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ㅣ 정신 차려 보니 결혼해 있었다
내가 태어나 살면서 아빠의 화난 모습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모습이었다.
아빠는 헤어진 줄 알고 있었는데, 속이고 만나면서 인사를 하러 온 것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었다고 하셨다. 그 일이 있고, 신기하게도 엄마는 그를 다시 만나보겠다고 하셔다.
남자다운 그의 모습이 엄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느 가을날 혜와 동 커피숍에서 또 한 번 불편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번엔 엄마와, 나, 그 이렇게 셋이 만났다.
평일 낮 햇살이 가득 들어찬 커피숍엔 우리만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그토록 무거워질 수도 있음을 알았다. 찻잔을 건네는 사장님도 덩달아 조심스러워지셨다.
엄마는 더 깊이 있는 질문들을 과감하게 물어나갔다. 난 엄마와 그의 얼굴을 살피느라 진땀이 났다.
또 한 번 불편한 자리가 끝나고, 이번엔 지난번과 다른 결말이었다.
연애에 대한 허락이라 생각했는데, 나 빼고 모두 다 결혼에 대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상견례 날짜가 잡히고 인사를 나누며 양쪽 어른들의 만남이 있었다. 그날, 아빠가 부드럽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이야기하셨다.
“경순아, 이 결혼 꼭 해야겠니? 상견례 하고 오니 네가 나중에 마음고생 많이 할거 같아 걱정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엄마도 한마디 거드셨다.
“쉴 때 말고 취업을 다시 하고, 천천히 결혼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난 결혼 준비를 했다. 연애 허락을 맡으려는 거였는데 그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에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바닥엔 솜털 같은 눈이 깔려있는 겨울 어느 날,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극장에서 티 났지만 그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
“경순아, 결혼하면 더 아껴주고 잘해줄게!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줄게!"
라는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눈물을 흘리며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
쉬고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식장까지 일사천리로 예약을 했다. 신혼여행을 준비하면서 그의 말로 비행기 좌석 혜택 때문에 혼인신고를 먼저 해야 한다고 했다. 결혼사진을 찍기 전 혼인신고를 먼저 해버렸다.
결혼사진을 찍으러 가는 날, 그의 말에 화가 나 차 창문 밖으로 결혼반지를 던지고 결혼을 무르고 싶었다. 창문을 반쯤 열다 생각해 보니 아뿔싸 혼인신고를 해버렸다는 사실이 생각나 차 바닥으로 반지를 던졌다.. 그렇지만 웨딩사진을 찍어야 하는 날이다. 직장 생활 6년을 하고 퇴사한지라 필요한 순간엔 적절한 가면을 장착할 수 있었다. 결혼사진을 무사히 찍고, 그와 많은 대화를 하였다.
나보다 6살이나 많은 그는 나를 공주님 대접을 해줬다. 힘든 회사 생활을 견디느라 몸이 상한 나를 위해서 죽을 사다 주고 챙겨주었다.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아무 일이 아닌 듯 넘어갔다.
가끔 말로 내 머리 꼭지를 돌게 하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때는 좋은 부분이 더 많았다.
그를 소개받고 헤어질 뻔한 두 번의 위기를 넘기고 결혼식까지 걸린 기간은 고작 6개월 이였다. 정신 차려 보니 그와 결혼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