오자 거부감이 들었다.

회사의 여러가지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는 역할로, 몇몇 팀에서 사람을 한명씩 차출해서 꾸려진 비공식 팀이었다.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입사 동기 중에서는 나만 차출이 된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는데 나중에 내가 그들 중 '유일한' 여직원이라 문화팀에서 필요한 데코레이션 등의 섬세한 작업을 할 사람이 필요해서 차출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흔들리는 눈빛과 함께 속으로 '아아, 잘못 뽑으셨습니다. 나는 그대들이 생각하는 그런 섬세한 여자가 아니에요'라고 생각했지만, 나를 제외한 구성원은 다 선배들이었기에 일단 침묵했다.


첫 문화팀 미팅에 소집이 된 날, 총 6명 가량의 인원이 모였다. 문화팀을 이끌게 된 과장님께서 대략적으로 어떤 것들을 하게 될지를 설명해주셨는데, 예를 들면 매월 생일인 직원을 다 같이 축하하거나, 신입사원들 환영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거나, 조직 전체 단합을 위한 MT나 행사를 준비하는 등의 일들이었다. 일단 '생일 축하'라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자 '내 생일도 그냥 넘어가려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직장 동료들의 생일 축하를 준비한다고...? 어떤 표정과, 말과, 이벤트로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나는 이 모임에 부적격자가 분명하다' 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과장님께서 한명씩 돌아가며, 문화팀의 일원이 된 소감을 나눠보자고 하셨고, 선배들은 모두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기대된다는 내용의 소감을 나누었다. 소감을 들으면서 '아, 여기 모인 사람들은 직장 내에서 함께 교류하고, 단합하는 것을 즐겁고 보람되는 일로 여기는구나. 나와는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 못하는 나는 매우 솔직한 심정으로 누군가를 환대하고, 이벤트를 준비하는 일 자체가 너무 생소하고, 어색하다며 설명을 듣는 동안 다른 분들과 달리 많이 부담되서 문화팀 역할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 말을 들은 과장님은 일단 알겠다고 하셨는지, 한번 더 생각해보라고 하셨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씁쓸한 표정으로 지으셨던 것 같다.

잠깐 주어진 휴식시간에 간식사러 다녀오겠다는 선배들을 따라 나가서 "저는 부담만 되는데 선배님들은 정말 다 아까 이야기 하신 것처럼 해보고 싶고, 기대되시는 거에요?"라고 물었더니, 그런게 어딨겠냐, 회사에서 하라니까 하는거지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순간 '아, 내가 실수했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고, 다시 미팅룸으로 돌아갔을 때는 바로 과장님께 "과장님, 저 문화팀 하겠습니다"라고 종지부를 찍었다.


약 3년 가까이 문화팀에서 했던 활동들이 꽤 많았다.


1. 점심 밥조 구성 - 수요일마다 4~5명으로 구성된 랜덤 밥조를 짜서, 강제로 다른 팀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도록 함. (점심값 지원은 없으며, 팀 간 교류 활성화를 위한 목적)


2. 기념일 이벤트(생일, 빼빼로데이, 발렌타인데이)

- 아침일찍 나와 직원들 출근 전에 책상마다 빼빼로를 깜짝 선물로 올려두기 위해 빼빼로데이 전날 집 근처 이마트에 가서 빼빼로를 잔뜩 구매해야 했는데, 그 가벼운 빼빼로도 100개를 들려면 엄청나게 무거워진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집에서 이마트까지 거리가 걸어서 15분 정도였는데, 집까지는 150개 가량의 빼빼로를 양손에 낑낑거리며 겨우 들고 왔지만 다음 날 출근 때 가져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은, 여행용 캐리어에 빼빼로를 담아가는 것이었고 다음날 그렇게 출근을 했더랬다.


