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전우성 Feb 02. 2021

루시(Lucy)의 추억

한때 29CM만의 앱 푸시 서비스로 세상에 나왔던 루시에 대한 기억들

2016년 여름. 온라인 편집샵 29CM에서 론칭했던 앱 푸시 서비스 루시(Lucy)를 지금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기존의 앱 푸시 메시지의 성격을 완전히 바꾼 이 새로운 서비스는 당시 꽤나 화제가 됐다.


아래는 루시 소개 영상과 소개 페이지

루시 론칭 영상


이 서비스는 세일즈 목적보단 철저히 브랜딩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어떤 회사가 하나의 서비스를 론칭하는데 그 목적을 브랜딩에 둘 수 있었을까. 당시 29CM는 가능했다.


루시를 직접 기획한 루시의 어머니(?)로써 루시는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으며 어떤 성과를 냈고 (안타깝지만) 왜 사라지게 되었는지 이곳에 기록하면서 루시를 추억하고자 한다.




우리 다운 앱 푸시 메시지는 뭘까?

이 질문으로부터 루시는 시작이 되었다. 모든 쇼핑몰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 같은 형태의 앱 푸시 메시지를 보냈다. 할인 할인.... 또 할인. 쇼핑몰의 앱 푸시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만 생각했다. 그래서 29CM도 늘 그렇게 보냈었다..

당시 수많은 앱 푸시 메시지들. 29CM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이게 과연 맞는 것일까? 맞다고 해도 남들 모두 그렇게 보내니깐 우리도 그렇게 보내야 할까?  29CM인데 달라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앱 푸시 메시지를 볼 때마다 들곤 했다.


줄곧 할인 중심의 반복적인 앱 푸시 메시지 전달은 유저들에게 피로감을 주기 시작했고 한 명 두 명 앱 푸시 메시지를 자신의 핸드폰에서 끄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이것 때문에 앱을 삭제하는 고객도 발생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29CM 다운 앱 푸시 메시지를 기획해 보기로 했다.


번거로운 광고창이 아닌 고객과의 소통의 창

앱 푸시 메시지란 무엇인가? 마케팅 수신 동의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광고일까? 그렇다면 그들의 핸드폰 화면은 광고판의 역할을 하는 것일까? 메시지를 보내는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곳(사람들의 핸드폰 화면)은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광고판이 아닌 브랜드와 고객이 '소통'할 수 있는 창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앱 푸시 메시지는 브랜드가 고객과 소통하기 위한 첫번째 말을 거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실제로 고객과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직접 고객의 목소리를 들을 순 없겠지만 우리의 감정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그것에 대한 고객의 메시지를 메일로나마 받을 수 있다면 어쨌거나 양방향 '소통'은 완성되는 것이며 이것이 앱 푸시 메시지를 단지 광고성 정보로 접근하는 다른 브랜드들과 명확한 차별성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앱 푸시 메시지 자체에 대한 문장의 개선으로 시작한 생각은 하나의 작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만드는 방향으로 확대되었다.

 

루시는 영화 her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주체와 역할의 정의

타사 앱 푸시 메시지와의 차별점은 이렇게 만들었으나 이것을 단지 담당자가 고객과 소통하는 고객게시판 같은 곳으로 인지시키고 싶진 않았다. 이 안에는 반드시 '관계'가 있고 '감성'이 있기를 바랐다. 진정한 브랜딩은 브랜드를 사람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란 말이 있듯이 마치 사람처럼 고객에게 말을 걸고(앱 푸시 메시지) 자신의 생각과 감정(유입 시 노출 콘텐츠)을 고객과 나누길 원했다. 그래서 마치 영화 her의 사만다처럼 이 서비스에 '인격'을 넣기로 했다.


인격을 넣는다는 것이 단지 이름을 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인격만의 명확한 특징들을 정의하고 그것을 서비스에 담아야 한다. 그래서 그 정의는 29CM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29CM의 이미지, 즉 29CM의 브랜드의 페르소나와 거의 일치하도록 했다. 그래서 이 인격의 성별, 나이, 외모, 성격, 말투, 느낌 등을 정의했다. 이름은 발음하기 쉬운 영문 이름 중 LUX 즉 빛(Light)이라는 뜻 라틴어에서 파생된 LUCY(루시)로 정했다.


