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유키
반려견 유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며 세상을 떠난 지, 이제 5개월 하고 보름이 지났다. 나는 이 시간 동안 되도록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것은 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슬픔의 뇌관 한쪽을 계속해서 누르는 것만 같아서, 그 결과 한 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을 한쪽으로 밀어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닦아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만약, 시간이 양방향으로 흐른다면 나는 다시 녀석을 입양하기 전으로 돌아가 녀석을 입양하는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녀석은 내 삶의 전부였다. 나는 녀석에게 전부를 의존하며 살았고, 녀석도 내가 그렇게 의존하면서 산다는 것을 애써 힘든 체하지 않고 살았다.
10여 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다. 내가 방황을 하는 시간도, 아팠던 시간도 모두 다 유키의 삶과 일치하게 흘러갔다. 결국 나는 내가 괴로웠던 시간이 모두 유키에게는 일생이 된 것이었다. 타인들이 보면 그렇게 잘해준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나는 녀석에게 하는 모든 것이 아깝지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나한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껴졌으므로, 혹시라도 녀석이 힘들어하거나 할까 봐, 녀석에게 더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아까움을 또 상쇄하며 나갔다.
녀석이 3개월 안을 넘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나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내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녀석의 검진일이면 녀석의 증상을 줄여 말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의사에게 조금이라도 유키가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냉정하다. 유키가 얼마 못 가서 쓰러질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것이 오늘이 될지도 모르고 내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가족 중의 하나가 시한부 판정을 듣는 것은 그래서 어려웠다. 비록 그가 사람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정해진 시간은 사람의 마음을 더 급하게 만든다. 이렇게도 해주고 싶고, 왜 저렇게 해주지 못했었는지에 대한 후회가 빠른 시간에 교차한다.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나는 오직 그 생각이었던 것 같다. 녀석은 언제부터인가 먹는 양을 눈에 띄게 줄이기 시작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동물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증상이었다. 나는 녀석 앞에 엎드려서 녀석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음식을 갖고 녀석이 흥미를 갖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별로 신통치 않았다.
봄에 받은 시한부 판정은 의외로 길게 이어졌다. 여름을 거치고 가을의 초입까지 녀석은 버텼다. 나 역시 녀석에게 수액을 맞춰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녀석은 밤이면 내 방의 한쪽에 와서 조용히 누워있다가 다시 새벽에는 방을 나가고는 했다.
나는 깨어있음에도 가만히 녀석이 하는 행동을 기척으로만 듣기만 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녀석에게 할 수 있는 저녁인사였다. 다리와 몸은 더 말라만 갔다. 한 참 때는 제 자리에서 점프해서 비교적 높은 내 침대 위에도 올라오던 녀석은 몸을 안아서 올려주지 않으면 엄두를 못 냈다. 그리고 내가 공부하는 것을 내 등 뒤에서 가만히 쳐다보고는 했다.
가을도 깊어가고, 나는 녀석이 이렇게 가면 겨울도 넘기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다. 녀석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하루 전까지도 차려준 것을 억지로나마 먹었고, 물도 잘 마셨다. 다만, 소변을 볼 때나, 대변을 볼 때 힘이 없어서 힘겨워했다. 그럼에도 나는 더 함께 할 수 있다고 자위를 하고 또 했다.
10월 15일부터 조금씩 안 좋아지기 시작한 호흡은 새벽녘부터는 확연하게 눈치챌 정도로 급격히 악화되었다. 이 녀석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미 나를 향한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고, 그 초점의 끝에 맺혀 있는 내 얼굴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16일 오전, 녀석은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신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의지로 받아들였지만, 이미 녀석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있었던 듯하다. 오후도 넘어가 1시가 될 무렵, 녀석은 갑자기 일어나 소변을 보던 장소로 이동했다. 다리는 떨리고 있었고, 눈은 투명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소변을 보려던 찰나, 잘 나오지 않자. 내가 도와주려고 다가가던 찰나, 녀석은 옆으로 쓰러지며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 세상에 와서 12년 10개월 16일 반나절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참을 울었다. 그래도 녀석은 이제 따스함을 간직하고 내 손을 핥지도 얼굴을 비비지도 않았다. 아주 조금씩 차가워지며 굳어가는 모습으로 내게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이제 녀석은 유키가 아니었다. 유키는 내 옆을 떠났고 차가워진 낯선 흔적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별을 했다.
그 뒤로 녀석은 단 한 번도 내 꿈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보고 싶어서 사진을 보고 울음으로 하루를 채운 날도 녀석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냥 더 이상은 인연이 없는 것이라 확인시켜 주듯이.
이별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이별을 향해서 우리는 달려가고 있을 뿐, 이별은 정해진 그 자리에서 기다림 없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별이 말하고자 하는 우리 삶의 "유한성"을 알고 있지만, 때때로 그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세상은 이별이라는 특별한 절차를 통해서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될 감정의 소용돌이들은 "삶"을 가진 개체는 모두가 겪을 수밖에 없는 끝을 미리 만들어놓음으로써 미리 걱정하고, 미리 슬퍼하며, 미리 죽도록 아파하도록 한다.
그렇게 5개월이 넘은 시간을 아파했다. 모른 척도 했고, 아닌 척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기에 녀석과의 이별로 힘들어하고 있다. 현재도 공부하는 내 뒤에서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쉬이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만약, 내가 10년 전 이렇게 아플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유키와 나는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정해진 이별의 절차를 믿지 않는다. 그리하여 매일 조금씩 눈물을 흘린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다른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과 녀석들의 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유키의 기억을 되새기며 여전히 마음속에는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 살 것이다.
그리고 기도한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부디 아픈 이별을 미리 떠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행복한 순간만 함께 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유키야, 보고 싶다. 사랑해.
2023-03-30
Written by HARU
유키 녀석이 떠난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은 매일 같이 나오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눈을 떠봤을 때는 시험이 눈앞에 와 있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실패를 했습니다. 하지만, 시험의 실패로 인한 슬픔보다는 일주일 가량 집을 비운 후, 돌아왔을 때 저를 반기지 않은 유키의 부재가 더 큰 아픔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유키와 함께 있습니다.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저는 녀석이 이 곳에서 저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긴글을 읽어주신 분들의 반려견,반려묘에게는 아무런 아픔도 이별의 아픔도 영원히 없기를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