3. 신입사원 웰컴 선물

- 신입사원이 입사를 하면 책+꽃다발을 준비해서 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어떤 책을 선물로 줄지도 내가 결정하고, 꽂도 예산 내에서 주문했어야 했다. 보통 한 기수에 7~8명 입사인데 그때 내가 준비해야 했던 책은 15권이 넘었었다.(꽃다발도...) 그때 내가 고른 책은 경영서적이었던 칩 히스의 'Stick'이었다.


4. MT준비

- 야근이 미치도록 많은 회사생활을 했지만, MT덕분에 우리나라 지방명소들을 이곳저곳 다녔더랬다.

남원, 문경, 포천, 설악 등으로 MT를 갔었는데 1박2일 or 2박3일 동안의 활동 프로그램과 프로그램들을 구성하고, 사전 답사도 다녀오는 등 가장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가끔 가족들까지 초청하는 MT를 구성할 때가 있어서 이 때는 각 팀에서 여러 사람들을 더 차출해서 같이 준비했어야 했다. 그 시절엔 MT에서 신입사원 부모님을 사전에 컨택해서 서프라이즈 영상편지를 준비하기도 했었다.

- 모든 MT가 강렬했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건 1일 단합 이벤트로 150명 직원이 모두 '롯데월드'에 간 일이었다. 그때도 단합을 만들기 위해 조를 편성하고, 롯데월드에서 조별로 수행해야 할 미션들을 준비했었는데 150명이 어떻게 모두 그곳에서 놀았는지 모르겠다.


5. 송년회 준비

- 가장 보람 있었던게 송년회 준비였는데, 문화팀에서 가장 처음 맡았던 일이기도 했고 몹시 하기 싫으면서도 대충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공들여서 기획하고 준비했었다.

- 시작은 모든 직원의 이름이 적힌 작은 카드를 벽에 붙여 넣고, 모든 직원에서 포스트잇을 나눠주고, 일년간 함께 일하면서 감사한 직원에게 메시지를 적어서 카드에 붙여달라고 했다. 송년회가 끝날 무렵에는 카드를 다 수거해서 담당자에게 전달해주었는데 제대로된 연말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형광등마다 한지를 입혀서 은은한 불빛으로 포근한 분위기도 만들고, 한해를 돌아보는 영상도 준비하고, 케이팝스타를 모티브로 한 장기자랑 행사도 준비했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팀별로 회의실 등의 공간을 지정해주고 불을 끄고 촛불을 하나씩 켜서 각 팀별로 돌아보며 감사나눔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재밌는 것은 문화팀에서 나를 제외한 모두가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미팅에서 모두가 격앙된 기대감으로 그런 아이디어들을 쏟아내면 마지막에 "과연 사람들이 그걸 좋아할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 할까요?"라는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 한쪽으로 의견이 너무 기울지 않고 내향인들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는 중용안이 채택될 수 있었다.


강제로 '오늘부터 문화팀 소속입니다'라는 메일을 받지 않았더라면 내 성격에 절대 자발적으로 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문화팀을 하면서 여러 조직에 걸친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지나고보니 일 밖에 기억에 남지 않았을 뻔한 회사 생활에 일 외적인 추억들도 남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는 저것도 다 '회사 일'이라 속으로는 귀찮아 하면서 일처럼 해내긴 했지만, '지나고 보면 회사에서 일한건 별로 기억에 안나. 다 이런 추억이 오래 기억에 남는거야' 라고 격려하던 한 선배의 말이 틀리진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여전히 그런 활동을 하지 않는 회사가 편하고, 삶과 일의 경계가 확실한 문화를 선호하긴 한다. 요새는 업무 시간=일, 그 외 시간=개인의 삶 이라는 경계선이 더 분명해져 회사 내 단합, 교류를 장려하는 활동들이 많이 축소되었지만, 아직도 그런걸 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그게 꼭 시대를 거스른다고 부정적으로 여기거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직원들 간의 사이가 나쁘지만 않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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