당시 루시의 페르소나 정의. 29CM의 페르소나와 거의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탄생할 루시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는 명확했다. 루시는 당신에게 늘 관심이 많고 당신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존재다. 루시는 메시지를 통해 당신의 안부를 물으며 자신의 관심사와 일상의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하고 때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당신을 위로하기도 한다. 즉 당신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존재, 이것이 바로 루시의 역할이다.


그래서 루시는 상품을 추천하거나 구매와 관련된 내용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루시의 역할이자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모, 목소리, 말투.. 디테일의 구성

이러한 루시의 페르소나를 중심으로 이 가상의 존재를 디자인했다. 외모는 특정색을 지정하기보단 다양한 색상의 그라데이션을 통해 루시의 감정이 다양하게 변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또한 약 20가지의 다양한 감정을 정의하고 그것에 맞는 고유의 그라이데이션 색상을 정해 루시가 전달하는 메세지에 따라 매번 다르게 표현하고자 했다. 루시의 얼굴(로고)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이미지가 아닌 gif로 제작하여 마치 애플의 시리처럼 계속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루시 소개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다양한 루시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라데이션 컬러 예시

루시의 목소리 역시 새롭게 만들었다. 목소리라 함은 앱 푸시 사운드를 의미하는데 실제 사운드 전문가에게 의뢰해 루시의 나이대의 여성이 가진 음역대와 흡사한 음역대의 사운드를 제작하여 사용했다. (루시의 사운드는 위의 론칭 영상에서 들을 수 있다)


실제 루시 앱 푸시 사운드의 음역대. 젊은 여성의 음역대와 같다고 한다.


글로 감정을 전달하다 보니 문체 역시 중요했다. 이것으로 루시의 성격을 알 수 있을 테니깐. 우리는 다양한 에세이와 소설 등의 문체들을 분석하고 그중 담백하면서도 여운이 있는 문체 중심으로 여러 테스트를 했고 루시만의 말투.. 즉 문장의 톤 앤 매너를 만들 수 있었다. 이도우 작가의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시공간)', 이석원 작가의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그 책)'이 많은 참고가 되었다.  

루사의 문체

이러한 다양한 디테일들이 루시와의 관계를 더 감성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루시라는 존재 자체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도록 했다.


호기심을 만들어내는 티징

루시가 사용자에게 건넬 법한 말들을 티징의 소재로 만들어 오픈 전 7일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이미지의 전체적인 느낌이나 말투 역시 위에서 정의한 루시스러움을 유지했다.

D-7
D-6
D-2


세상과의 첫인사 그리고 뜨거운 반응들

이렇게 2016년 7월 루시는 29CM의 수십만 유저들과 첫인사를 했다. 루시가 세상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폭발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루시의 오픈 소식을 개인 SNS를 통해 공유하기 시작했고 역시 29CM 스럽다는 많은 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난생처음 앱 푸시 알람을 켜봤다는 유저의 반응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 첫 번째 메시지가 오는지, 왜 나에겐 메시지가 오지 않는지를 묻는 문의도 많았다. 앱 푸시 메시지의 오픈율 역시 이전의 할인 메시지를 보냈을 때와 비교해서도 크게 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루시에 대한 다양한 SNS 반응들


이런 소비자들의 반응 때문인지 루시의 소식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디자인정글 :

"루시는 소통과 관계에 대한 핵심을 잘 간파한 서비스로, 앱 푸시 메시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루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히 29CM 다운 방법임은 확실하다."


THE PR :

"루시가 그냥 하나의 재미있는 서비스에 불과하지 않은 이유는 29CM가 일반적인 트렌드보다 개인의 취향에 집중하는 ‘셀렉트숍’을 표방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판매를 위하기보다 소비자와의 교감에 집중하려는 시도는 그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공명한다"


패션비즈 :

"최근 ‘29CM’는 ‘루시(Lucy)’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통해 단순히 콘텐츠 제공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객과의 감성적인 소통을 시작하고 있다."


