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by 전우성

어느 날 우연히 전설적인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작업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음악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는데, 나는 꽤나 큰 신선함을 느꼈다. 영상 속에서 그들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은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그리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70~80년대의 디스코나 펑크 음악들의 아주 짧은 특정 구간을 샘플링 (Sampling)한다. 그다음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가져온 소리를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 비틀고, 쪼개고, 속도를 조절해 전혀 다른 느낌의 소리로 변형시키더라. 그렇게 변형된 조각들을 또 다른 소리들과 붙이고 재조합하여 전체를 매끄럽게 에디팅(Editing)했다. 그 결과 완전히 새롭고 세련된 다프트 펑크만의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이었다. 즉, 그들의 방식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과 재해석에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빈 화면을 띄워놓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세상에 없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제 더 이상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사실 기존에 있던 것들의 변주이자 재조합이라는 생각이다.


마크 트웨인도 1906년에 집필한 그의 자서전(Mark Twain's Autobiography)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단지 수많은 낡은 아이디어들을 가져와 새로운 구성을 만드는 것뿐이다. 우리는 그저 낡은 아이디어들을 가져다가 정신의 만화경(Kaleidoscope)에 넣고 돌리는 것이다. 그러면 계속해서 새롭고 진기한 조합이 만들어진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을 때를 생각해 보자. 그 안에 들어간 기술 중 세상에 없던 것이 있었나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많도 않다. 터치스크린, MP3, 인터넷, 전화기. 모두 이미 존재하던 것들이었다. 잡스의 위대함은 기술을 발명한 데 있는 게 아니라, 흩어져 있던 기술들을 가져와 스마트폰이라는 맥락으로 편집하고 재정의한 데 있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기획의 영역은 발명이 아닌 세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소스 중에서 우리 브랜드에 맞는 것을 찾아내는 에디팅의 영역이자 그것을 해체하고, 비틀고 다시 붙이는 과정임을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편집해야 표절이 아니라 창조가 될까? 다프트 펑크의 방식에 답이 있다. 핵심은 트위스트(Twist)와 재해석이다.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면 그건 카피이지만 그것을 나만의 관점으로 해체하고, 낯선 맥락과 연결하면 크리에이티브가 된다.


오래된 막걸리를 가져와서 와인잔에 담아 샴페인처럼 팔면 힙해지고, 촌스러운 밀가루 브랜드의 로고를 가져와서 패딩 점퍼에 붙이면 MZ세대가 열광하는 굿즈가 되는 식이다. 결국 기존의 것은 재료일 뿐, 중요한 건 그 재료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하는 시선에 있는 것이다. ('브랜드보이'로 유명한 안성은 저자가 쓴 <믹스(Mix)>라는 책에서도, 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브랜드들의 사례를 통해 이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비틀어보는 시도,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가지를 붙여보는 엉뚱함. 이것이 어쩌면 새로운 무언가를 기획하는 마케터나 브랜더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고 책상 앞에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밖으로 나가보자. 서점에 가고, 영화를 보고, 다른 산업군의 브랜드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관찰해 보자. 그것들이 전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샘플링 소스들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내가 29CM에서 기획했던 '루시'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앱 푸시 메시지를 개편하는 프로젝트였는데,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광고성 푸시가 아니라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좋은 음악과 글귀를 추천하는 일종의 '소통 창구'로 전환한 시도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엄청난 이슈와 반응을 만들었고, 루시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다양한 언론에도 소개되었고, 심지어 앱 푸시 메시지에 위로받았다는 고객들의 후기도 쏟아졌다. (이 프로젝트는 내 첫 번째 책 <그래서 브랜딩이 필요합니다>에서도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 역시 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기획의 시작은 영화 <Her>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에서 영감을 얻었다. '기계가 인간에게 말을 걸고 위로를 건넨다'는 사만다의 개념을 샘플링하여, 그것을 우리 서비스(앱 푸시)의 맥락에 맞춰 비틀고 재해석해 붙인 것이다.


이 외에도 그간 진행했던 성공적인 브랜딩 프로젝트들을 복기해 보면, 100% 새로운 것은 없었다. 대부분 영화, 책, 혹은 다른 산업군에서 영감을 받아 비틀고 재조합한 결과물들이었다. 그러니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고 책상 앞에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차라리 밖으로 나가자. 서점에 가고, 영화를 보고, 다른 산업군의 브랜드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관찰해 보자. 그것들이 전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샘플링 소스들이기 때문이다.


많이 보고, 많이 수집한 사람만이 더 멋지게 편집할 수 있다. 좋은 DJ는 다양한 LP 판을 많이 가졌을 것이고, 좋은 에디터는 아는 어휘가 많다. 소스가 빈약하면 당연히 편집도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창조는 신의 영역이지만, 편집은 인간의 영역이다. 세상에 널린 것들을 다양하게 수집하고, 그것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비틀고 섞어보자.


그 짜릿한 에디팅의 과정 끝에,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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