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잊어도, 온도는 남는 기억에 대하여’
나는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수십 번 챙겨 넣은 이름도
구멍 난 주머니 속 동전처럼
떼구루루 굴러 빠져나가고
부릅뜬 눈으로 새긴 눈코입은
묽게 섞은 수채물감처럼
시간이 스치면
알 수 없는 색으로 번져버린다
하지만 나는
당신의 말의 온도를 기억하고
당신이라는 사람의 걸음걸이를 기억한다
웃을 때 휘어지는 입매의 각도와
서 있을 때 떨어지는 어깨의 모양
밥을 먹고 난 뒤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손짓까지
나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당신을 기억한다
그래서
너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내가
너를 아프게 했을 때
변명 대신
침묵만 남겨두었다