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다양한 업종의 대표님, 임원분들께 물었다.
퇴사하고 약 석 달을 쉬었다. 2개월 동안은 그간 지친 나의 머리와 마음을 쉬는데 집중했다면 올해부턴 다음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스타트업(이란 표현보단 대기업이 아닌 기업들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대표님이나 임원분들과의 대화 자리 역시 이전보다 훨씬 빈번히 생기곤 한다. 반드시 합류에 대한 논의 건으로만 만나진 않았다. 기업마다 가지고 있는 이런저런 다양한 고민도 들어보고 얘기해보는 자리도 가졌다. 이직 등에 관계없이 그분들과 대화해보면 나 역시도 얻는 것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다양한 경로로 먼저 연락을 주시고 나와 만나는 이유는 한 가지다.
그럼 난 반드시 다시 물어본다.
"왜 브랜딩이 필요하세요?"
내가 왜 브랜딩이 필요하신지를 물어보는 이유는 모든 기업이 반드시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비즈니스 또는 업의 형태가 이유일 수도 있고 기업의 성장단계에서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단계가 있는 반면 그것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은 단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성장하는 많은 기업들이 '브랜딩'이란 단어를 놓고 고민하는 단계가 반드시 오는 것 같다.
아래는 그것에 대한 그분들의 다양한 답변들을 모아봤다. 이것을 통해 브랜딩이 시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혹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가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것 같아 공유해본다.
이는 이런 경우다. 보통 제조업 중심의 기업에서 이런 고민을 얘기하시는데 열심히 마케팅해서 (SNS 중심의 퍼포먼스 마케팅) 제품도 잘 팔리고 매출도 많이 올랐는데 사람들이 우리의 이름도 모른 채 '00 제품'으로만 인지한다는 것.(예를 들어 마약 쿠션) 즉 고객에겐 제품에 대한 인지는 있어도 브랜드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반드시 있어야 우리가 만드는 다른 제품들에도 (새롭게 마케팅 비용의 큰 지출 없이도) 자연스럽게 신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답변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이는 1과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론 조금 다르다. 지금껏 단기 마케팅 효율만 집중하다 보니 우리의 이름(브랜드명)이 브랜드로 인지되기보단 그냥 제조사명으로 인지 되는 것 같아 문제라는 것. 그래서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철학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브랜딩이 필요하지만 문제는 내부에 그런 전략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대표님이 얘기하신 예시가 아주 적절했다. "과장된 비유겠지만.. 우린 폭스콘이 아닌 애플로 기억되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열심히 매출 올리는 것에만 집중했어요. 그러면서 사업도 확장하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그런데 내부에 의사결정의 기준이 없다 보니 일관된 결정을 하기가 힘들어요." 고객 대상의 모든 의사 결정의 기준이 브랜딩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즉 브랜드에 대한 정의, 브랜드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 우리가 어떻게 고객에게 불려져야 할지, 우리 고객의 페르소나와 브랜드의 페르소나에 대한 고민. 이런 것들이 부재하다 보니 크게는 비즈니스 방향에 대한 의사결정부터 작게는 디자인과 카피에 대한 의사결정까지 모든 관련 결정이 기준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흥미롭게도 이 답변은 프로덕트, UX UI 디자인 총괄 분들께 공통적으로 들었다. 브랜드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 미션에 따라서 서비스의 모습과 디자인이 바뀔 수밖에 없는데 내부에 그것을 잡아주고 계속 관리 감독해줄 곳은 없고 이것을 외부에 맞기기에는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이는 비용적 리스크가 아닌 업의 이해도와 책임감 그리고 지속성의 리스크를 의미한다.
이건 조금 다른 각도의 생각인데 SNS 채널 운영 등 늘 하는 고정적인 마케팅 활동이 아닌 눈에 띄는 신선한 마케팅 활동을 브랜딩이라고 생각하시는 사례다. 음 글쎄.. 내 생각에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맞는 이유는 차별화된 크리에이티브가 브랜드를 알리는데 분명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29cm 재직 당시 많이 신경 쓰고 집중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틀린 이유는 이것은 브랜딩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지 이것만이 좋은 브랜드를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선 위의 다른 이유들이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틀린 이유는 트렌디한(유행 따라가는) 방식의 마케팅 활동은 그리 브랜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단 그 브랜드만의 차별화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이 역시도 물론 브랜딩의 영역이다.
사실 정확한 답변은 이것이 아니고 '우리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멋진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다. 이는 굉장히 광범위한 답변이라 조금 깊게 그 이유를 다시 물어보면... 결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되어 기업의 이미지를 높여야 자연스럽게 브랜드와 회사 가치도 높아진다는 것. 흥미로운 것은 질문에 대해 직접적으로 더 많은 매출을 만들고 싶어서라는 답변을 한 분들은 없었다.
어느 칼럼에서 앞으로는 장기적인 브랜딩보다는 단기 퍼포먼스 중심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기업은 이에 맞춰 성장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미래의 내 모습과 위치보단 당장 내일의 수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업종에서 기업을 이끌고 있는 리더분들을 만나보니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업의 성장 단계에서 어느 시점에 되면 브랜딩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는 오히려 단기 실적만 신경 쓰다 보니 브랜드의 이미지가 점점 엉망이 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다. 즉 브랜딩이냐 퍼포먼스냐의 문제는 앞으로는 이게 맞고 저게 틀리고의 문제가 아닌 어느 단계에 어떤 것이 더 필요한지에 대한 밸런스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나는 모든 것의 시작은 브랜딩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좋은 브랜딩은 (루틴한, 일반적인) 마케팅을 불필요하게 한다고 믿는 사람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