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마음 ㅣ 울음이 터지다
차가운 수술대의 느낌을 아직 잊지 못했다. 쓸개 수술 후 불편한 점들이 있었지만 차츰 내 나름대로 적응을 해나갔다. 코로나의 여파로 갑작스럽게 다시 경기도로 올라오게 되었고, 신랑이 사진으로만 보내준 전셋집으로 이사해 새로운 곳에서 일상을 이어 나갔다.
큰아이가 입학을 하고 난 학부형이 되었고, 그렇게 아이들은 아이답게 잘 자라주고 있었다. 문제는 신랑이었다. 고향에서 조금은 편하게 일하고 야근도 없이 일하다 올라와서인지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 화는 가장 나약한 사람에게 풀어지는듯했다.
별거 아닌듯한 일에 갑자기 열을 내며 폭주하듯 화를 내서 주변의 이목을 받거나, 식사를 할 수 없던 적이 몇 번 반복이 되었다. 아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나도 힘들고 아이들까지도 힘들어했다.
그 싸움이 커지던 어느 날, 나는 신랑을 내쫓았다. 신랑은 그대로 월세방을 구했고, 나와 아이 둘은 그 사이 아팠다. 내가 먼저 연락해 신랑을 만났는데 먼저 보자 했으니 할 말을 해봐라 하는 거들먹거리는 표정과 말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도 당신이 다 데려가고, 돈도 필요 없으니 그냥 이혼하자!"
정말 너무 지쳤다. 난 더 이상 아프기 싫었다. 아이 둘 보며 버티고 있지만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기 싫었다. 신랑에 대한 마음이 바닥을 치고 곁에 있는 것이 너무 괴로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이혼하자 이야기를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뭐 어디 돈 꼬불쳐 뒀어?"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사람은 정말 아니구나...
신랑이 잠시 생각하더니 아이 둘 보며 잘 지내보자 하며 이야기를 했다. 나와 아이 둘이 아픈 덕에 다시 곁에 두고 지냈지만, 난 무언가를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한 달가량을 누군가를 만나지를 못했다.
아이들을 겨우 챙기고 혼자 끙끙거리며 식은땀을 흘리며 아파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누가 위를 움켜쥐고 있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자주 가던 내과에 가서 수액을 맞아가며 겨우겨우 버텼다.
잦아지는 통증으로 병원에서 위와 대장 내시경을 해보자고 했다. 대장 내시경은 태어나서 해본 적이 없었다.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지만 죽기야 하겠느냐는 마음으로 대장 내시경약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약을 먹기 시작했을까 신호가 오기 시작했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렸다. 근데, 배 아픔의 정도가 도를 넘어섰다. 배를 누가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난 새벽에 혼자 화장실 변기에 앉아 비 오듯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사투를 버리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온몸은 저릿저릿 저려왔고 속이 미식미식거렸다. 수건 한 장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아직, 대장 내시경 약이 남아있다. 더 마셔야 하는데, 죽을 거 같았다.
혼자 화장실에서 1시간을 늘어져 있다가 겨우겨우 침대로 기어가 누웠다. 대장 내시경 받기 전에 죽을 거 같았다. 순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지 말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새벽 5시 더 마셔야 하는데 너무나도 힘이 들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 병원은 어떻게 가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부르자니 이 새벽에 가까운 거리를 데려다줄 택시 기사도 없을 거고 이 몸으로 운전해서 가는 건 아닌 것 같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난 약을 다 먹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 대장은 대장 내시경은 받을 수 있는 상태일 거라 확신했다. 내 뱃속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날 난 정신력으로 옷을 입고, 우산을 지팡이처럼 지지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위장, 대장 내시경 예약한 내과로 갔다. 정말 죽을 거 같았는데 역시 그럴만했다. 내 차례가 되어서 상황을 설명하고 링거를 꽂는데 탈수증상 때문에 링거가 꽂히지 않았다.
겨우 링거를 꽂고 수면마취도 잘되지 않아서 난 내시경실에서도 정신이 말짱했다. 그걸 본 선생님이 추가로 마취제를 더 주입했고 검사를 끝내고 난 후 수액도 함께 맞으며 꽤 오랜 시간 병원에서 머물다 멍한 상태로 집에 와 그대로 뻗었다.
누군가 함께해 줬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그럴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혼자 그렇게 안쓰러운 검사를 마쳤다. 크게 이상 소견은 없었고 대장도 문제가 없었다. 내과 선생님은 최대한 대장 내시경은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나처럼 탈수가 와서 힘들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검사 결과엔 큰 이상이 없었으나, 뭔가 계속 조여 오는 통증은 나의 일상을 불편하게 했다. 결국은 조금 큰 병원에 가서 위내시경과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기로 했다. 이날은 차를 끌고 병원을 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너무 먼 거리라 운전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검사받고 좀 쉬다 아이들 하교 전 집에 오면 되니까 괜찮겠지 생각을 했다.
먼저 복부초음파 검사를 했다. 쓸개 제거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했었고 혹시나 몰라 체크만 하는 거라 가벼운 마음으로 누웠다. 선생님이 크게 이상은 없다고 하셨고 복부초음파를 하면서 자궁 쪽을 봐주신다고 이야기하셨다. 순간 검사기가 잠시 멈 짓 하는 순간이 있었다.
"저 여기 뭔가 확인해 봐야 하는 것이 있어요. 산부인과에 협진 요청해 드릴 테니 산부인과에서 검사받아 보셔야 할 거 같아요"
"..... 네?"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띵하고 맞은 듯했다.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을 텐데 왜 산부인과 협진을 해야 하는 거지? 나 또 어디 아픈 건가? 또?? 하는 생각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복잡한 마음으로 수면내시경을 하러 갔다.
그간 계속 힘들었던 몸과 마음, 모든 것을 다 혼자 해야 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마음속에 남아 있던 걸까? 산부인과 협진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씩씩하게 혼자 수면 위내시경을 받았는데 마취가 풀리는 침대에 누워서 나도 모르게 서럽게 엉엉 울었다.
간호사가 놀라서 진정하고 천천히 나오라 했다. 마취가 풀리는 그 순간 헛소리를 한다고 하던데, 진실을 말한다 하던데 나도 그랬나 보다. 그간 서럽고 힘들었던 마음들이 응어리들이 내가 너무 가여워서 서러워서 그렇게 울음이 터져버렸나 보다.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복도에 나와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나 또 어디 아픈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