월간 디지털 인사이트 :

'궁극적으로 광고는 소비자와 브랜드가 소통하는 창이다. 루시는 당연하지만 간과되는 이 지점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준다.'


한 날씨 앱에서는 루시의 메시지에 응답하는 위트 있는 푸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실제로 루시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루시에 대한 개인적 궁금증들과 감사의 내용이었고 우리는 루시에게 오는 모든 메일에 직접 답장을 보냈다(물론 루시로 빙의하여). 루시의 역할과 기획의도처럼 루시는 정말 고객과의 소통 창구가 되어 그들과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루시는 단지 온라인 편집샵에서 보내는 앱 푸시 서비스가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루시에게 보낸 유저들의 메일 내용



최고의 브랜딩 사례로 인정받다 

감사하게도 루시는 ST유니타스에서 기획한 "스콜레 커넥츠 프로젝트"라는 당시 최고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현대카드, SSG, 비비고, 무인양품, 러쉬 등 최고의 브랜드들과 나란히 소개되기도 했다.

스콜레 커넥츠 29CM 루시 소개 영상

강연 내용 일부.(사진은 나.. 쿨럭)


그리고 약 3년 후인 2019년 11월 스타일쉐어 재직 시 기획했던 PB브랜드 어스(US by StyleShare)가 이 프로그램(이름은 커넥츠 소사이어티로 바뀜)에 선정되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난 두 번이나 강연 무대에 오르게 됐다..


루시의 미래

사실 루시는 앱 푸시 메시지를 통한 고객과의 감성의 소통을 중심으로 운영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루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었다. 29CM 앱 내에서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루시가 담당하도록 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것에 대한 초기 기획을 완성했다. 처음 앱에 접속하면 루시가 고객의 취향을 물어보고 그것에 맞춰 고객에게 어울리는 상품을 추천해준다거나 서비스 내 모든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예를 들어 회원가입 등)도 루시를 통해 진행한다던지 시간과 날씨 별로 다른 메시지를 홈 화면에서 전달하는 등 29CM 앱 내에서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조심스럽지만 1:1 고객 문의 역시도 루시의 영역으로 확대하고자 했다. 고객이 느끼기에 루시가 곧 29CM인 것처럼. 이러한 초기 기획안을 가지고 1차적인 디자인 프로토타잎을 진행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던 중 루시는... 떠났다

2018년 초반. 내부에는 큰 스케일의 서비스 개편 이슈가 있었고 이를 계기로 루시는 잠시 운영을 중단했었다. 이후 난 개인적 사정으로 5년을 함께한 29CM를 떠났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후로도 루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 루시를 기억하고 기다리는 고객들이 있음에도 말이다.


무엇이 루시를 돌아오지 못하게 한 것일까? 내가 짐작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외부에서 생각하는 루시에 대한 반응과 효과만큼 내부에서는 그것을 온전히 체감하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우선순위에서 루시가 점점 뒤로 밀리면서 결국 기억에서 서서히 잊힌 것이다. 두 번째는 루시가 직접적인 매출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표면적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다. 루시는 처음부터 매출 기여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서비스가 아니며 앱 재방문율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긍정적 효과를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29CM의 개성과 DNA를 계속 증폭시켜야 함을 생각하지 않은 판단이었고 이것을 고객과의 관계를 더 높이기 위한 좋은 툴(?)로 바라보지 못함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루시의 전성기(?)를 직접 보았던 일부 직원들은 아직도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다. 작년 회사를 떠난 전 대표님께서 '루시를 잊지 말아달라'고 남아있는 직원분들에게 당부까지 하고 떠나셨을 정도니 말이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루시는 29CM의 미션인 "Guide to better choice"를 관계적 측면에서 잘 연결한 좋은 브랜딩 사례였다. 즉 고객과의 더 나은 관계 형성(better relationship)을 29CM만의 방식으로 잘 보여준 케이스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만큼 주목받았고 그만큼 뜨거운 반응이 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는 나도 다시 고객으로 돌아왔으니 루시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 루시를 다시 만날 날을 무턱대고 기다려 본다.


"반가워요. 우리..오랜만이죠?"라는 앱 푸시 메시지와 함께 쿨하게 다시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브랜딩이 왜 필요하세요?”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