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당신 고맙지만, 떠나줄래

검은 마음 ㅣ 차가운 수술대

by 라이크수니

산부인과 협진으로 나는 내 병명을 빨리 알 수 있었다. 산부인과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병원에 가보면 느낄 수 있다. 아픈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을 말이다. 혼자 씩씩하게 복부 CT를 찍으러 갔었다 조영제 부작용을 미리 알고 겁이 났지만, 어지러웠지만, 서러웠지만 검사를 다 끝냈다.


내 병명은 자궁 내막증, 선근증, 하이드로살핀스, 바르톨린 낭종 다양한 병명들이 나왔다.

MRI 찍은 것도 확인해 보시더니 자궁과 장의 유착도 심하다며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건 수술해야겠는데요, 아프겠는데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아무런 질문도 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충격적인 이야기에 머리가 멍해졌다. 쓸개 수술한 지 몇 년 되었다고 또 수술이라니 말도 안 돼. 내가 뭘 그렇게 잘 못했지??라는 생각과 속상함에 한 달간을 그냥 멍하게 지냈다. 아픈 나를 위해 정신을 차리고 혼자 열심히 알아보며 병원 투어를 시작했다.


병원마다 선생님마다 병명에 대한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선생님을 잘 찾아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유명하거나 좋은 선생님들은 길게는 2년을 기다려야지만 얼굴을 뵐 수 있었다. 난 다섯 분의 선생님을 만났고 다들 수술을 권하셨다.



마지막 선생님을 만나 호르몬 치료제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나의 통증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통증의 단계를 1~5단계로 나누자면 1단계가 가장 약한 거예요. 환자분의 통증 단계는 4단계 정도 될 거 같은데 힘들지 않아요? 진통제 처방해 드릴 테니 참지 말고 드세요"



쓸개 수술 때도 그렇게 참았는데, 난 또 나도 모르게 그런 통증들을 참으며 지냈나 보다. 또 나를 챙기지 못하고 지냈나 보다. 진통제 두통을 처방받고 다음 진료 날짜를 잡았다. 수술을 정하는 것은 바로 '나'이다. 정말 수많은 후기 글들을 읽고 또 읽고 찾아보았지만, 정답은 없었다. 가족 중 자궁에 문제가 있어서 수술한 사람도 없고, 누구와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난 혼자 고민하며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 전 신랑과 또 싸우기도 했었다.



"그렇게 싫은데 왜 나한테 병간호를 시키려 그러냐!!"



'어, 나도 싫은데,, 이번엔 좀 네가 나 아픈 것 좀 봐야 하지 않니?' 속으로 이야기했다.


쓸개 수술할 때도 부모님이 있었다.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몰랐으니 말이다. 나를 챙기지 못하고 스트레스받아 혼자 끙끙거리며 아팠던 날들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꼭 신랑을 곁에 두고 싶었다.



짐을 다 챙기고 1인실 병실로 들어왔다. 병실의 풍경은 좋았고 화장실도 안에 있고 참 좋아 보였다. 신랑이 잘만 한 소파처럼 푹신해 보이는 공간이 있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을 기다렸다. 난 상황이 안 좋을 수 있는 환자라 했다. 유착이 너무 심하면 다른 과 선생님이 수술 중 도와주러 오실 수 있다고도 설명을 들었다. 대장을 다 비워야 하기 때문에 금식을 하고 끔찍했던 대장약을 먹어야 했다.


간호사에게 기절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니 수액을 미리 꽂아 주셨다. 그 덕인지 문제없이 장도 다 비우고 수술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큰 병원의 수술 대기실은 일렬로 쭈르륵 침대들이 있었고 환자들이 누어 대기를 하고 있었다. 성모병원은 수술 전 기도를 해주시는 수녀님이 계셨는데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트릴 수 있었다. 내 차례인지 내 침대를 끌고 하염없이 지나갔다. 꽤 많은 수술방을 지난 것 같다. 내가 수술할 방에 들어가니 내 담당 선생님이 나를 반겨주셨다.



마취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취 선생님이 오셔서 마취를 시작했다. 내 마지막 기억은 마취 선생님이 "약을 조금 더 주입하죠." 하는 이야기였다.

얼마나 지났을지 모르는 시간이 흐르고 "엌!" 하는 소리를 내며 깼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너무 아팠지만 전신마취할 때 목구멍에 넣는 관 때문에 수술 후 목이 너무 아파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신도 없었고 극심한 통증으로 신랑을 만나자마자 너무 아파서 신랑의 손을 쥐어뜯으면서 아이 낳을 때도 맞지 않았던 무통 주사 버튼을 열심히 눌러댔다. 아무리 계속 눌러도 10분에 한 번씩만 나오는 걸 알았지만 죽을 거 같은 고통에 뭐라도 눌러보았다. 너무 괴로워하니 간호사가 진통제 주사를 추가로 놔주셨지만 수술 후의 고통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의 통증이었다.



그렇게 나는 쓸개도, 자궁도, 나팔관도 없는 점점 가벼운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